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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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해법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이 '갈등의 장'으로 변질됐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데서부터 삐걱거리면서다. 일각에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점에서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친환경 방안을 논의하는 국제 행사를 주요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주최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원전의 '친환경성' 인정 성과 있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11일(현지시간) "지난달 30일부터 UAE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합의문 초안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 문구가 빠졌다"고 보도했다. 합의문은 약 200개 참가국의 동의를 얻어야 최종 채택된다.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관한 논의는 COP28 개막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각국이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폐회 하루 전까지 공동선언문 합의가 진통을 겪고 있다.

올해 의장국인 UAE가 이날 작성해 공유한 합의문 초안에는 예전 초안과 달리 석탄과 석유, 가스 등 모든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문구가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2050년 탄소중립(넷제로) 달성을 위해 화석연료의 소비와 생산을 '공정하고 질서있고 공평한 방식'으로 줄인다"는 것을 포함한 8개의 온실가스 감축 선택지가 담겼다.

이 중에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현재의 3배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배출가스 저감 장치가 없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신속한 폐기와 신규 허가 제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포집저장기술(CCS) 확충 등도 있다. 신재생에너지나 원자력발전, 탄소 저감·제거 등 탄소배출이 없거나 낮은 기술의 개발을 가속화하고,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안도 제시됐다.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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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회의 성과 가운데 하나는 미국 등 주요 22개국이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 지지 선언문을 채택한 것이다. 이는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인정하고, 원전 용량을 2050년까지 2020년 대비 3배 이상 확대하는 데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산업화로 앞선 선진국이 기후위기를 겪는 개발도상국에 금전적 보상을 하는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이 수십년 간 논의 끝에 총 4억5000만달러(약 5800억원) 규모로 공식 출범한 것도 큰 진전이란 평가다.

핵심 쟁점 '화석연료 퇴출'은 빠져

하지만 뜨거운 감자였던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조항이 빠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COP28 공동선언문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 총회에서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 선진 산유국들을 비롯해 유럽연합(EU), 기후변화에 취약한 섬나라 등 100여개국은 합의문에 어떤 형태로든 화석연료의 퇴출을 의미하는 문구가 들어가기를 원했다. 화석연료 연소로 발생하는 탄소는 전체 배출량의 약 4분의3을 차지해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을 비롯해 엑슨모빌 등 글로벌 석유회사 연합체는 이에 반대해왔다. 특히 사우디가 COP28 의장국인 UAE의 술탄 알 자베르 의장(아부다비 국영 석유회사 대표)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에 "관련 문구를 배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라"는 압력을 가한 사실도 알려졌다. 한 EU 고위 협상가는 "이번 총회에서 화석연료를 적극 옹호하는 세력이 부상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과거에는 조용한 저항이 더 많았지만 지금은 더 의식적이고 더 집중적이며 더 조율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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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2년 전 영국에서 열린 COP26에선 화석연료 중에서도 석탄만 한정해 퇴출(out) 대신 '단계적 감축(phase down)'하기로 합의했었다. 이후 이집트 COP27에선 감축 대상을 배출가스 저감 장치가 없는 석유와 가스 등 모든 화석연료로 확대하는 안이 논의됐으나 불발됐다. 결국 이번 초안이 12일 최종 확정된다면 COP28도 화석연료 연소 관련 쟁점에서 '빈손'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진다. FT는 "COP28은 12일에 공식 종료될 예정이지만, 몇몇 협상가들은 수요일이나 목요일까지 회담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후위기 피해국들은 신재생에너지 설비 확충 등만으로 기후변화에 제동을 걸 수 없다면서 화석연료의 전면 퇴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마샬 제도의 환경 특사인 티나 스테게는 "반쪽짜리 해법"이라며 "끊임없이 화석연료 생산량을 늘리는 나라들이 이 약속으로 그린워시(환경에 유해한 활동을 하면서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를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