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실상 독점 공급해온 공공주택 시장에 민간 건설사가 시행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김오진 국토교통부 1차관(왼쪽 네 번째)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LH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실상 독점 공급해온 공공주택 시장에 민간 건설사가 시행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김오진 국토교통부 1차관(왼쪽 네 번째)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LH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그동안 권한과 이권이 집중된 ‘발주 공룡’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힘을 빼는 ‘LH 혁신 방안’을 12일 내놨다. 독점해온 공공주택 사업을 민간에 개방하고, 설계·시공·감리 업체 선정 권한을 전문기관으로 넘기는 게 핵심이다. 당초 토지와 주택 부문으로 조직을 분리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게 정부의 개혁 밑그림이다.

공공주택 민간 비중 늘려간다

LH 혁신 방안의 핵심은 공공주택 사업에 민간과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공공주택 시장은 지난해 LH가 공급량의 72%(5만여 가구)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의 개발공사가 맡은 공기관 독점 영역이었다. 공공주택특별법은 LH와 같은 공공기관만 공공주택의 시행자가 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공공주택 공급 규모가 지속해서 늘어나면서 시공 관리 소홀, 부실 감리, 품질 저하의 악순환이 발생했다는 게 정부의 진단이다.

공공주택은 공공이 직접 시행하거나 민간과 LH가 공동으로 시행할 수 있다. 정부는 앞으로 공공주택 특별법에 민간 건설사가 단독으로 직접 시행할 수 있는 유형을 추가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공공주택특별법을 개정해 이르면 하반기 착공 가능 물량 중 일부를 민간이 단독으로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방식이 도입되면 LH가 조성한 택지 중 공공주택 용지를 민간 건설사가 분양받아 래미안 힐스테이트 더샵 등 자체 브랜드를 달고 분양에 나설 수 있다. 지구단위계획이 승인된 뒤 개별 부지에 대해 입찰을 부쳐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한 건설사에 우선 공급한다. 이 경우 설계와 시공 업체를 스스로 선정할 수 있고, 자체 기준에 맞는 자재를 사용할 수 있다.

공공주택이기 때문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고, 공공주택 공급 기준에 맞춰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민주택기금 저리 융자, 감정가 이하로 택지 매입, 미분양 물량에 대한 공공 우선 매입 등의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간 건설사가 공급할 물량 비중은 분양가, 하자 빈도, 입주민 만족도 등을 평가해 늘려나갈 계획이다.

10조원 규모 발주 외부로 넘겨

LH가 설계·시공·감리 등에 발주하는 규모는 지난해 9조9200억원으로 10조원에 육박했다. 이 과정에서 전관과 연관된 카르텔 구조가 형성되고 비리가 생겼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LH의 업체 선정 권한은 대폭 축소한다. 설계 용역업체와 시공업체 선정 및 계약 체결 등을 조달청에 맡기고, LH는 선정된 업체의 용역수행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감리업체 선정 기능은 국토안전관리원에 위탁한다.

전관 카르텔을 근절하기 위해 2급(부장급) 이상 직급으로 퇴직한 전관이 3년 이내에 재취업한 업체(출자회사 포함)는 입찰 참가를 제한한다. 또 3급 전관 재취업 업체 4200여 개는 낙찰이 어려운 수준으로 감점 규정을 높인다. 전관 폐해 차단을 위해 퇴직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3급(차장급)까지 제한 대상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LH 퇴직자가 재취업할 때 적용받는 취업 심사 기준도 강화한다. 대상자는 2급 이상(부장급)에서 3급 이상(차장급)으로 확대한다. 설계·감리업체에 대한 자본금·매출 기준을 삭제해 대상 업체를 200여 개에서 약 3100개로 넓힌다. 건축사무소는 기준을 매출 10억원 이상으로 바꿔 1300여 개 업체가 포함되게 됐다.

LH 공공주택에 대한 안전·품질 검증도 강화한다. LH가 설계하는 모든 아파트는 착공 전 구조설계를 외부 전문가가 검증하고, 구조도면 등 안전과 직결되는 항목은 대국민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공개한다. LH 시공 현장에서 철근 배근 누락 등 주요 안전 항목을 위반한 업체는 일정 기간 LH 사업에 수주를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한다. 유삼술 국토부 토지정책과장은 “골조 부실 공사라든지 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3~6개월가량 참여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기열/유오상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