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강렬하게 원하는 게 있을 때면 모든 책이 그 대상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대상은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여간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 될 수도, 안락한 생활이 될 수도 있으며, 내게도 그런 대상이 적지 않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한 대상이 다른 대상에 약간 앞서기도 뒤처지기도 하는데, 그만큼 책이 내게 내보이는 표정도 그때그때 달라진다. 책상 위에 가만히 놓여 있는 책일지라도 실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와 이야기 나눌 때에는 그저 그랬던 책이 홀로 리뷰를 쓰려고 들여다볼 때에는 사실 훌륭한 책이었구나, 평가가 변하기도 하는데 그럼 어떤 평가가 옳은 걸까?

책이 절대자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고 책이 있어서 이 많은 혼란이 비롯되는 것 같다. 방금 내뱉은 말조차 후회하기 일쑤인 변덕맞은 나. 나를 어느 한곳에 고정시킬 수는 없을까? 그럼 후회로 괴로워하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 텐데. 질문에 대한 정답은 모두가 알 듯 ‘없다!’이고 변덕에 대한 몫은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이다음에는 보다 정확한 말을 뱉을 수 있도록 책을 또 한 권 읽고 그에 대해 또 한 번 말해 나가면서…….

에마뉘엘 보브 <나의 친구들>의 주인공 ‘바통’의 열렬한 소망은 바로 진정한 친구를 갖는 것이다. 내가 모든 책을 나의 소망에 대한 은유로 읽는 것처럼, 바통은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친구 후보로 바라본다. 바통이 친구를 열망하는 마음은 “손톱만큼밖에 안 되는 우정과 사랑이라도 얻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것이다.” 이렇게나 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통의 친구 후보 리스트에 올라간 사람들은 사사건건 평가를 받는다. 뤼시 뒤누아, 앙리 비야르, 뱃사람 느뵈, 신사 라카즈, 그리고 블랑셰. 총 다섯 명의 사람들이 바통의 친구 후보가 되어 <나의 친구들> 각 장을 이룬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친구를 만드는 방법
바통은 이번에는 진짜 친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듯 매번 전심을 다해 관계에 임하지만 슬프게도 모든 관계는 영영 볼 일 없음으로 끝을 맺는다. 파국에 이르는 결말은 같지만 그 사연은 제각각이다. 더는 감정이 발전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어서이기도, 돈을 빌려준 뒤 (잠정적) 친구의 애인과 이상하게 얽혀들어서이기도, 바통이 마음을 담아 건넨 돈을 하룻밤 새 탕진해 버리는 것으로 그의 성의를 무시해서이기도 하다. 친구가 될지도 몰랐을 한 사람을 잃어버릴 때마다 바통은 절절히 슬퍼한다. “누군가에게 친절히 대해 주면 언제나 항상 이런 식의 대접을 받고 만다. 이 땅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게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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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친구를 잃어버린 바통의 슬픔이 너무도 깊어서 언뜻 보면 온 세상이 바통을 괴롭게 만드는 것 같지만, 바통의 괴로움은 스스로 만들어 낸 완벽한 친구의 기준으로부터 온다. 전날 우연히 만나 술 한 잔 함께했던 상대가 다음 날 같은 시각 술집에 없었다는 이유로 바통이 실망한다면, (물론 약속한 적도 없다)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앞선 질문에 대한 답처럼 이번에도 정답은 ‘없다!’이고 정답을 알게 된 이상 나는 더 이상 바통을 안쓰러워하지도, 그가 슬픔에 잠식돼 버릴까 걱정하지도 않게 되었다.

바통 역시 친구가 먼저인 것이 아니라, 바통 그 자신이 있고 친구가 있기 때문에 이 모든 혼란과 슬픔이 비롯된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책을 읽을 때마다 변덕맞은 자신을 탓하며 다음 책 다음 책을 찾아 시간을 보내듯 바통 역시 이다음 친구 이다음 친구를 찾아 나서는 삶을 살아 낼 것만 같아서……. 그렇게 계속되는 삶이라면 그 삶은 내 하루하루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날의 슬픔이 다음날에는 눈 녹듯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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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통이 내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면 그때의 나는 뭐라고 답할까?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은 같이 시간을 보내 보고 싶은데, 그 후 내가 먼저 친구 되기를 포기할지, 바통이 먼저 포기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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