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도 사랑하는 수녀 시인' 이해인 "러브레터처럼 살다 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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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의 신작 시집 <이해인의 햇빛 일기> 출간
지난해 노벨문학상 후보를 점치는 영국 베팅사이트 '나이서오즈'에 새로운 한국 시인의 이름이 등장했다. 'Claudia Lee Hae-in'. 시인이자 수도자 이해인 수녀(수도명 클라우디아·78)를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후보로 예상하는 이들이 해외에서도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1964년 수녀원에 입회, 1976년 종신서원을 한 그는 1970년 가톨릭 잡지에 동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낸 이후 시집, 에세이, 번역서 등 50여권의 책을 내며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최근 8년 만의 신작 시집 <이해인의 햇빛 일기>를 출간한 이해인 수녀를 지난 9일 서울 동자동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서울지구에서 만났다. 전날 수색성당에서 열린 초청 강연 때문에 서울을 찾은 그는 "시집 안의 시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 작은 희망의 햇빛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평소에는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해인글방'에서 기도하고 손님을 맞거나 시를 쓴다.
"수색성당 강연을 마치고 사람들이 사인을 받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기에 제가 미안해서 '제 사인은 천국행 티켓도 아닌데요' 했어요.(웃음) 오래 두고 읽어 너덜너덜해진 시집, 빛 바랜 시집을 들고온 분들도 있더라고요. 위로가 필요한 시대인데, 제 시를 읽고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다니 제가 감사한 일이지요." <이해인의 햇빛 일기>에는 위로와 희망의 언어가 담겨 있다. '햇빛 주사'란 시는 "차가운 몸이 이내 따뜻해지고/우울한 맘이 이내 밝아지는/햇빛 한줄기의 주사"를 노래한다. 2008년 직장암 진단을 받은 뒤 오랜 투병생활을 한 그는 "아픔 뒤에 햇빛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됐다"며 "매일 아침마다 해가 뜨고 그 햇빛이 온갖 생명을 자라게 한다는 놀랍지 않느냐"고 했다.
시집에는 파김치를 먹다가 "파! 라는 단어가 주는 싱싱함"('파김치를 먹으며')에 감탄하는 재기발랄한 면모도 담겨 있다. 그는 "수녀가 쓰는 시라 뻔하다, 쉬운 말로 써서 시시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석류에 대한 시를 쓰려 3년간 석류에 대해 공부할 정도로 공을 들이곤 한다"고 했다. '위로와 치유의 시인' '국민 이모'라 불리는 그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을 어떻게 버틸까. 이해인 수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자꾸 '수녀님은 언제 화 나세요' '괴로울 땐 어떻게 하세요' 궁금해한다"며 웃었다. 선의로 한 행동이 오해를 살 때, 남의 엉뚱한 뒷말을 들을 때, 엉뚱한 시가 이해인 수녀의 사진까지 덧붙여져 인터넷에 돌아다닐 때…. 그 역시 화가 나고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럴 때 그를 위로하는 '보물'은 독자들의 편지다. 그가 머무는 해인글방 창고와 책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보낸 편지가 가득하다. 집배원들이 해인글방을 얼마나 자주 오가는지 몇 년 전 한 초등학생이 주소를 '부산 광안리 민들레의 영토 수녀원 이해인 수녀'라고만 적어 편지를 보냈는데도 무사히 배달됐을 정도다.
그는 아직도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한다. 암 환자, 교도소 사형수 등 용기와 위로가 절실한 이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다. 그는 "답장을 받고 기뻐하면 제가 기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가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에게 편지를 보냈다가 "이모님, 모두 제게 회개하라고 하는데 제 안의 맑은 마음을 꺼내라고 한 분은 처음입니다" 하고 생일날 꽃다발까지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도 그에게 마음을 기댄다. 불자인 한 시인은 "수녀님과 동시대에 살아서 기쁘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해인 수녀는 "몇해 전부터 '내가 나고 자란 부산의 비극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부산의 태풍이나 재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사고 유족들을 종교에 상관 없이 찾아가 만난다"고 했다.
내년이면 입회 60주년을 맞는 이해인 수녀에게 그간 수도생활의 아쉬운 점을 묻자 "더 베풀지 못했던 순간들"이라고 했다. 그는 "젊어서는 갑자기 찾아온 유명세에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의 첫 시집은 수녀원에서만 나눠 읽기 위해 소량 제작했다가 신문에 표제작이 실리고 유명세를 타면서 정식 출간됐다. 수도원의 젊은 수녀는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한때는 수도원에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까칠하게 굴었죠. 수도생활은 일정 부분 은둔과 고독이 필요해요. 소란을 만드는 거 같아 주변에 눈치가 보였어요. 수도자와 시인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것 같아 많이 울기도 하고 갈등도 겪었죠. 하지만 저는 언제나 수도자이고, 이제는 시가 곧 기도이고 이웃을 위한 기쁨이라는 걸 압니다."
이번 시집의 또 다른 주제는 '이별과 그리움'이다. 팔순을 앞둔 그는 수도원 게시판의 부고를 보며 "요즘 나는/이별학교 학생이 된 것 같네"('이별학교') 고백한다. 먼저 떠나간 이들을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맞게 될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그는 요즘 수도원 뜰에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생과 죽음에 대해 골몰한다고 했다. "언젠가 누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일생을 러브레터처럼 살다간 사람'이라 기억됐으면 해요. 수녀로서 첫 서원을 하면서 한 사람을 위한 애인이 되기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모든 것이 되기를 꿈꿨던, 그때 그 마음대로요. 여전히 그렇게 기도하듯 시를 쓰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연말연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청했다. 그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하기 전에 복을 짓고, 복을 나누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시 '무지개 빛깔의 새해 엽서'가 적힌 책자를 건넸다. 이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빨강,/그 눈부신 열정의 빛깔로 새해에는(…)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최근 8년 만의 신작 시집 <이해인의 햇빛 일기>를 출간한 이해인 수녀를 지난 9일 서울 동자동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서울지구에서 만났다. 전날 수색성당에서 열린 초청 강연 때문에 서울을 찾은 그는 "시집 안의 시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 작은 희망의 햇빛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평소에는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해인글방'에서 기도하고 손님을 맞거나 시를 쓴다.
"수색성당 강연을 마치고 사람들이 사인을 받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기에 제가 미안해서 '제 사인은 천국행 티켓도 아닌데요' 했어요.(웃음) 오래 두고 읽어 너덜너덜해진 시집, 빛 바랜 시집을 들고온 분들도 있더라고요. 위로가 필요한 시대인데, 제 시를 읽고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다니 제가 감사한 일이지요." <이해인의 햇빛 일기>에는 위로와 희망의 언어가 담겨 있다. '햇빛 주사'란 시는 "차가운 몸이 이내 따뜻해지고/우울한 맘이 이내 밝아지는/햇빛 한줄기의 주사"를 노래한다. 2008년 직장암 진단을 받은 뒤 오랜 투병생활을 한 그는 "아픔 뒤에 햇빛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됐다"며 "매일 아침마다 해가 뜨고 그 햇빛이 온갖 생명을 자라게 한다는 놀랍지 않느냐"고 했다.
시집에는 파김치를 먹다가 "파! 라는 단어가 주는 싱싱함"('파김치를 먹으며')에 감탄하는 재기발랄한 면모도 담겨 있다. 그는 "수녀가 쓰는 시라 뻔하다, 쉬운 말로 써서 시시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석류에 대한 시를 쓰려 3년간 석류에 대해 공부할 정도로 공을 들이곤 한다"고 했다. '위로와 치유의 시인' '국민 이모'라 불리는 그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을 어떻게 버틸까. 이해인 수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자꾸 '수녀님은 언제 화 나세요' '괴로울 땐 어떻게 하세요' 궁금해한다"며 웃었다. 선의로 한 행동이 오해를 살 때, 남의 엉뚱한 뒷말을 들을 때, 엉뚱한 시가 이해인 수녀의 사진까지 덧붙여져 인터넷에 돌아다닐 때…. 그 역시 화가 나고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럴 때 그를 위로하는 '보물'은 독자들의 편지다. 그가 머무는 해인글방 창고와 책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보낸 편지가 가득하다. 집배원들이 해인글방을 얼마나 자주 오가는지 몇 년 전 한 초등학생이 주소를 '부산 광안리 민들레의 영토 수녀원 이해인 수녀'라고만 적어 편지를 보냈는데도 무사히 배달됐을 정도다.
그는 아직도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한다. 암 환자, 교도소 사형수 등 용기와 위로가 절실한 이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다. 그는 "답장을 받고 기뻐하면 제가 기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가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에게 편지를 보냈다가 "이모님, 모두 제게 회개하라고 하는데 제 안의 맑은 마음을 꺼내라고 한 분은 처음입니다" 하고 생일날 꽃다발까지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도 그에게 마음을 기댄다. 불자인 한 시인은 "수녀님과 동시대에 살아서 기쁘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해인 수녀는 "몇해 전부터 '내가 나고 자란 부산의 비극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부산의 태풍이나 재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사고 유족들을 종교에 상관 없이 찾아가 만난다"고 했다.
내년이면 입회 60주년을 맞는 이해인 수녀에게 그간 수도생활의 아쉬운 점을 묻자 "더 베풀지 못했던 순간들"이라고 했다. 그는 "젊어서는 갑자기 찾아온 유명세에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의 첫 시집은 수녀원에서만 나눠 읽기 위해 소량 제작했다가 신문에 표제작이 실리고 유명세를 타면서 정식 출간됐다. 수도원의 젊은 수녀는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한때는 수도원에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까칠하게 굴었죠. 수도생활은 일정 부분 은둔과 고독이 필요해요. 소란을 만드는 거 같아 주변에 눈치가 보였어요. 수도자와 시인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것 같아 많이 울기도 하고 갈등도 겪었죠. 하지만 저는 언제나 수도자이고, 이제는 시가 곧 기도이고 이웃을 위한 기쁨이라는 걸 압니다."
이번 시집의 또 다른 주제는 '이별과 그리움'이다. 팔순을 앞둔 그는 수도원 게시판의 부고를 보며 "요즘 나는/이별학교 학생이 된 것 같네"('이별학교') 고백한다. 먼저 떠나간 이들을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맞게 될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그는 요즘 수도원 뜰에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생과 죽음에 대해 골몰한다고 했다. "언젠가 누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일생을 러브레터처럼 살다간 사람'이라 기억됐으면 해요. 수녀로서 첫 서원을 하면서 한 사람을 위한 애인이 되기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모든 것이 되기를 꿈꿨던, 그때 그 마음대로요. 여전히 그렇게 기도하듯 시를 쓰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연말연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청했다. 그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하기 전에 복을 짓고, 복을 나누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시 '무지개 빛깔의 새해 엽서'가 적힌 책자를 건넸다. 이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빨강,/그 눈부신 열정의 빛깔로 새해에는(…)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