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이 남긴 마지막 연주와 미소···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암투병 중인 지난해 9월 NHK 스튜디오서 촬영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등 20곡 연주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등 20곡 연주
“다시 합시다”
피아노 연주자 사카모토 류이치의 육성이 처음 나온 건 영상 콘서트가 시작된 지 40여 분이 흐른 뒤였다. 영화 ‘바벨’(2007)의 주제곡으로 쓰인 ‘bibo no aozora’의 연주가 끝난 직후다.
백발의 머리를 한번 뒤로 넘기고, 다시 피아노 건반 위로 올라간 열 손가락을 타고 평온하고 차분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최근 국내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봤다면 ‘아 이 음악!’하고 반길 만한 멜로디다.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인 두 소년의 앞날을 마치 축복하는 듯이 흐르던 음악이다.
사카모토가 1998년 발표한 앨범 ‘BTTB’에 수록된 이 곡의 제목은 ‘Aqua’. 오는 27일 개봉하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에서 열 번째로 연주되는 곡이다. 모두 20곡이 연주되는 이 콘서트 영화의 전반부를 마무리 짓는 음악이다. 이 영화는 지난 3월 28일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난해 9월 8일부터 15일까지 8일 동안 ’온라인 피아노 콘서트‘용으로 촬영한 것을 재편집한 것이다. 당시 암 투병 중이던 그는 인생의 끝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한 번 더 납득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로 연주와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라틴어로 예술작품을 가리키는 기호이자 그가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 제목인 ‘오퍼스(opus)’가 영화 제목에 붙은 이유를 짐작게 한다.
촬영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곳’이라고 생각한 도쿄 NHK 509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그는 하루에 3곡 정도를 2~3번의 연주로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영화 속에 “다시 합시다”란 사카모토 류이치의 말은 촬영 당시 ‘Aqua’를 다시 연주하고, 다시 찍자는 의미로 들린다. 스튜디오에서 그가 관객 없이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의 일부는 지난해 12월 11~12일 일본의 한 웹사이트에서 ‘류이치 사카모토: 플레잉 더 피아노 2022’란 제목으로 송출됐다. 약 60분 동안 13곡을 연주하는 온라인 콘서트였다.
이번 영화관 상영용 콘서트에서는 약 100분 동안 20곡을 들려준다. 지난해 12월 온라인 콘서트 첫 곡이었던 ‘Improvisation on Little Buddha Theme’은 빠지고, ‘Aqua’가 실렸던 앨범 ‘BTTB’의 첫 번째 트랙 ‘오퍼스(opus)’ 등이 추가됐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번 영화에 실린 20곡을 직접 선곡하고, 편곡과 녹음에도 관여했다고 한다. 연주곡에는 그가 1978년 결성한 3인조 밴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의 히트곡 ‘tong poo’부터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영화 ‘마지막 황제’(1988)의 주제곡, 올초 나온 마지막 정규앨범 '12' 수록곡도 포함돼 있다. 그의 음악 인생을 포괄하는 선곡이라고 볼 수 있지만 워낙 히트곡이 많은 만큼 사카모토 류이치 팬이라면 ’아, 왜 이 곡은 없지? ‘하고 아쉬워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첫 연주곡인 ‘LOL’부터 끝 곡인 ‘오퍼스’까지 흑백 영상과 함께 다양한 각도에서 거장의 모습을 비추는 조명과 피아노 건반을 오가는 두 손으로만 구성돼 오롯이 연주자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연주자는 악보와 건반만 주시한 채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에만 몰두한다. 사카모토 류이치 연주력의 정점은 아니고 가끔 실수도 하지만 그야말로 혼신을 다한 연주다.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는 거장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연주자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은 극히 드물다. 영화 후반부에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잠시 쉬고 하죠. 좀 힘드네, 무지 애쓰고 있거든.” 다시 두 손으로 백발을 넘기고, 뿔테 안경을 고쳐 쓰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건반에 열 손가락을 올려놓는다. 연주하는 곡은 그의 대표곡이자 가장 많이 알려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그가 주연배우로 출연까지 했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에 실린 곡이다.
수십 년 동안 수없이 쳤을 이 곡을 연주하면서 이따금 미소를 짓는다. 진지한 표정으로 내내 일관했던 사카모토 류이치가 웃음을 보여준 것은 열아홉 번째인 이 곡을 연주할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보는 이의 마음도 편안케 하는 웃음이고, 연주였다. 마지막 연주곡인 ‘오퍼스’의 후반부에 연주자 없이 피아노가 홀로 연주하는 장면이 여운을 남긴다. 거장은 갔어도 그가 남긴 음악은 영원할 것이라는 의미가 깊이 전해졌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피아노 연주자 사카모토 류이치의 육성이 처음 나온 건 영상 콘서트가 시작된 지 40여 분이 흐른 뒤였다. 영화 ‘바벨’(2007)의 주제곡으로 쓰인 ‘bibo no aozora’의 연주가 끝난 직후다.
백발의 머리를 한번 뒤로 넘기고, 다시 피아노 건반 위로 올라간 열 손가락을 타고 평온하고 차분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최근 국내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봤다면 ‘아 이 음악!’하고 반길 만한 멜로디다.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인 두 소년의 앞날을 마치 축복하는 듯이 흐르던 음악이다.
사카모토가 1998년 발표한 앨범 ‘BTTB’에 수록된 이 곡의 제목은 ‘Aqua’. 오는 27일 개봉하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에서 열 번째로 연주되는 곡이다. 모두 20곡이 연주되는 이 콘서트 영화의 전반부를 마무리 짓는 음악이다. 이 영화는 지난 3월 28일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난해 9월 8일부터 15일까지 8일 동안 ’온라인 피아노 콘서트‘용으로 촬영한 것을 재편집한 것이다. 당시 암 투병 중이던 그는 인생의 끝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한 번 더 납득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로 연주와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라틴어로 예술작품을 가리키는 기호이자 그가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 제목인 ‘오퍼스(opus)’가 영화 제목에 붙은 이유를 짐작게 한다.
촬영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곳’이라고 생각한 도쿄 NHK 509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그는 하루에 3곡 정도를 2~3번의 연주로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영화 속에 “다시 합시다”란 사카모토 류이치의 말은 촬영 당시 ‘Aqua’를 다시 연주하고, 다시 찍자는 의미로 들린다. 스튜디오에서 그가 관객 없이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의 일부는 지난해 12월 11~12일 일본의 한 웹사이트에서 ‘류이치 사카모토: 플레잉 더 피아노 2022’란 제목으로 송출됐다. 약 60분 동안 13곡을 연주하는 온라인 콘서트였다.
이번 영화관 상영용 콘서트에서는 약 100분 동안 20곡을 들려준다. 지난해 12월 온라인 콘서트 첫 곡이었던 ‘Improvisation on Little Buddha Theme’은 빠지고, ‘Aqua’가 실렸던 앨범 ‘BTTB’의 첫 번째 트랙 ‘오퍼스(opus)’ 등이 추가됐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번 영화에 실린 20곡을 직접 선곡하고, 편곡과 녹음에도 관여했다고 한다. 연주곡에는 그가 1978년 결성한 3인조 밴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의 히트곡 ‘tong poo’부터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영화 ‘마지막 황제’(1988)의 주제곡, 올초 나온 마지막 정규앨범 '12' 수록곡도 포함돼 있다. 그의 음악 인생을 포괄하는 선곡이라고 볼 수 있지만 워낙 히트곡이 많은 만큼 사카모토 류이치 팬이라면 ’아, 왜 이 곡은 없지? ‘하고 아쉬워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첫 연주곡인 ‘LOL’부터 끝 곡인 ‘오퍼스’까지 흑백 영상과 함께 다양한 각도에서 거장의 모습을 비추는 조명과 피아노 건반을 오가는 두 손으로만 구성돼 오롯이 연주자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연주자는 악보와 건반만 주시한 채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에만 몰두한다. 사카모토 류이치 연주력의 정점은 아니고 가끔 실수도 하지만 그야말로 혼신을 다한 연주다.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는 거장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연주자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은 극히 드물다. 영화 후반부에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잠시 쉬고 하죠. 좀 힘드네, 무지 애쓰고 있거든.” 다시 두 손으로 백발을 넘기고, 뿔테 안경을 고쳐 쓰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건반에 열 손가락을 올려놓는다. 연주하는 곡은 그의 대표곡이자 가장 많이 알려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그가 주연배우로 출연까지 했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에 실린 곡이다.
수십 년 동안 수없이 쳤을 이 곡을 연주하면서 이따금 미소를 짓는다. 진지한 표정으로 내내 일관했던 사카모토 류이치가 웃음을 보여준 것은 열아홉 번째인 이 곡을 연주할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보는 이의 마음도 편안케 하는 웃음이고, 연주였다. 마지막 연주곡인 ‘오퍼스’의 후반부에 연주자 없이 피아노가 홀로 연주하는 장면이 여운을 남긴다. 거장은 갔어도 그가 남긴 음악은 영원할 것이라는 의미가 깊이 전해졌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