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받은 ‘유방암 투병기’… "어떻게사 람이 이런 식로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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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박은아의 탐나는 책
앤 보이어, 『언다잉』, 양미래 옮김, 플레이타임(리시올), 2021.
앤 보이어, 『언다잉』, 양미래 옮김, 플레이타임(리시올), 2021.
편두통이 생긴 지 10년이 넘었다. 편두통의 증상 가운데는 욕지기와 구토가 있는데, 전조증상을 제때 약으로 통제하지 못하거나 약이 듣지 않으면 어김없이 도끼질 같은 두통과 무자비한 구토가 찾아온다. 편두통이 오장육부를 쥐어짜는 동안 변기를 잡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구토를 위한 공간이다.
많은 아픈 사람이 구토를 한다. 우리 구토자들에게 토할 곳이 변기뿐이라는 건 속상한 일이다. 밝음이 없는 조명과 상쾌한 공기, 언제나 청결한 상태로 유지되는 적당한 높이의 구토대가 마련된 별도의 공간이 있다면 이 고통도 조금 산뜻해질까. 모두가 낭비라고 생각하는 내 소망을 숙취에 자주 시달리는 친구 한 명만은 지지해주었다.
경험 때문에도 상상을 한다. 유방암에 걸린 앤 보이어는 <언다잉>에서 순수하고 정치적인 장소 하나를 떠올린다. “누구든 필요하기만 하면 적절한 장비를 갖춘 곳에 한데 모여 괜찮은 동지와 울 수 있는” “통곡을 위한 공공장소”. “슬픔을 공유하는 정교한 상상의 건축물”(228)인 이곳은 식은땀과 의사록과 ‘더는못하겠지만그만두면안돼’라는 심정 등으로 축조된다. 여기선 “고통을 공유된 무언가로 마음 편히 드러낼 수 있는 동시에 슬픔에 적대적인 반발은 막아주는 보호막이 제공”(229)된다고 한다. 파토그래피pathography(특정 질병이나 심리적 장애가 개인의 삶 혹은 공동체의 역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 가까운 보이어의 투병기는 한 사람의 고통에 대한 개념과 해설로 가득하다. 교정지 위에 있는 말들은 주인이 확실할수록 잘 살아남는데, 어떤 말들은 번듯해 보여도 주인을 흐릿하게 만든다. 이 말을 진짜 이 사람의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심되면 줄이 가고 다른 말로 교체된다. 언제나 말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보이어의 말은 해체되었을 때조차 의심의 여지가 없는 그만의 것이라 오류투성이어도 고칠 필요가 없다. “어떻게사 람이 이런 식로으 살 수 있나 싶은 나날이 드디어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식이긴 했어도 얼굴에 나를 려격해주는 빛이 비치고 나는 조언 을 다랐따”(234).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고문하듯이, 고통받는 사람만이 고통을 헤집는다. <언다잉>은 지독한 당사자적 표현성으로 읽는 사람을 저자의 몸에 ‘관광’시키고 고통에 빠트리며 끝없이 소진되게 한다. 이것이 ‘나’의 고통이니 보라는 듯이. 어떤 독서가 주는 건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불행한 생활 속에서 흘러나와 부유하는 구체적인 감정들, 세계의 조건에 희석되어 있어 공기로는 느낄 수 없는 미지의 슬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한 사람의 부분이다. 그의 존재는 암이 재구성한 세계 속에서도 취약해지지 않는다.
많은 아픈 사람이 구토를 한다. 우리 구토자들에게 토할 곳이 변기뿐이라는 건 속상한 일이다. 밝음이 없는 조명과 상쾌한 공기, 언제나 청결한 상태로 유지되는 적당한 높이의 구토대가 마련된 별도의 공간이 있다면 이 고통도 조금 산뜻해질까. 모두가 낭비라고 생각하는 내 소망을 숙취에 자주 시달리는 친구 한 명만은 지지해주었다.
경험 때문에도 상상을 한다. 유방암에 걸린 앤 보이어는 <언다잉>에서 순수하고 정치적인 장소 하나를 떠올린다. “누구든 필요하기만 하면 적절한 장비를 갖춘 곳에 한데 모여 괜찮은 동지와 울 수 있는” “통곡을 위한 공공장소”. “슬픔을 공유하는 정교한 상상의 건축물”(228)인 이곳은 식은땀과 의사록과 ‘더는못하겠지만그만두면안돼’라는 심정 등으로 축조된다. 여기선 “고통을 공유된 무언가로 마음 편히 드러낼 수 있는 동시에 슬픔에 적대적인 반발은 막아주는 보호막이 제공”(229)된다고 한다. 파토그래피pathography(특정 질병이나 심리적 장애가 개인의 삶 혹은 공동체의 역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 가까운 보이어의 투병기는 한 사람의 고통에 대한 개념과 해설로 가득하다. 교정지 위에 있는 말들은 주인이 확실할수록 잘 살아남는데, 어떤 말들은 번듯해 보여도 주인을 흐릿하게 만든다. 이 말을 진짜 이 사람의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심되면 줄이 가고 다른 말로 교체된다. 언제나 말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보이어의 말은 해체되었을 때조차 의심의 여지가 없는 그만의 것이라 오류투성이어도 고칠 필요가 없다. “어떻게사 람이 이런 식로으 살 수 있나 싶은 나날이 드디어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식이긴 했어도 얼굴에 나를 려격해주는 빛이 비치고 나는 조언 을 다랐따”(234).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고문하듯이, 고통받는 사람만이 고통을 헤집는다. <언다잉>은 지독한 당사자적 표현성으로 읽는 사람을 저자의 몸에 ‘관광’시키고 고통에 빠트리며 끝없이 소진되게 한다. 이것이 ‘나’의 고통이니 보라는 듯이. 어떤 독서가 주는 건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불행한 생활 속에서 흘러나와 부유하는 구체적인 감정들, 세계의 조건에 희석되어 있어 공기로는 느낄 수 없는 미지의 슬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한 사람의 부분이다. 그의 존재는 암이 재구성한 세계 속에서도 취약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