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 기자
분양받은 아파트에 의무로 실거주해야 하는 제도가 없어지지 않고 존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폐지를 추진했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서인데요. 1년 가까이 상임위 소위 상정조차 안 된 건 그만큼 이견이 컸기 때문입니다.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통해 실거주 의무 폐지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죠.

실거주 의무를 없애는 법안은 지난 2월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했습니다. 사실상의 정부안인데요. 9일 정기국회 종료를 앞두고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회 소위 문턱도 넘지 못한 상태입니다. 내년부턴 국회가 총선 모드에 돌입하고, 21대 국회의 회기는 5월 종료되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법안 폐기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죠.

우선 실거주 의무 폐지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부동산 투기 바람이 심해질 수 있는 상황을 염려합니다. 애초 투기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인데 이를 다시 없애려는 상황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이죠. 정부는 입주를 앞두고 자금 사정이 꼬이는 경우 등에 대해 구제할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례 때문에 제도 자체를 없애는 건 무리라는 게 반대하는 의원들의 입장입니다. 그렇다고 자금 사정을 일일이 확인해 예외를 적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고요.

실거주 의무 폐지를 찬성하는 의원들도 원안 통과는 물건너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론된 대안은 '최초입주가능일' 규정을 손보자는 것인데요. 현재 제도는 최초입주가능일인 준공 직후부터 수분양자가 해당 주택에 의무로 거주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최초입주가능일'이란 단어를 지운다면 실거주 의무는 그대로 두되 그 시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죠. 자금 사정이 안 좋은 집주인들이라면 일단 아파트가 준공될 땐 세입자를 받았다가 나중에 가서 본인이 입주해 실거주 의무를 채우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거론만 됐을 뿐 이 대안들은 심도 있게 논의되진 못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주택법 개정안 자체가 폐기 수순을 밟아가고 있죠.
그런데 수요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건 실거주 제도가 이미 대부분 지역에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분양가 상한제와 연동해 작동하기 때문인데요. 상한제가 풀린 지역이라면 실거주 의무도 없는 셈입니다. 상한제가 적용되는 서울 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에서 분양하는 단지들만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고 있죠.
다만 논란이 되고 있는 건 정부가 제도 폐지 이후 소급을 약속했기 때문인데요. 실거주 의무가 부과되는 동안 아파트를 분양받은 분들의 경우 사후에 제도가 개정되는 것을 기대했다가 낭패를 보게 된 상황인 것이죠. 과거 종합부동산세 개편 당시에도 마찬가지의 일이 있었는데요. 칼자루를 국회가 쥐고 있는 사안들이라면 정부의 공언이 있다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조희재·예수아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