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국가핵심기술과 다시 읽는 '유출'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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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법원, 첨단기술 유출해도
미수 그치면 '솜방망이' 처벌
서울고법 3나노 반도체 사건처럼
회사 서버서만 빼내도 엄벌해야
경제안보시대 국가생존 달려
김진원 IT과학부 기자
미수 그치면 '솜방망이' 처벌
서울고법 3나노 반도체 사건처럼
회사 서버서만 빼내도 엄벌해야
경제안보시대 국가생존 달려
김진원 IT과학부 기자
‘취성 파괴’는 일정 온도 이하로 냉각된 금속이 약한 충격에도 도자기처럼 깨지는 현상이다. 그래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은 제조하기 어렵다. 천연가스를 액체로 만들기 위해선 영하 162도까지 냉각시켜야 한다. LNG의 냉기를 화물창 단열재로 막지 못하면 선체가 차가워진다. 파도로 출렁이는 대양에서 차가워진 배가 갑자기 동강 나는 걸 막기 위해선 화물창 단열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세계 LNG 운반선 발주량의 70%를 수주하는 조선 강국이다. 그러나 화물창 설계기술은 GTT라는 프랑스 회사가 갖고 있었다. 한국 조선사들은 화물창 설계기술료로 LNG 운반선 한 척당 선박 건조 비용의 5%를 GTT에 지급했다. 그렇게 프랑스에 지급한 돈이 3조원을 넘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기업과 힘을 합쳤다. 화물창 설계기술을 10여 년 만에 개발해 2020년 12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했다.
이런 와중에 대형 조선사 중 한 곳의 협력사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 A씨가 이직을 준비했다. LNG 운반선 화물창 설계도를 빼내 개인 PC에 보관했다. 혐의를 포착한 수사기관은 그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올해 초 검찰은 그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불기소 처분했다. 엔지니어가 최종적으로 이직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화물창 설계기술이 완전히 다른 회사나 국가로 나간 게 아니라는 이유였다. 지난달 서울 삼성동에서 만난 한 사정기관의 수사관이 들려준 일화다. 무사히 풀려난 A씨는 해당 설계도를 보관한 채 다음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반영한 것이다. 빼돌린 기술이 다른 회사나 국가로 가지 않았을 경우 사안을 가볍게 보는 경향은 전국 법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부터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 사건 피고인에게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회수돼 실제 사용되거나 누설되지 않았다며 정상 참작한 집행유예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비슷한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법도 ‘피고인이 취득한 기술 및 자료들이 다른 회사 등에 유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라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창원지법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서울남부지법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광주지법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비슷한 기술 유출 사건에서 같은 이유로 각각 선고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유출’에 대해 ‘귀중한 물품이나 정보 따위가 불법적으로 나라나 조직의 밖으로 나가 버림. 또는 그것을 내보냄’이라고 정의한다. 소중한 정보가 불법적으로 원래 소유권이 있는 조직의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유출에 해당한다. 해당 정보가 다른 국가 혹은 회사의 손아귀에 들어갔는지 여부는 기술 유출 범죄 행위 자체의 성립을 판단하는 핵심 요인이 아니며, 설령 기술이 넘어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양형에서 유의미하게 반영할 사안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맥락에서 반도체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과 관련한 서울고법의 최근 판결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수석엔지니어가 3나노미터(㎚) 반도체 미세 공정 기술 관련 파일 33개를 들고 미국 반도체회사 인텔로 이직을 시도하던 중 적발됐다. 그러나 그는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앞서 살폈던 판결들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해외로 완전히 이전되지 않은 경우에는 엄벌이 필요한 기술 유출 범죄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규홍 이지영 김슬기)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한 뒤 “‘유출’은 영업비밀을 그 비밀 보유자가 지정하거나 이동을 승인한 장소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주요 자료가 회사 서버나 PC에서 나가기만 해도 기술 유출이며 엄벌이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지난 7월 선고했다. 대법원도 두 달 뒤 서울고법의 판단이 법리에 맞는다며 실형을 확정했다.
25조원. 최근 5년 동안 기술 유출로 한국 기업이 본 피해 규모다. 이는 단순히 국부가 빠져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정학(技政學)의 시대에 첨단과학기술은 개별 기업은 물론 국가의 생존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기술 유출의 정의를 명확히 되새겨봐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세계 LNG 운반선 발주량의 70%를 수주하는 조선 강국이다. 그러나 화물창 설계기술은 GTT라는 프랑스 회사가 갖고 있었다. 한국 조선사들은 화물창 설계기술료로 LNG 운반선 한 척당 선박 건조 비용의 5%를 GTT에 지급했다. 그렇게 프랑스에 지급한 돈이 3조원을 넘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기업과 힘을 합쳤다. 화물창 설계기술을 10여 년 만에 개발해 2020년 12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했다.
이런 와중에 대형 조선사 중 한 곳의 협력사에서 근무하던 엔지니어 A씨가 이직을 준비했다. LNG 운반선 화물창 설계도를 빼내 개인 PC에 보관했다. 혐의를 포착한 수사기관은 그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올해 초 검찰은 그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불기소 처분했다. 엔지니어가 최종적으로 이직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화물창 설계기술이 완전히 다른 회사나 국가로 나간 게 아니라는 이유였다. 지난달 서울 삼성동에서 만난 한 사정기관의 수사관이 들려준 일화다. 무사히 풀려난 A씨는 해당 설계도를 보관한 채 다음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반영한 것이다. 빼돌린 기술이 다른 회사나 국가로 가지 않았을 경우 사안을 가볍게 보는 경향은 전국 법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부터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 사건 피고인에게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회수돼 실제 사용되거나 누설되지 않았다며 정상 참작한 집행유예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비슷한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법도 ‘피고인이 취득한 기술 및 자료들이 다른 회사 등에 유출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라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창원지법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서울남부지법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광주지법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비슷한 기술 유출 사건에서 같은 이유로 각각 선고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유출’에 대해 ‘귀중한 물품이나 정보 따위가 불법적으로 나라나 조직의 밖으로 나가 버림. 또는 그것을 내보냄’이라고 정의한다. 소중한 정보가 불법적으로 원래 소유권이 있는 조직의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유출에 해당한다. 해당 정보가 다른 국가 혹은 회사의 손아귀에 들어갔는지 여부는 기술 유출 범죄 행위 자체의 성립을 판단하는 핵심 요인이 아니며, 설령 기술이 넘어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양형에서 유의미하게 반영할 사안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맥락에서 반도체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과 관련한 서울고법의 최근 판결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수석엔지니어가 3나노미터(㎚) 반도체 미세 공정 기술 관련 파일 33개를 들고 미국 반도체회사 인텔로 이직을 시도하던 중 적발됐다. 그러나 그는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앞서 살폈던 판결들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해외로 완전히 이전되지 않은 경우에는 엄벌이 필요한 기술 유출 범죄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규홍 이지영 김슬기)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한 뒤 “‘유출’은 영업비밀을 그 비밀 보유자가 지정하거나 이동을 승인한 장소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주요 자료가 회사 서버나 PC에서 나가기만 해도 기술 유출이며 엄벌이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지난 7월 선고했다. 대법원도 두 달 뒤 서울고법의 판단이 법리에 맞는다며 실형을 확정했다.
25조원. 최근 5년 동안 기술 유출로 한국 기업이 본 피해 규모다. 이는 단순히 국부가 빠져나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정학(技政學)의 시대에 첨단과학기술은 개별 기업은 물론 국가의 생존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기술 유출의 정의를 명확히 되새겨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