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극장들은 문을 닫아야 했고, 새로운 영화의 제작과 배급이 중단되었다.’

‘TV로 수많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비싼 돈을 내며 극장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최근의 우리 영화산업 모습과 닮아 있지만, 각각 스페인 독감이 창궐했던 1919년과 TV가 보급되기 시작한 1950~60년대 영화산업 위기에 관한 내용이다. 영화는 지난 100여 년간 쉴 새 없는 도전을 극복해왔다. 코로나19를 비롯한 팬데믹, TV, 비디오 플레이어의 등장 등 여러 위기에 맞서 새로운 기술과 이야기로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제공해왔다. 변화된 환경에서도 성장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위기 상황이다. 팬데믹으로 극장 관람이 어려웠을 때만 해도 우리 영화나 시리즈들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활발히 유통된다는 점을 들며 ‘극장만의 위기’로 축소하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반복되는 흥행 실패와 급감한 제작 편 수는 지금이 영화산업 전체의 위기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게 한다.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지목된다. 가파르게 오른 티켓 가격 탓을 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극장 요금과 비교해 즐기고 놀 수 있는 대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OTT를 거론하기도 한다. 월 구독료만 내면 수많은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즐길 수 있는데 극장에 가서 한 편을 보는 데 그 돈을 내는 것은 가성비가 낮다는 것이다.
누벨바그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1962년작 영화 ‘줄 앤 짐’ 한경DB
누벨바그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1962년작 영화 ‘줄 앤 짐’ 한경DB
영화나 드라마를 빨리감기나 요약본으로 보는 소비행태의 변화도 걱정이다. 짧은 동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두 시간을 온전히 몰입해야 하는 극장 영화는 소위 ‘시성비’가 떨어지는 까닭이다. 극장 종영 후 바로 OTT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홀드백의 붕괴’도 문제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여전히 극장에서 사랑받는 작품들을 생각하면 우리 영화가 관객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부정하기 어렵다. K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글로벌 OTT들이 우리 영화와 시리즈에 잇따라 투자할 때에 맞춰 아직 채 무르익지 않은 작품들을 서둘러 제작하기 때문에 완성도가 낮아졌다는 비판이다. 또한 글로벌 OTT들의 기호에만 맞추다 보니 새롭고 도전적인 영화보다는 안전하고 무난한 스토리가 더 많아졌다는 지적도 따끔하다.

이렇게 수많은 이유들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얽혀 있어 이를 한 번에 풀 수 있는 ‘알렉산더의 칼’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필수적 대책 중 하나는 지금의 관객 취향과 트렌드에 맞고 극장만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와 이를 만들어낼 창작자의 발굴일 것이다.

되짚어 보면 영화산업이 여러 위기들을 넘어서는 데에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창조해 낸 젊은 창작자들에게 빚진 바가 컸다. 1950년대 누벨바그를 주도했던 프랑스의 20대 감독들이, 1970년대 ‘죠스’나 ‘스타워즈’ 같은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던 젊은 감독들이 극장에서 멀어진 관객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과 트렌드에 익숙하고, 지금의 관객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신인 창작자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이나 ‘범죄의 재구성’ 같은 영화들을 신인 감독들이 선보일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신인들은 기회를 얻기 쉽지 않다.

CJ의 ‘오펜’이나 ‘스토리업’ 같은 프로그램들이 신인 창작자들을 여러 방면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개별 기업들만으로는 힘에 부친다. 정부기관들도 다양한 지원을 이야기하지만 시장과 결속돼 있지 않은 정책은 공허하다. 신인을 육성하는 기업들의 노력에 정책적 지원이 결합된다면 효과가 배가되어 소비가 아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인 창작자 발굴이 위기를 모두 해결하는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하지만 극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온전히 몰입해 즐길 수 있는 참신하고 경이로운 우리 영화가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CJ ENM IP 개발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