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은 처음부터 '서커스'를 준비했다 [롤드컵 줌아웃]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롤드컵 기간 동안 필자는 ‘롤드컵 줌인’이라는 코너로 대회와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며 때로는 승자의 기쁨을, 또 한편으론 패자의 아쉬움을 나눴다. 롤드컵 종료와 함께 ‘롤드컵 줌인’ 코너를 마치며 기사로 다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롤드컵 줌아웃’ 코너를 통해 나누려 한다.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이 지난달 19일 국내 리그 LCK T1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T1이 우승하는 과정에서 일명 '서커스 픽'이라고 불리는 주도권을 강하게 가져가는 밴픽이 주목을 받았다. 많은 팬들은 T1이 8강부터 조합 콘셉트를 변화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들은 대회 시작부터 서커스를 준비했다.
T1 원거리 딜러 '구마유시' 이민형은 스위스 스테이지가 시작되기 전에 진행된 '스위스 애셋 데이'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이 같은 방향성을 이미 예고했다. 당시 그는 "작년에도 플레이인 스테이지에서 결승까지 메타가 계속 바뀌었다"라며 "현재 메타가 롤드컵 메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어 "이번 롤드컵은 바텀 라인전을 강하게 가져가면서 퍼트리는 게 중요하다"라며 "나와 잘 맞는 메타라고 생각한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분석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서커스 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강한 라인전을 기반으로 초반에 격차를 벌리는 '스노우볼'이 조합의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상대보다 더 많은 골드를 벌고 중요한 오브젝트를 확보해나가는 것이다. 바텀 듀오인 이민형과 서포터 '케리아' 류민석의 역할이 중요하다. 두 선수가 초반 라인전이 강한 조합을 뽑고 대형 오브젝트인 용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T1 조합의 키포인트였다. 그렇다면 T1 바텀의 롤드컵 첫 경기 조합은 어땠을까? T1과 북미리그 LCS 팀 리퀴드 혼다(TL)의 스위스 스테이지 경기를 살펴보자. 당시 T1 바텀은 애쉬-레나타 글라스크를 선택했다. 두 챔피언 모두 이전에 진행된 플레이인 스테이지에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해당 경기에서 T1은 승리하긴 했지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T1은 다음 경기에서 정반대의 스타일을 택했다. 젠지 e스포츠와의 대결에서 T1 바텀은 당시 플레이인에서 많이 쓰인 카이사-알리스타 조합을 구성한다. 결과는 패배였다. 이를 계기로 T1은 자신들의 방향성을 중후반 밸류픽이 아닌 초반에 강한 서커스픽으로 정한다. 실제로 류민석은 최근 인터넷 방송을 통해 롤드컵을 복기하면서 "젠지전에서 패배한 이후 밴픽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T1은 클라우드 나인(C9)과의 경기에서 자야-바드라는 과도기적인 조합을 선보였다. 이후 빌리빌리 게이밍(BLG)과의 경기에선 탐켄치를 중심으로 세나와 징크스를 조합해 승리를 거뒀다. 8강 LNG와의 대결에선 닐라-세나, 바루스-애쉬, 바루스-레나타 등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색깔을 확고히 했다. 4강에선 징동 게이밍(JDG)을 상대로 진-바드, 칼리스타-레나타, 바루스-바드 등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결승에서도 칼리스타와 드레이븐을 레나타와 조합해 사용했다.
T1은 결국 빠른 메타 해석을 기반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연성도 잃지 않았다. T1은 진작부터 서커스를 준비했지만 다른 팀이 선호하는 중후반 밸류도 고려해 대회에서 실험을 이어갔다. 이후 미세 조정을 거치며 바텀에선 초반에 라인전이 강한 조합을 뽑고 상체에서 아트록스, 요네, 사일러스, 아칼리 등을 뽑아 후반 밸류를 보충하는 방식을 택했다. 결승전 3세트에는 아예 바텀에서 자야-라칸이라는 대표적인 중후반 밸류픽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주현 기자 2Ju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