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부 내구재를 중심으로 디플레이션까지 일어나고 있지만 월가에선 여전히 인플레이션 논쟁이 뜨겁다.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 등이 둔화하긴 했지만 아직도 미국 중앙은행(Fed)의 목표치 2%를 훨씬 웃돌고 있어서다.

7일(현지시간) 월가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토머스 사이먼스 미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던) 미국 소비자 행동의 특이점이 실제로 사라졌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특이점은 두 가지다. 미국 정부의 대규모 부양 정책으로 쌓인 초과저축액이 국민들의 소비를 촉진시켰다. 또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공포가 가라앉으면서 여행과 외식 등 그간 누리지 못했던 부문에서 소비가 늘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초과저축액이 소진되고, 서비스 부문이 이끌던 임금상승률도 둔화 추세를 보이며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10월 근원 PCE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5%이고 3개월 평균은 2.4%(연율)다. Fed의 목표치인 2%에 근접한 수준이다. PCE는 Fed가 통화 정책을 결정할 때 CPI보다 더 비중 있게 참고하는 지표다. 정부가 제공하는 건강보험과 고용주의 복리후생 비용 등 CPI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물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가 식어가고 있긴 하지만 충분한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미국의 10월 비농업 부문 임금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1%로 2021년 10월 이후 가장 낮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인 2~3%보다는 여전히 높다. 앤드루 홀렌호스트 씨티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생산성이 연평균 1%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현재 임금 상승률은 약 3~4%의 인플레이션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채권 금리 하락에 따른 뉴욕증시의 호황이 개인 투자자들의 더 많은 소비를 촉진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투자운용사 티로프라이스의 블레리나 우루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의 회복력을 감안할 때 금융 상황의 추가 완화는 물가 압력을 재점화할 수 있는 수요에 자극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