[시론] '예술 복지'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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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선진국 조건은 문화 선진국
생활예술 확산 국가 책무 다해야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생활예술 확산 국가 책무 다해야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지금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라는 자부심 뒤에 감춰진 엄혹한 문제에 대해 짐짓 모르는 체하고 있다. 이제는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과연 10대 경제 강국 중 예술문화 선진국이라고 자부하지 못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
BTS와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착시 현상을 유발했을 뿐, 우리의 예술문화 수준이 선진국에 도달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팝, 드라마, 영화, 뮤지컬 같은 몇몇 대중예술시장은 활성화돼 있지만 문학, 클래식 음악, 오페라, 미술, 연극, 무용 등 순수예술시장은 여전히 척박하다. 아직 산업적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어느 대기업 회장의 ‘유산’이 알려지기 전까지 우리는 미술에 관심이 있었나? 순수문학 작품을 1년에 몇 편이나 읽는지, 평생 한 번이라도 오페라를 관람한 대한민국 국민이 몇 명인지에 대한 통계를 찾아보는 일은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끔찍하다.
예술은 교양이고, 창의성이고, 돈이다. 예술에 대한 옹호론은 대체로 교양과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다. 대단히 논리적이고, 공감할 만하고, 그래서 너무 익숙하고, 절실하지 않고, 공허하기까지 하다. 이런 논리는 예술을 국가가 아니라 당연히 가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영역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예술은 돈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서 정체된 근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대한민국 휴대폰과 자동차가 세계 1등에 오르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기술과 노동 환경에서만 답을 찾는다면 틀렸다.
최초의 기술력을 선점한 제품은 기술력 향상과 동시에 제품에 문화와 예술을 덧입혀 명품 이미지를 선점해 소비자를 고착한다. 하지만 후발주자는 기술력을 쫓아가면서 낮은 가격으로 경쟁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술 격차는 좁힐 수 있지만, 예술이 구현하는 디자인과 제품이 창출하는 문화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만큼 경제 선진국의 뿌리에는 선진 예술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예술은 가장 어린 나이에 백만장자가 될 가능성을 제공하는 산업이다.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가지만, 세 살 시절 즐기던 예술의 장르는 여든 나이에 당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좌우할 수 있다. 경제력과 계층의 대물림이 사회적 문제라면, 그 바탕에는 예술 취향의 대물림이라는 문제가 내재해 있다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누구는 1억원의 자본금과 10가지 투자 비법을 이미 알고 우량주에 투자한다. 다른 사람은 주식 투자를 위해 종잣돈부터 모아야 하고, 돈을 잃는 경험을 통해 첫걸음부터 배워가야 한다. 당신의 자식에게 어떤 투자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가.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국가에도, 기업에도, 그리고 개인에게도 자본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예술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누구라도 예술 복지의 혜택을 받고 창의성 고양을 위한 예술 자본을 축적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예술 복지는 국가에는 의무이고 국민에게는 권리다. 따라서 예술 교육을 가정에만 부담 지우는 것은 명백한 불공정이다. 엘리트 예술을 대상으로 한 관람형, 팬덤형 예술문화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직접 예술을 하는 체험형, 생활형 예술문화도 시장이 형성되도록 국가가 의무를 다해야 한다. 새마을운동으로 경제 선진국의 씨를 뿌린 것처럼, 이제 생활예술 운동으로 예술문화 선진국을 지향해야 한다. 경제 선진국은 예술문화 선진국으로 완성된다. 예술 복지는 인간의 기본권리다.
BTS와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착시 현상을 유발했을 뿐, 우리의 예술문화 수준이 선진국에 도달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팝, 드라마, 영화, 뮤지컬 같은 몇몇 대중예술시장은 활성화돼 있지만 문학, 클래식 음악, 오페라, 미술, 연극, 무용 등 순수예술시장은 여전히 척박하다. 아직 산업적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어느 대기업 회장의 ‘유산’이 알려지기 전까지 우리는 미술에 관심이 있었나? 순수문학 작품을 1년에 몇 편이나 읽는지, 평생 한 번이라도 오페라를 관람한 대한민국 국민이 몇 명인지에 대한 통계를 찾아보는 일은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끔찍하다.
예술은 교양이고, 창의성이고, 돈이다. 예술에 대한 옹호론은 대체로 교양과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다. 대단히 논리적이고, 공감할 만하고, 그래서 너무 익숙하고, 절실하지 않고, 공허하기까지 하다. 이런 논리는 예술을 국가가 아니라 당연히 가정에서 부담해야 하는 영역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예술은 돈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서 정체된 근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대한민국 휴대폰과 자동차가 세계 1등에 오르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기술과 노동 환경에서만 답을 찾는다면 틀렸다.
최초의 기술력을 선점한 제품은 기술력 향상과 동시에 제품에 문화와 예술을 덧입혀 명품 이미지를 선점해 소비자를 고착한다. 하지만 후발주자는 기술력을 쫓아가면서 낮은 가격으로 경쟁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술 격차는 좁힐 수 있지만, 예술이 구현하는 디자인과 제품이 창출하는 문화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만큼 경제 선진국의 뿌리에는 선진 예술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예술은 가장 어린 나이에 백만장자가 될 가능성을 제공하는 산업이다.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가지만, 세 살 시절 즐기던 예술의 장르는 여든 나이에 당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좌우할 수 있다. 경제력과 계층의 대물림이 사회적 문제라면, 그 바탕에는 예술 취향의 대물림이라는 문제가 내재해 있다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누구는 1억원의 자본금과 10가지 투자 비법을 이미 알고 우량주에 투자한다. 다른 사람은 주식 투자를 위해 종잣돈부터 모아야 하고, 돈을 잃는 경험을 통해 첫걸음부터 배워가야 한다. 당신의 자식에게 어떤 투자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가.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국가에도, 기업에도, 그리고 개인에게도 자본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예술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누구라도 예술 복지의 혜택을 받고 창의성 고양을 위한 예술 자본을 축적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예술 복지는 국가에는 의무이고 국민에게는 권리다. 따라서 예술 교육을 가정에만 부담 지우는 것은 명백한 불공정이다. 엘리트 예술을 대상으로 한 관람형, 팬덤형 예술문화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직접 예술을 하는 체험형, 생활형 예술문화도 시장이 형성되도록 국가가 의무를 다해야 한다. 새마을운동으로 경제 선진국의 씨를 뿌린 것처럼, 이제 생활예술 운동으로 예술문화 선진국을 지향해야 한다. 경제 선진국은 예술문화 선진국으로 완성된다. 예술 복지는 인간의 기본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