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리스트의 독주는 계속될 것” vs “시장 판도가 바뀌는 시발점이 될 것”.

요즘 골프업계 최대 화두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최근 발표한 골프공 성능 규제다. 지금 판매되는 골프공이 죄다 ‘비공인’이 되는 만큼 모든 골프용품 업체가 똑같은 출발점에서 경쟁할 수 있는 판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새로운 규제가 시행돼도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에서 앞선 ‘타이틀리스트 독주 체제’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과 이 기회에 골프공 시장을 잡으려는 업체들의 도전으로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란 예상이 맞서고 있다.
골프공 비거리 제한…타이틀리스트 20년 독주 깨질까

“새 규정에도 기존 강자가 유리”

지난 7일 R&A와 USGA가 발표한 골프공 비거리 규제 방안은 이렇게 요약된다. 시속 125마일(약 201㎞), 발사각도 11도, 스핀 2200rpm으로 공을 때렸을 때 비거리가 317야드(오차 3야드)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 현행 기준보다 스윙 스피드를 5마일 높이고 발사각을 1도 높였다. 새 테스트 방식에 맞춰 공을 만들면 볼 스피드가 시속 183마일(294.5㎞)인 선수는 드라이버 비거리가 13∼15야드 줄어든다. 여자 프로 선수는 5~7야드 줄어든다. 2028년부터 프로 선수, 2030년부턴 아마추어에도 적용한다.

500년 골프 역사에 골프공 관련 규제가 있었던 건 그동안 딱 두 번뿐이다. 첫 대상은 1990년 나온 골프공 크기 규정이었다. 당시 각기 다른 크기 규정을 갖고 있던 R&A와 USGA가 처음 같은 크기(직경 42.67㎜)를 쓰는 데 합의했다. 두 번째 규정은 2003년 기존 규격에 추가로 적용한 현행 테스트 방식이다.

규정이 좀체 안 바뀌다 보니 20년 넘게 독주하고 있는 타이틀리스트 자리를 흔들 수 있는 동력이 없었다. 타이틀리스트는 2000년 ‘프로 V1’을 내놓은 뒤 투어 사용률과 글로벌 판매량에서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미국 기업 분석 사이트 알파시킹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골프공 시장에서 타이틀리스트 점유율은 약 50%(공인구 기준)였다. 남은 자리를 2위 캘러웨이골프(점유율 약 20%)와 브리지스톤, 스릭슨 등이 나눠 갖고 있다.

경쟁자들에겐 타이틀리스트를 흔들 계기가 생겼지만, 역전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새 테스트 규정이 생각보다 골프공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A 브랜드 골프공 연구원은 “공 생산 과정에서 경도를 조절하거나 커버 역할을 하는 우레탄의 두께, 혹은 내부 레이어 두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거리 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B 브랜드 연구원은 “코어를 손대거나 딤플의 배치 변화로도 거리 조절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규정 변화가 업계 판도 흔들 것”

반론도 있다. 타이틀리스트가 2000년대 초반 던롭을 완벽하게 누를 수 있었던 배경에 규정 변화(1차 골프공 테스트 규정)가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규정 변화는 업계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되곤 한다”고 말했다. C 골프공 연구원은 “비거리 규제가 생기면 업체들은 스핀양 증가 등 다른 성능을 끌어올리는 경쟁을 펼칠 것”이라며 “기술력이나 자금에선 캘러웨이와 탄탄한 모기업을 둔 브리지스톤, 던롭 스릭슨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예상했다.

업계에선 R&A와 USGA가 프로와 아마추어에게 다른 규정을 적용하는 ‘골프공 이원화’를 예상과 달리 포기한 건 타이틀리스트에 유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타이틀리스트는 세계 최고 선수들이 많이 쓰는 공이라는 이미지가 아마추어 골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피라미드 영향’ 전략을 쓰고 있다. ‘잘 치는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이 당연히 좋다’는 인식을 심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마케팅을 잘하는 타이틀리스트라도 투어 선수가 쓰는 공이라는 현재 전략을 골프공 이원화가 됐을 때 쓰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캘러웨이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골프공 이원화가 무산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캘러웨이는 “USGA와 R&A가 그들이 믿는 방향으로 골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에 감사하다”며 “우리는 단순히 골프공 비거리를 제한하는 것보단 이원화를 선호했다”고 밝혔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