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의 음악공간 아파트먼트 프란츠.  /최다은 기자
서울 광진구의 음악공간 아파트먼트 프란츠. /최다은 기자
오선지를 수놓은 질서정연한 음표, 흑백이 교차하는 피아노 건반, 현악기의 S자 곡선형 몸통…. “클래식 음악은 듣는 게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하수다. 알고 보면 클래식 음악에는 귀 못지않게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많다.

프란츠는 그런 포인트를 포착해 사업으로 만든 업체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시각화’하는 게 사업 모델이다. 예술 분야의 책과 음악 굿즈를 만들고, 음악 애호가를 위한 공간을 운영한다. 프란츠가 만드는 소품은 악보가 들어간 액자, 템포 지시어가 담긴 마스킹 테이프, 작곡가 이름이 새겨진 자 등 모두 클래식을 접목한 아이템이다.

                김동연 대표
김동연 대표
그게 궁금했다. 어쩌다가 이런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는지. 서울 광진구의 음악 공간 ‘아파트먼트 프란츠’에서 만난 김동연 대표(46·사진)는 이런 답을 내놨다.

“클래식 음악에 빠져드는 길이 어디 하나인가요. 책이 재밌어서, 새로 산 자가 예뻐서, 인테리어에 관심 있어서 프란츠를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되는 거죠. ‘클래식 음악을 공부해야겠다’는 진지한 사람도 있지만, 편안하게 음악을 알고 싶은 사람이 더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2015년 음악 전문 출판사로 시작한 프란츠는 2019년부터 아파트먼트 프란츠라는 공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자신이 살던 집 3분의 2가량을 프란츠를 위한 공간으로 바꿨다. 이곳에서는 음악 강의, 음악 감상, 연주회 등 20명 내외의 소규모 모임이 수시로 열린다. 지난 5월부터는 소설가 김애란, 작가 겸 음악가 요조, 셰프 박준우 등을 초청해 ‘어떤 예술의 세계’란 강연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클래식 책에는 담기지 않은 음악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간을 만들었다”며 “프란츠가 나아갈 방향을 이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주회가 열리고 있는 아파트먼트 프란츠.  /프란츠 제공
연주회가 열리고 있는 아파트먼트 프란츠. /프란츠 제공
235㎡(약 71평)짜리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음악에 빠져들도록 설계했다. 작은 소품 하나도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일본 경매에서 매입한 샤갈의 그림, 1890년산 수동형 메트로놈, 피아노 건반처럼 검은색과 흰색 소품으로 배치된 가구들…. 스토리가 있는 물품을 음악과 어우러지게 세팅했다.

김 대표는 건국대 음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에콜 노르말과 베르사유예술학교에서 공부했다. 바이올린을 가르치던 중 바이올린 교재를 제작하면서 출판업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생각이 더 발전해 직접 음악 관련 책을 만들기로 했다. 시중에 있는 음악 관련 책으론 2%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까드르’. /최다은 기자
악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까드르’. /최다은 기자
프란츠는 외형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을 출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유럽 곳곳의 서점을 돌아다니며 번역서로 낼 만한 책들을 찾아다녔다. 그중 하나가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다. 음악에 대한 양가적인 관점을 다루며 음악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이외에도 악보집, 음악 교재, 음악 역사, 음악가 자서전 등 음악 주제로 한 다양한 책을 만들고 있다.

“이제 웬만한 음악 정보는 온라인에서 다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다른 데는 없는 가치 있는 콘텐츠가 담긴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한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라 매년 꺼내 읽을 만한 그런 책이요.”

김 대표는 소품을 만들 때도 ‘차별화된 가치’를 담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옛날 악보를 액자에 넣어 파는 ‘까드르’가 대표적이다. 김 대표가 파리에서 수집한 1960~1970년대 악보에는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은 다시 만들 수 없는 빈티지 감성이다.

“클래식은 대중음악이나 재즈와 달리 악보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클래식 악보에는 권위가 있어요. 보기에도 아름답죠. 이 분위기를 사람들이 알면 좋을 것 같았어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악보 읽기 모임’도 주선하고, 악보를 멋지게 디자인한 다음 팔기도 합니다.”

클래식 음악도, 그걸 다룬 책도, 많은 이들이 찾는 건 아니다. 소수의 특별한 취향에 가깝다. 그럼에도 프란츠는 조금씩 덩치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사옥에서 한 달간 팝업 스토어를 연 데 이어 이달에는 부산에서 팝업 스토어를 선보인다. 책은 현재 12권을 출판했다.

“궁극적으로 가고 싶은 방향은 음악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음악과 예술을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이 (프란츠가 만든) 아름다운 걸 보고, 쓰고, 읽다 보면 행복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게 느껴질 겁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