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모든 약속 다 지켜야 되냐"…상식 뒤엎는 野 선거제 논쟁
“(정치인이) 모든 약속을 다 지켜야 합니까? 지키지 못할 상황이 있으면 당당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하면 됩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겠다는 대선 당시의 약속을 깨면 국민적 반발이 있을 것”이라는 이낙연 전 대표의 지적에 내놓은 대답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어 “김대중 대통령도 은퇴와 정계 복귀를 거듭하며 국민께 사과하지 않았나. 그게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총선이 임박하자 비례대표 선거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민주당 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은 김동연 경기지사·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등 제3지대 후보들과의 단일화를 위해 “다음 총선부터 완전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탄희 의원을 필두로 70명이 넘는 민주당 의원은 지도부가 당시의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목소리는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그룹인 ‘7인회’ 소속 민형배 의원도 동조할 만큼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 이 대표와 홍 원내대표를 필두로 한 지도부는 약속 번복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연동형 비례제 방식이 기존 병립형 비례제보다 민주당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준연동형 비례제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에 “멋있게 패배하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지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모든 약속을 지키려고 하면 3선 이상 동일 지역구 불출마 공약도 지켜야 한다”는 홍 원내대표의 발언 역시 연동형 비례제를 찬성하는 중진들을 압박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내부에선 지도부가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지지율을 잃는 실수를 뒤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7월 이 대표를 비롯한 의원 전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를 약속했다가, 넉 달 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임박하자 이를 뒤집은 전례가 있다. 당시 민심은 부정적으로 반응했고, 민주당 지지율은 이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되기 전까지 하락을 거듭했다. 이 같은 상황이 총선을 앞두고 재현되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도부의 무책임함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감지된다. 당내 비이재명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의원은 “정당이 공약을 뒤집으려면 합리적인 이유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며 “실행되지도 않은 선거제도를 ‘지금 생각해 보니 불리하다’며 뒤집는 정당을 누가 지지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다른 야권 관계자는 “국회 제1당의 원내대표가 정치인이 언제든지 약속을 뒤집을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