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최고위원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최고위원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는 발언에 대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야권 원로들은 이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 유지' 약속 파기를 시사하자 잇달아 우려를 표했지만, 지도부는 '병립형 회귀'로 방향을 잡은 듯한 모습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CBS 라디오 '뉴스쇼'에 출연해 "모든 약속을 다 지켜야 하느냐, 제가 우리 의원들한테 우스갯소리로 그랬다"며 "대선 때 우리가 정치 개혁한다고 한 약속 다 지키면 3선 연임 금지까지 (약속)했는데 그거 다 지킬 건가?"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위성정당 창당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데 대해 당의 후보로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위성정당 방지법'을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총선에서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꼼수로 비례 의석을 확보하는 경쟁을 벌였었다. 지난 총선 직전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한 정당일수록 비례대표 의석을 적게 가져가게 된다는 허점을 이용해, '지역구 전용 정당'과 '비례대표 전용 정당'을 각각 만든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비례용 정당으로 더불어시민당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을 만들어 선거를 치르는 기형적인 선거 모습이 연출됐다.

홍 원내대표는 "물론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며 "때로는 약속을 못 지키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당당하게 약속을 못 지키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하고 이런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선거 제도와 관련해 당의 입장을 명확히 정하지 않았던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멋진 패배 무용론' 발언 이후 노선을 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영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도 이날 YTN 라디오에서 "연동형 비례제는 내각제와 같이 가는 다당제 구조지 대통령제와 같이 가는 구조는 아닌 것 같다"며 "그건 대한민국의 정치적 불안정성과 혼란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과연 국가와 국민에게 과연 적절한 제도인가를 큰 차원에서 판단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단이 필요한 때가 오고 있다고 본다"며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검토하고 있음을 명확히 했다.

반면 야권 원로들은 민주당 지도부의 이러한 행보에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김부겸 전 총리, 이낙연 전 대표, 손학규 전 대표 등이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유인태 전 총장은 "노무현은 멋있게 여러 번 지지 않았느냐. 저런 소리(를 하는데) 자기가 무슨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냐"고 직격했고, 김부겸 전 총리도 "다시 퇴행의 길을 가려 한다면 국민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일 쓴소리를 이어가는 이낙연 전 대표도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 시사에 "민주당의 정치성 위반"이라고 질타했고,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도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공고화하고 정치적 대결 구조를 심화시키는 커다란 후퇴"라며 "이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