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상 미등록이어도 접종 가능…"제도 홍보 부족해 보건소 갈때마다 실랑이"
미등록 해소가 근본 해결책이지만…"아동 보호·독감유행 완화에 필요" 지적도
독감 유행인데…아이들 예방접종 걱정인 미등록 이주민 부모들
자녀 셋을 둔 우간다 출신 미등록 이주 여성 40대 A씨는 독감이 유행하는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보건소 예방접종 담당 직원과 실랑이를 벌일 생각에 막막하다.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도 외국인 임시 관리번호를 발급받아 위탁의료기관에서 자기 부담금만 내고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지만, 보건소 직원이 이 내용을 몰라 외국인 등록증을 요구하며 A씨를 돌려보낸 것이다.

지역의 이주 아동지원센터 관계자가 A씨와 함께 보건소를 방문해 이 내용을 설명한 끝에 아이는 비로소 독감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A씨는 "독감 주사를 맞으러 갈 때마다 담당 공무원들이 바뀌어 있으면 다시 설명해야 하지 않겠나.

매번 한국인과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포기할까 한다"고 토로했다.

겨울철을 맞아 독감이 유행하면서 소아 예방접종 필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등록 이주 아동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11월 12∼18일의 독감 의사환자분율(외래환자 1천 명당 발열 등 인플루엔자 의심증상을 보이는 환자 수)은 37.4명이다.

유행을 판단하는 기준보다 5.8배나 많은 수치다.

이 때문에 지역 보건소나 동네 병·의원은 '소아과 오픈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방접종을 하려는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미등록 외국인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병원에서 줄을 서는 것마저 사치다.

영유아 예방접종은 미등록 신분이라도 보건소에 가면 본인 부담금만 내고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아는 미등록 이주민 부모는 거의 없고 A씨 사례처럼 보건소를 찾더라도 담당 직원들이 관련 규정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독감 유행인데…아이들 예방접종 걱정인 미등록 이주민 부모들
이 때문에 미등록 아동 중 독감에 걸리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근본적으로 부모와 아이의 미등록 이주 상태를 해소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당장 그러기 어려운 형편에 놓인 아이들의 건강 보호를 위한 방안 역시 필요하다고 이주민 지원단체 관계자들은 얘기한다.

미등록 이주민마다 사정이 다르고 그중에서는 불가피하게 미등록 상태가 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들도 있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미등록 신분이 돼버린 경우가 많은 만큼 건강과 관련한 최소한의 보호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기도 안산의 한 이주아동 지원센터 관계자는 "건강보험이 없는 미등록 이주 아동을 둔 부모들은 병원비 걱정에 웬만한 감기는 종합감기약으로 버티게 한다"며 "그러다 아이가 열이 너무 심해서 응급실에 가게 되면 큰 비용이 들어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보건당국에서는 백신 접종이 권고 사항이지만,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독감 주사 접종 기록을 필수로 요구해 주사를 못 맞은 아이는 서류를 요구하지 않는 먼 학교를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는 아동 보호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독감 유행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소아 독감 예방접종의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원석 고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소아는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작지만, 환자 발생 숫자가 큰 만큼 고위험군이나 고령자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모든 아동에게 백신 접종을 같은 수준으로 지원해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 등이 미등록 아동도 내국인 아동과 마찬가지로 교육과 건강 등 기본권을 보장받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법안은 국내에서 태어난 모든 이주 아동에게 체류 상황과 상관 없이 출생등록번호를 부여해 예방접종과 공교육 혜택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게 골자다.

안산 이주아동 지원센터 관계자는 "처음에는 체류 자격이 있었지만 비자가 만료되는 등의 이유로 미등록 이주민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의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해 건강권과 학습권을 보장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