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은 종종 ‘침팬지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경제학자들의 경제 전망이 침팬지가 다트를 던져서 맞힌 수치보다 적중률 면에서 나을 게 없다는 비아냥이다. 그럴 만도 하다. 올해 미국 경제는 작년 말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의 호황을 경험했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보다 더 큰 폭으로 내려앉았다. 올해만의 일도 아니다. 침팬지와 비교돼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틀릴 게 뻔한 전망도 잘 살펴보면 나름의 쓸모가 있다.

뒤로 앉아서 앞을 내다보기

올해도 빗나간 경제전망…결과보다 근거 살펴보세요
경제학자들은 경제 전망을 ‘종합 예술’에 비유한다. 환율, 물가, 금리 등 다양한 변수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에 인간의 경험과 직관까지 더해야 경제의 앞날을 내다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주요 기관은 계량 모형을 경제 전망에 활용한다. 계량 모형은 경제 지표 간의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한 고차원의 함수 또는 연립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어떻게 되는지,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경상수지는 어떻게 되는지, 금리가 오르면 소비와 투자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수식화한다. 모형에 들어가는 변수만 수십 가지에 이른다.

계량 모형이 결괏값을 내놓으면 10~20년간 경제 전망 작업을 해 온 베테랑 분석가들이 타당성을 검증한다. 과거 경제성장률 추이와 최근 경기 상황 등을 토대로 계량 모형의 수치가 신뢰할 만한지 따져본다. 하지만 과거를 기초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경제 전망은 KTX 역방향 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한다. 지나간 풍경을 보고 앞으로 어떤 풍경이 나타날지 알아맞혀야 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세상일

경제 전망이 빗나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경제 전망은 수많은 가정에 의존한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얼마가 되고, 원·달러 환율이 얼마까지 오르고, 금리가 얼마 내린다는 식의 수많은 가정을 기반으로 경제성장률을 전망한다. 세계 경제성장률이나 원·달러 환율, 금리 등의 변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결괏값이 크게 변한다.

계량 모형의 한계도 있다. 예컨대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1%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모형이 설계돼 있다고 하자. 이런 상관관계는 고정불변의 법칙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랬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현실에서 환율과 물가, 금리와 성장률 등의 관계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이런 현실을 모형에 완벽하게 반영할 수는 없다.

모형을 완벽하게 설계하고, 변수를 정확하게 예측해도 문제는 남는다.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전쟁, 천재지변, 팬데믹 앞에서 기존의 전망은 무용지물이 된다.

경제주체들의 행동도 예측하기 어렵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으면 경기는 예상보다 좋아질 수 있고, 어두운 경기 전망에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얼어붙으면 예상보다 더 깊은 경기 침체가 나타날 수도 있다.

대체로 무해한 경제 전망

틀릴 게 뻔해도 경제 전망은 필요하다. 경제 전망이 없다면 정부는 예산을 수립할 수 없고, 한은은 통화정책을 펼칠 수 없다. 가계도 소비와 투자에 관한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경제정책의 효과를 평가하고, 실제 경제 상황이 전망과 달라진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전망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경제 전망을 정해진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시나리오’로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망 수치 자체보다 전망의 근거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한은은 최근 발표한 내년 경제 전망에서 기준 시나리오, 비관적 시나리오, 낙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지정학적 갈등과 원자재 가격, 반도체 등 글로벌 제조업 경기를 주요 변수로 꼽았다. 기준 시나리오의 경제성장률 연 2.1%라는 결론보다 지정학적 갈등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로 인해 원자재 가격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반도체 경기는 어떻게 되는지 등 ‘줄거리’를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연초에 점을 보러 가면 거의 비슷한 얘기를 듣는다. 건강에 주의해라, 구설수를 피하라 등등. 점이 맞든 틀리든 건강에 신경 쓰고 남들에게 책잡히지 않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틀릴 가능성이 다분한 경제 전망도 의사결정의 기초로서 그 정도의 가치는 있지 않을까.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