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통 전화해 겨우 돈 받았지만…" 전세금 날릴 뻔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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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누볐던 강서구 빌라촌 가보니
"전세 수요 줄었지만…2030 반전세·월세수요 여전"
전세사기 당할 뻔했던 A씨, 집요하게 전화해 보증금 받았지만…
"다신 빌라 살기 싫어…멀어도 인천 아파트로"
"전세 수요 줄었지만…2030 반전세·월세수요 여전"
전세사기 당할 뻔했던 A씨, 집요하게 전화해 보증금 받았지만…
"다신 빌라 살기 싫어…멀어도 인천 아파트로"
#. 인천 미추홀구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는 20대 직장인 A씨(28). 그는 왕복 3시간 가까이 되는 출퇴근 길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몇 달 전 서울 강서구에서 전세금을 날릴 뻔했던 일을 생각하면 몸이 피곤한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A씨는 불과 4개월 전까지만해도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A씨는 <한경닷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임대인 B씨에게 전화를 건 내역을 직접 공개했습니다. 하나씩 세어보니 전화만 700통이 넘었습니다. 집착에 가까울만큼 B씨에게 전화와 문자를 보내고, 사정과 읍소를 한 끝에 보증금 1억900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임대인 B씨는 다른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경찰 조사를 받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A씨에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난해부터 부동산 시장을 흔들어 놓은 전세사기 사태의 중심에는 서울 강서구가 있었습니다. '1세대 빌라왕'의 주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A씨가 2017년부터 거주했던 집도 이 근방이었습니다. 불안해진 A씨는 2024년이 만기였지만, 지난 3월 불안한 마음에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7월 이사를 계획하고 집도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집주인이 전화를 잘 받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려니, 뭔가 사정이 있으려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예 전화를 받지 않자 모바일로 급하게 등기부등본을 열람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임대인 B씨의 명의로 된 집이 무려 100채에 달했고, A씨가 사는 집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국세 압류가 걸려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국세 압류는 세금을 미납했을 시 정부가 취하는 최후의 조치입니다. 임대인이 채무를 갚지 못하면 임차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해도 부동산 압류가 들어와 경매와 공매 절차가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A씨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믿었던 임대인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도 모자라 지난 7년간 열심히 모은 전 재산을 날릴 처지가 될 수 있다니 아찔했습니다.
A씨는 바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문의했습니다. 그랬더니 전세 만기가 2024년인 A씨의 경우 계약 기간 종료 전 임대임과 연락이 안 된다는 건 보증 사고로 볼 수 없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A씨는 전세 보증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임대인과 합의해 전세 계약을 종료하면, 중도 합의된 날로부터 한 달 후 보증이행 청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A씨는 임대인과 연락이 닿을 때까지 700여통의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대인은 휴대폰을 끄고 수시로 잠적했습니다. 임대인은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게 아니라는 걸 뒤늦게 확인한 뒤에야 연락에 응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실랑이 끝에 드디어 4월 18일 임대인과 임대차계약 중도해지 합의서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A씨는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며 "머리까지 빠져 한동안 탈모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최근 등기부등본을 조회했더니 (전세 사기당할뻔한 집은) 아직 임차권등기명령 해지도 안 되고 압류도 그대로라고 합니다. A씨는 천만다행인 경우입니다. 다세대, 다가구, 오피스텔 등이 몰려 있는 강서구는 서민들의 주거지에서 전세사기의 온상지로 전락했습니다. '범정부 전세 사기 전국 특별단속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지역별 전세 사기 의심 거래 건수는 총 1538건이었습니다. 이 중 강서구가 전체의 23.7%인 365건으로 서울시에서 불명예 1위를 차지한 겁니다.
문제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젊은층이 대부분인데다, 어쩔 수 없이 집을 떠앉고 있어야할 처지라는 점입니다. 이후에는 당연히 경제적인 부담이 이어지게 됩니다. 최근 강서구가 전세사기 피해자 3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세 사기 피해자 전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3%는 30대로 집계됐습니다. 피해액 비율은 2억원 이상 3억원 미만이 58.1%로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향후 주거계획으로는 64.1%가 우선매수권 등을 행사해 현재 피해주택을 구입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강서구로 집을 구하러 오는 이들은 있을까요?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강서구 전세 매물을 찾는 수요가 꾸준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1~2년 전에 비해 강서구에서 전세를 구하는 사람의 수가 확실히 줄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여전히 찾는 사람이 많다"며 "전세 사기 지역이라는 낙인에도 서울지하철 5호선을 이용해 주요 업무단지인 여의도와 광화문을 한 번에 갈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전셋집의 경우 전세보증보험이 가능한지를 따져보거나 반전세(보증부월세), 월세를 찾는 2030이 많아졌다는 전언입니다. 실제 20대 직장인 C씨(27)는 최근 청년 버팀목 대출을 이용해 동생과 함께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 반전세로 집을 얻었다고 합니다. 전세사기 지역에서 완전히 전세로 집을 얻는 건 부담스럽다 보니, 보증금 1억원에 매달 50만원씩 내기로 했다고 하네요.
C씨도 마음이 개운한 것만은 아닙니다. 거주하는 집 바로 아래층이 전세 사기를 당한 집이라고 합니다. 그는 "서울에서 이 가격에 이 정도 집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으니, 강서구로 올 수밖에 없었다"며 "아랫집에 압류 딱지가 잔뜩 붙어있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철렁하긴 하다"고 전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무주택 2030 주거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면, 지역사회 기반을 흔드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발로 뛴 강서구 일대는 썰렁하기는커녕 거주지 대안이 없는 2030에게는 가성비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최근 '메가시티서울'을 비롯해 각종 사업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화려한 조감도를 앞세운 미래의 개발계획도 좋지만, 2030들이 당장 쉴 곳을 찾아주는 일도 꼭 필요한 미래계획이 아닐까요.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A씨는 불과 4개월 전까지만해도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A씨는 <한경닷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임대인 B씨에게 전화를 건 내역을 직접 공개했습니다. 하나씩 세어보니 전화만 700통이 넘었습니다. 집착에 가까울만큼 B씨에게 전화와 문자를 보내고, 사정과 읍소를 한 끝에 보증금 1억900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임대인 B씨는 다른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경찰 조사를 받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A씨에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난해부터 부동산 시장을 흔들어 놓은 전세사기 사태의 중심에는 서울 강서구가 있었습니다. '1세대 빌라왕'의 주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A씨가 2017년부터 거주했던 집도 이 근방이었습니다. 불안해진 A씨는 2024년이 만기였지만, 지난 3월 불안한 마음에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7월 이사를 계획하고 집도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집주인이 전화를 잘 받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급한 일이 있으려니, 뭔가 사정이 있으려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예 전화를 받지 않자 모바일로 급하게 등기부등본을 열람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임대인 B씨의 명의로 된 집이 무려 100채에 달했고, A씨가 사는 집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국세 압류가 걸려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국세 압류는 세금을 미납했을 시 정부가 취하는 최후의 조치입니다. 임대인이 채무를 갚지 못하면 임차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해도 부동산 압류가 들어와 경매와 공매 절차가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A씨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믿었던 임대인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도 모자라 지난 7년간 열심히 모은 전 재산을 날릴 처지가 될 수 있다니 아찔했습니다.
A씨는 바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문의했습니다. 그랬더니 전세 만기가 2024년인 A씨의 경우 계약 기간 종료 전 임대임과 연락이 안 된다는 건 보증 사고로 볼 수 없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A씨는 전세 보증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임대인과 합의해 전세 계약을 종료하면, 중도 합의된 날로부터 한 달 후 보증이행 청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A씨는 임대인과 연락이 닿을 때까지 700여통의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대인은 휴대폰을 끄고 수시로 잠적했습니다. 임대인은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게 아니라는 걸 뒤늦게 확인한 뒤에야 연락에 응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실랑이 끝에 드디어 4월 18일 임대인과 임대차계약 중도해지 합의서를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A씨는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며 "머리까지 빠져 한동안 탈모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최근 등기부등본을 조회했더니 (전세 사기당할뻔한 집은) 아직 임차권등기명령 해지도 안 되고 압류도 그대로라고 합니다. A씨는 천만다행인 경우입니다. 다세대, 다가구, 오피스텔 등이 몰려 있는 강서구는 서민들의 주거지에서 전세사기의 온상지로 전락했습니다. '범정부 전세 사기 전국 특별단속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지역별 전세 사기 의심 거래 건수는 총 1538건이었습니다. 이 중 강서구가 전체의 23.7%인 365건으로 서울시에서 불명예 1위를 차지한 겁니다.
문제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젊은층이 대부분인데다, 어쩔 수 없이 집을 떠앉고 있어야할 처지라는 점입니다. 이후에는 당연히 경제적인 부담이 이어지게 됩니다. 최근 강서구가 전세사기 피해자 3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세 사기 피해자 전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3%는 30대로 집계됐습니다. 피해액 비율은 2억원 이상 3억원 미만이 58.1%로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향후 주거계획으로는 64.1%가 우선매수권 등을 행사해 현재 피해주택을 구입할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강서구로 집을 구하러 오는 이들은 있을까요?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강서구 전세 매물을 찾는 수요가 꾸준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1~2년 전에 비해 강서구에서 전세를 구하는 사람의 수가 확실히 줄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여전히 찾는 사람이 많다"며 "전세 사기 지역이라는 낙인에도 서울지하철 5호선을 이용해 주요 업무단지인 여의도와 광화문을 한 번에 갈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전셋집의 경우 전세보증보험이 가능한지를 따져보거나 반전세(보증부월세), 월세를 찾는 2030이 많아졌다는 전언입니다. 실제 20대 직장인 C씨(27)는 최근 청년 버팀목 대출을 이용해 동생과 함께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 반전세로 집을 얻었다고 합니다. 전세사기 지역에서 완전히 전세로 집을 얻는 건 부담스럽다 보니, 보증금 1억원에 매달 50만원씩 내기로 했다고 하네요.
C씨도 마음이 개운한 것만은 아닙니다. 거주하는 집 바로 아래층이 전세 사기를 당한 집이라고 합니다. 그는 "서울에서 이 가격에 이 정도 집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으니, 강서구로 올 수밖에 없었다"며 "아랫집에 압류 딱지가 잔뜩 붙어있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철렁하긴 하다"고 전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무주택 2030 주거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면, 지역사회 기반을 흔드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발로 뛴 강서구 일대는 썰렁하기는커녕 거주지 대안이 없는 2030에게는 가성비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최근 '메가시티서울'을 비롯해 각종 사업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화려한 조감도를 앞세운 미래의 개발계획도 좋지만, 2030들이 당장 쉴 곳을 찾아주는 일도 꼭 필요한 미래계획이 아닐까요.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