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백남준 최초 다큐 '달은 가장 오래된 TV' 어맨다 김 감독
"지금 젊은 작가가 만든 듯 현대적…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백남준, 기술의 양면성 정확히 예견…지금 세대 새겨들어야"
"새로움은 아름다움보다 중요해요.

새로운 건 뭐든 시도해볼 만합니다.

"
'비디오아트의 아버지' 고(故) 백남준(1932∼2006)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가였다.

미국과 독일에서 음악사와 철학, 미술사 등을 공부한 그는 전공과는 달리 행위예술로 활동을 시작했다.

무대에서 피아노를 때려 부수거나 머리카락에 먹을 묻혀 그림을 그렸고, 나체의 첼리스트와 공연하다 체포되는 일도 겪었다.

1960년대 중반 그의 마음을 잡아끈 건 비디오였다.

당시 엘리트 중심의 '예술 계급도'에서는 그림이 맨 꼭대기에 위치했고 그다음이 조각이었다.

사진이나 영화마저도 예술로 쳐주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백남준은 비디오에 흠뻑 매료돼 텔레비전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으로 날아갔다.

이곳에서 그는 비디오 아트라는 자기만의 장르를 개척했다.

이 같은 백남준의 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가 6일 개봉했다.

그에 관한 영화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년이라는 긴 제작 기간을 거쳐 이 작품을 내놓은 한국계 미국인 감독 어맨다 김을 서면으로 만났다.

김 감독은 "백남준의 창의성과 실험정신, 장애물을 장애물로 여기지 않고 급진적으로 새롭고 특이한 것을 시도하는 모습이 큰 영감을 줬다"고 연출 동기를 밝혔다.

"그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에요.

백남준의 작품들은 이 시대의 젊은 작가가 만든 것처럼 지극히 현대적이지요.

부처상이 TV 속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TV 부처'나 식물 사이에 TV를 놓은 'TV 정원'이 좋은 사례입니다.

마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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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기술의 양면성 정확히 예견…지금 세대 새겨들어야"
김 감독은 6년 전 'TV 부처'(1974)를 보고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린 뒤 백남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때부터 각종 기사를 비롯해 영상, 편지 등 백남준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했다.

"백남준을 조금 이해했다 싶을 때마다 제 생각과 가정을 뒤집어 버리는 무언가가 등장해 계속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김 감독은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백남준과 함께 활동하거나 친분이 있던 사람을 인터뷰하고 이들이 보관한 자료도 얻었다.

최근 타계한 단색화 거장 박서보를 비롯해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데이비드 로스 전 휘트니 미술관장 등이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에 등장한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백남준의 청년 시절부터 눈을 감기 전까지의 모습이 담겼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프로그램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과 제24회 서울올림픽 기념작 '다다익선'(1988) 등을 선보인 영광의 시절뿐만 아니라 비평가들의 혹평과 가난에 시달리던 때도 고루 비춘다.

김 감독은 지난 5년간 백남준을 연구하면서 그가 기술의 양면성을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내다본 '예언가'였음을 알게 됐다고도 강조했다.

번쩍번쩍한 겉모습으로 인해 그의 작품에 낙관적인 시각만이 담겼을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실은 기술의 진보가 불러올 부정적 측면도 내포했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 혁신이 가져올 수 있는 해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어요.

이런 두려움 때문에 기술이 가진 긍정적 측면을 조명하는 동시에 기술을 인간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던 겁니다.

백남준은 우리에게 (기술의 해로움을 인지하라고) 경고합니다.

지금 세대는 백남준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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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기술의 양면성 정확히 예견…지금 세대 새겨들어야"
이 작품은 영국 일간 가디언의 '올해의 영화'에 선정되고 선댄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이 내레이션하고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는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백남준의 친구였던 사카모토는 1980년대에 그를 위한 헌정곡인 '어 트리뷰트 투 NJP'(A Tribute to NJP)를 만들었다.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 암 투병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곡을 만들어 보냈다고 한다.

스티븐 연은 백남준의 오랜 팬이다.

그는 "누구도 생각 못 한 일을 해낸 백남준의 초월적인 삶의 방식을 단순히 모방하지 않고 느끼고 표현하려 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백남준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각기 다른 예술 매체 사이에서 자기 자리를 눈부시게 개척한 인물"이라면서 "스티븐 역시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백남준이 '중간 지대'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걸 깊이 인식했고 훌륭하게 그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백남준, 기술의 양면성 정확히 예견…지금 세대 새겨들어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