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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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월스트리트(월가) 큰 손들이 조용히 중국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의 경기 둔화와 시진핑 국가주석 장기 집권에 대한 우려로 외국 자본의 이탈이 가속하는 모습이다.

7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투자정보업체 프레퀸 집계 결과 월스트리트 사모펀드가 지난 10년간 중국 투자를 위해 모집한 자금은 매년 평균 1000억달러(약 130조원)에 달했으나,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조성된 자금은 43억5000만달러(5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미국에서는 브리지워터를 비롯한 대형 헤지펀드들이 최근 중국 관련 보유 주식을 대폭 축소했다. 브리지워터는 3분기에만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 등 30여개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 지분을 청산 또는 축소했다. 칼라일 등 사모펀드는 중국과 관련한 신규 펀드 모집을 중단하거나 아시아 펀드 운용 자금 목표를 낮췄다.

미국 대형 펀드들의 대중국 투자가 줄면서 글로벌 자본 흐름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 주식과 채권에 대한 국제 자본의 투자액은 올해 들어 지난 10월 말까지 310억 달러(약 39조7000억 원) 순감했다. 이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최대 순 유출 규모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 정치권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WSJ에 따르면 하원 내 대표적인 대중 강경론자인 마이크 갤러거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장(공화·위스콘신)이 지난 9월 월스트리트의 주요 업체 경영진과 만나 중국과 다른 적대국에 대한 강력한 투자 제한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이미 중국 투자를 축소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미국 투자자들이 중국 시장에서 발을 빼는 원인으로는 중국의 경기침체 우려, 시진핑 체제의 불확실성 등이 꼽힌다. 월스트리트는 미·중 관계 악화 속에서도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중국 기관의 자금을 관리하고, 중국 기업의 상장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브리지워터는 9월 말 투자 보고서에서 "중국은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디레버리징(부채감축)의 한 가운데 있다"며 "성장은 여전히 원하는 것보다 약하다"고 분석했다. 럭스캐피탈의 조시 울프 매니징 파트너는 "5년 전 중국에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는 중국 정부가 사회 감시를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국가 통제 강화의 징후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월스트리트의 업체들은 대중국 투자를 대폭 줄이면서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당국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향후 중국 시장에서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달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 기간 시진핑 주석의 기업인 만찬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설립자 등 월스트리트의 큰 손들이 총출동했다. 참가자들은 시 주석의 발언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WSJ은 미국 기업인들이 대중국 투트랙 접근 방식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는 지난 9월 비공개 조건으로 갤러거 특별위원장과 회담한 이유기도 하다고 전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