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태어나 마이애미서 죽다...스스로 '白바보'라 쓴 백남준[마이애미 아트위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마이애미 바스미술관 전시 리뷰
'백남준 -THE MIAMI YEARS'
'백남준 -THE MIAMI YEARS'
1990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공항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이 처음 마주한 건 백남준의 작품이었다. TV를 길게 연결해 비행기 날개로 만든 'TV윙'. 그 옆엔 74개 TV모니터로 연결한 도시의 이름, 'MIAMI'가 나란히 자리했다. 10년도 안돼 작품은 수명을 다하거나 훼손돼 사라졌지만, 마이애미 사람 중 일부는 지금도 도시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한국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그의 유작들이 지금 마이애미의 주요 비영리 미술관 중 하나인 바스미술관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10월 개막해 내년 8월 16일까지 열리는 '백남준: 마이애미 시절'을 통해서다.
백남준은 마이애미를 사랑했다. 1960~1970년대 뉴욕을 기반으로 세계 곳곳을 다녔던 그는 1980년대 마이애미 해변가의 작은 아파트를 산 뒤, 도시생활에 지칠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일종의 휴식처이자 창의적 영감을 주는 품이었던 셈이다. 1996년 뇌졸중으로 왼쪽이 마비된 이후 그는 마이애미 해변 콘도에 살며 여생을 보냈다.
전시의 시작은 그가 마이애미에 살면서 제작한 'TV첼로'(2003)다. 3개의 TV를 쌓아 만든 작품 속엔 그의 뮤즈였던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의 영상이 흐른다. 백남준은 30년 동안 TV첼로를 제작했는데, 매번 최신 기술을 사용해 새로운 버전을 만들었다.
제임스 부르히 바스미술관 큐레이터는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이나 후나 멈추는 법 없이, 늘 그 순간을 사는 예술가였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투명 아크릴 안에 있는 LCD 모니터는 마치 요즘 만든 작품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말년에 붓을 들고 자신의 작품에 드로잉을 남겼다. 이 작품에도 그가 새긴 이름들이 보인다. 한쪽에 붉은 글씨로 '白바보'라 쓰거나, 다른 작품 위에 'PAIK 쥬ㄴ'이라고 남기기도 했다.
한국전쟁을 피해 홍콩에서 일본으로, 독일에서 미국으로 떠돌며 살았던 탓일까. 그는 뇌졸중 이후 자신이 어디에 살았는 지에 대한 기억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쓴 걸로 알려져 있다. 백남준의 로봇 조각인 'LUCY'(1992)와 '인공 플라스틱 로봇'(2002)도 동시에 전시됐다. 10년 터울의 두 작품중 하나는 큰 스케일로, 다른 하나는 사람 몸 크기로 제작했다.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그의 공항 커미션 작품의 기록들이다. 백남준의 삶과 플로리다에서의 작품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미술관은 그 일대의 공공 도서관, 지역 기록 보관소, 신문 기사 등을 꼼꼼히 찾아 모았다.
1985년 마이애미 정부가 의뢰한 이 프로젝트는 제작하는 데만 5년 걸렸고, 1990년부터 약 8년간 공항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CD 기록물에서 비디오를 복원한 디지털 영상 일부가 함께 전시됐다. 바스미술관 관계자는 "백남준은 1982년부터 2003년까지 남부 플로리다에서 약 10회의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마이애미 웨이브 필름페스티벌과 주요 아트 페스티벌에 초대 받아 작품을 발표했다"며 "마지막 날까지 쉬지 않고 새로운 창작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백남준의 여러 면모와 마지막 시기를 마주할 수 있는 전시란 점에서 특별하다. 신문을 즐겨 읽은 백남준이 2001~2002년 뉴욕타임스와 미주 한국일보 신문에 어린 아이처럼 그려놓은 그림과 마이애미 공항 프로젝트의 시작이 된 초기 스케치도 걸려 있다. 뇌졸중 직후 회복에 안간힘을 쓰던 1998~1999년 사이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린 세 점의 '무제' 작품에는 생명에 대한 그의 간절함이 담겨있다. 그 그림 옆엔 1990년의 '건강한 백남준' 사진(브라이언 스미스의 작품)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TV를 머리에 쓴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 뒤로 마이애미의 야자수가 꼿꼿하게 서있다. 현재 마이애미 정부는 백남준의 마이애미 공항 프로젝트를 복원해 재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머지않은 시기에 마이애미 공항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전시는 내년 8월 16일까지.
마이애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제임스 부르히 바스미술관 큐레이터는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이나 후나 멈추는 법 없이, 늘 그 순간을 사는 예술가였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투명 아크릴 안에 있는 LCD 모니터는 마치 요즘 만든 작품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말년에 붓을 들고 자신의 작품에 드로잉을 남겼다. 이 작품에도 그가 새긴 이름들이 보인다. 한쪽에 붉은 글씨로 '白바보'라 쓰거나, 다른 작품 위에 'PAIK 쥬ㄴ'이라고 남기기도 했다.
한국전쟁을 피해 홍콩에서 일본으로, 독일에서 미국으로 떠돌며 살았던 탓일까. 그는 뇌졸중 이후 자신이 어디에 살았는 지에 대한 기억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쓴 걸로 알려져 있다. 백남준의 로봇 조각인 'LUCY'(1992)와 '인공 플라스틱 로봇'(2002)도 동시에 전시됐다. 10년 터울의 두 작품중 하나는 큰 스케일로, 다른 하나는 사람 몸 크기로 제작했다.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그의 공항 커미션 작품의 기록들이다. 백남준의 삶과 플로리다에서의 작품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미술관은 그 일대의 공공 도서관, 지역 기록 보관소, 신문 기사 등을 꼼꼼히 찾아 모았다.
1985년 마이애미 정부가 의뢰한 이 프로젝트는 제작하는 데만 5년 걸렸고, 1990년부터 약 8년간 공항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CD 기록물에서 비디오를 복원한 디지털 영상 일부가 함께 전시됐다. 바스미술관 관계자는 "백남준은 1982년부터 2003년까지 남부 플로리다에서 약 10회의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마이애미 웨이브 필름페스티벌과 주요 아트 페스티벌에 초대 받아 작품을 발표했다"며 "마지막 날까지 쉬지 않고 새로운 창작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백남준의 여러 면모와 마지막 시기를 마주할 수 있는 전시란 점에서 특별하다. 신문을 즐겨 읽은 백남준이 2001~2002년 뉴욕타임스와 미주 한국일보 신문에 어린 아이처럼 그려놓은 그림과 마이애미 공항 프로젝트의 시작이 된 초기 스케치도 걸려 있다. 뇌졸중 직후 회복에 안간힘을 쓰던 1998~1999년 사이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에 그린 세 점의 '무제' 작품에는 생명에 대한 그의 간절함이 담겨있다. 그 그림 옆엔 1990년의 '건강한 백남준' 사진(브라이언 스미스의 작품)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TV를 머리에 쓴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 뒤로 마이애미의 야자수가 꼿꼿하게 서있다. 현재 마이애미 정부는 백남준의 마이애미 공항 프로젝트를 복원해 재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머지않은 시기에 마이애미 공항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전시는 내년 8월 16일까지.
마이애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