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구 급감 속도가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급감한 14세기 중세 유럽을 능가한다는 쇼킹한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가 최근 발표된 3분기 합계출산율 0.7명을 설명하며 ‘중세 유럽’에 빗댄 것이다. 앞서 인구학 분야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이대로면 2750년엔 한국이 소멸할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가 세계의 이목이 쏠릴 정도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저출산 심각성에 대한 경고는 많이 나왔지만 NYT의 분석은 원인 등 측면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저출산 원인으로 학생들을 학원으로 몰아넣는 잔인한 입시 경쟁 문화를 꼽았다. 그간 논의가 금기시된 남녀(젠더) 갈등도 원인으로 지목했다. 보수적 한국 사회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반란과 그에 반발해 나타난 남성들의 반페미니즘이 남녀 간 극심한 대립을 낳고, 혼인율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소멸을 언급한 콜먼 교수의 경고도 과장이 아니다. 일본의 사회학자 마스다 히로야는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9세 여성 인구의 비율이 0.5 미만이면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현재 전국 226개 시·군·구 중 절반 이상이 소멸위험 지역이다. 초등 학령인구 급감도 현실화하고 있다. 2017년생인 내년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수가 사상 처음으로 40만 명을 밑돌 것이란 전망이다.

저출산 요인과 그에 따른 암울한 전망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다. 그동안 많은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출산 지표는 악화 일로다. 어제 한국은행이 내놓은 보고서는 딱히 새로운 것이 없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명징하게 제시하고 있다. 한은은 청년고용 확대, 육아휴직 장려, 교육 경쟁 완화 등을 제대로 추진하면 출산율을 최대 1.6명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 공동체의 모든 난제 해결은 일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실질적이고 근본적이다. 생명체의 유지와 증식은 생존에 대한 보장과 직접적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 좋은 인재를 육성하는 것, 미래 불안감을 줄여주는 것이야말로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래서 결말은 언제나 노동·교육·재정·연금 개혁으로 모인다.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이상 보물찾기식 해답을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공감하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실천해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