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에도 그리던 자유는 오지 않았다. 사회적 계급은 폐지됐지만, 장발장은 노란색 신분증을 지닌 '죄수번호 24601'로 불렸다. 피붙이인 조카들을 찾는 그의 마음이 너무 애절하게 느껴진다.

빵을 훔친 건 장발장의 잘못이었으나, 사회통합 시스템이 미비했던 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당시 사회가 장발장을 막다른 곳으로 내몬 것이었다. 오늘 날에도 장발장 같은 사람은 어디에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에게 삶은 버겁다.

그래도 은총이 있다는 걸 믿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장발장에겐 미리엘 주교가 그랬다. 주교는 잘 곳 없는 그에게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내줬지만, 장발장은 내일도, 모레도 끝나지 않을 가난과 굶주림에 주교의 은그릇을 훔치고 만다. 그렇게 헌병에게 붙잡혀 다시 미리엘 주교 앞에 섰을 때 장발장은 절망했다.

이제 그를 기다리는 건 감옥 뿐이다.하지만 주교는 "내가 은그릇을 줬다"며 그를 풀어주라고 했다. 오히려 은촛대까지 내주며 장발장이 선량하게 살도록 길을 열어 주려고 했다. 그때 장발장은 정말 빛을 봤을 것이다. 감옥에서 나온 그에게 세상은 차갑고 절망스러운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리엘 주교의 사랑은 그를 따뜻하게 감쌌고 그가 절망에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줬다.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을 용서한 행위는 팔꿈치를 슬쩍 찌르는 ‘넛지(Nudge)’로 볼 수 있다. 강요와 설교가 아닌 간단하고 편안한 행위로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행동경제학 용어다.
장발장에서 배우는 넛지와 사회이동성, 그리고 '슘페터호텔'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작은 변화인 ‘넛지’는 윤리적인 원칙에 따라 잘 활용하면 매우 유용하다. 단 '좋은 목적을 위한 넛지'(Nudge for good)여야 한다. 미리엘 주교의 넛지처럼. 그의 넛지는 투명하고 심플했다. 넛지를 통해 주교는 장발장이 '더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도록 도왔다.

정부도 넛지의 원리를 이용해 정책을 만들기도 한다. 강요나 명령 없이 국민들이 알아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만큼 훌륭한 게 또 있을까. 좋은 습관이 국민들의 몸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또 어떤가. 좋은 습관은 세상을 이롭게 한다. 모두를 생각하는 배려와 이타심도 기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를 장발장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한 ‘숭고한 존엄’이라 부르고 싶다. 은촛대는 사회통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를 통합하려면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개인 또는 집단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이동성'(Social Mobility)을 키우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빵 하나 훔쳤다고 19년 감옥살이를 시키는 사회는 사실상 신분 이동이 불가능한 억압된 사회다.

가난에 허덕이며 자신의 꿈을 포기한 이들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처럼 신분상승을 꿈꾼다. 하지만 지금의 장발장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우리 시대의 개츠비는 대부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는 사회이동성 증가가 가능한 사회인가. 신분사회에선 혁명을 통해 신분 해방을 도모하지만, 평등사회에선 노력과 헌신을 통한 신분 상승을 기대한다. 그러려면 사회이동성이 높아져야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탈출구를 어디에서 찾아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보상시스템의 장점을 믿기에 사람들의 고뇌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자원이 유한할 경우 누군가의 불만족은 생길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이를 어떤 시스템으로 처리하느냐다. 신분에 기초해 기득권을 인정하는 사회보다는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문제는 '승자 독식'과 '기회 박탈' 등 시장이 양극화를 가속화할 때다.

시장 원리와 규제를 잘 혼합해 사회구성원의 후생을 키우는 건 모든 정부의 숙제다. 일부 사람들은 '시장주의가 양극화를 불렀다'고 돌팔매질하지만, 그렇다고 유럽식 복지국가가 바람직한 모델인지 의문이 든다. 유럽식 복지스템이 시장의 역동성을 떨어뜨려 성장 정체를 부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유럽보다 훨씬 빠른 것만 봐도 유럽식 복지국가 건설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성장 측면에서 유럽 경제의 어려움은 미국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은수저 없이 태어난 대다수 젊은이에게 우리 사회가 어떤 철학에 기반하고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거기에 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어서다.

경제위기는 중산층을 감소시키고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가계의 생활비 부담을 크게 늘렸다. 고물가로 저소득층의 실질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 양극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이들의 실질 조세 부담을 낮춰주고 구매력 저하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는 것도 포용적 성장을 위해 중요하다.

한국은행이 2024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1%포인트 낮췄다. 올해 1.4% 성장에 머문 우리 경제는 2024년 2.1%에 이어 그 이후에도 2%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 우리 경제가 '고금리·고물가·저성장'의 3중고에 갇힐 것이란 얘기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다. 터키 지중해 연안에 살았던 니콜라우스 주교는 불우 이웃을 돕고 어린이를 귀여워하는 할아버지로 소문났었다. 이 얘기가 퍼져서 11세기 유럽엔 가난한 이를 돕는 니콜라우스 할아버지가 수없이 생겼다. 이게 17세기 미국으로 이민을 간 네덜란드인에 의해 산타클로스로 명명됐다고 한다. 미리엘 주교와 니콜라우스 주교의 은총이 더 절실히 필요한 요즈음이다.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와 식사할 때 가정부인 마글루아 부인이 내놓는 미리엘 주교의 평범한 저녁 메뉴는 이랬다.

“그러는 동안 마글루아 부인은 저녁을 차렸다. 물에 기름과 빵과 소금을 넣고 만든 수프, 돼지비계 조금, 양고기 한 조각, 무화과, 생치즈, 그리고 큰 호밀 빵 한 덩어리였다. 마글루아 부인은 주교의 그런 평상시 식사에 모브 와인 한 병을 보탰다.”

Cependant madame Magloire avait servi le souper. Une soupe faite avec de l’eau, de l’huile, du pain et du sel, un peu de lard, un morceau de viande de mouton, des figues, un fromage frais, et un gros pain de seigle. Elle avait d’elle-même ajouté à l’ordinaire de M. l’évêque une bouteille de vieux vin de Mauves.

물가가 올라갈수록 우리 주변에 장발장은 늘어난다.

‘창조적 파괴’로 잘 알려진 조셉 슘페터는 불평등을 이렇게 비유했다. 높은 층에 크고 좋은 방을 배치한 호텔이 있다. 꼭대기 층은 소수의 부자 몫이다. 1층은 작은 방에 수많은 이들이 함께 살 것이다. 이런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매일 방을 바꾸도록 한다면? 오늘의 부자가 내일의 가난뱅이가 되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면 어떨까? 슘페터는 사회적 계층 이동성이 충분히 확보된면, 지금의 불평등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사회적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만 없으면 사회적 격차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슘페터의 논리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노력으로 그런 격차를 극복할 수 있다면, 노력은 인센티브로서 순기능을 한다.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노력들이 모여 경제는 성장한다.

문제는 지금 사회는 격차가 커질수록 장벽도 높아진다는데 있다. 오바마 정부의 경제자문회의 의장이었던 앨런 크루거는 소득불평등과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의 국제비교를 통해 이 사실을 발견했다. 이 관계를 묘사하는 ‘위대한 개츠비 곡선’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 경제는 '슘페터 호텔'과 비슷하다고 믿었다. 소득불평등은 심하지만, ‘기회의 땅’ 미국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이런 믿음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미국사람들도 생각한다. 위층과 아래층의 간격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미리엘 주교와 산타크로스의 자비를 생각하며 더불어 사는 멋진 세상을 꿈꿔 본다.
장발장에서 배우는 넛지와 사회이동성, 그리고 '슘페터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