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의 모습.   뉴스1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의 모습. 뉴스1
정부가 오랫동안 숙고해왔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개혁안을 내놨다. 당초 거론됐던 L(토지)와 H(주택)의 분할이 아니라 현재 조직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LH에 집중된 힘을 빼는 선택을 했다. LH 조직을 분할해도 실익이 없고 오히려 인력만 늘어나는 비효율이 발생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지난 12일 LH 혁신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진현환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LH의) 조직 분할까지도 검토를 했다"면서 "그렇게 하다보면 오히려 인력이 더 늘어나게 되고, 비효율적인 문제가 발생해서 현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토부는 조직을 기능별로 분할하는 방안 뿐만 아니라 분할된 조직을 총괄하는 지주회사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L과 H를 분할할 경우 조직이 비대해지는 역설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신설 회사 운영에 필수적인 기획조정, 재무, 인사 등 경영지원 조직을 똑같이 만들어야하니 그만큼 직원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또 각 분할된 자회사나 신설된 지주사에 기관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추가로 필요하게 된다. 그럴 경우 국토부 퇴직자들이 갈 자리를 더 만들려는 꼼수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속내를 살펴보면 사업성이 좋은 부문의 수익을 사업성이 약한 곳에 투입해서 운영하는 '교차보전'을 활용하고 있는 LH의 경영 현실을 흔들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예를 들어 수도권 공공택지지구(신도시) 등 조성해서 용지를 건설사에 팔고, 공공분양 주택을 공급해서 벌어들인 수익금을 지방 택지지구 조성이나 임대아파트 사업에서 방생하는 적자를 메우고 있는 구조다. 특히 국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사업은 이익이 나지 않아도 끌고가야 한다.

조직을 분할하면 이같은 교차보전이 작동하지 않게돼 발생하는 적자를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분할 이후에도 교차보전 시스템이 작동하게 하려면 공동 기금을 만들어 서로 지원해주는 복잡한 구조가 필요하다. LH를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오히려 조직의 비효율로 이어질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이 불거졌던 2021년에도 L과 H의 분할, 지주회사 설립 등이 심도 깊게 논의됐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시 LH를 벌줘야 한다는 차원에서 분할에 대한 요구가 높았지만 공청회에서 분할했을 때 실익이 없다는 질타를 강하게 받았다"며 "조직을 분할한다고 혁신이 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비효율을 초래하는 분할보다는 공공주택 시장에 민간과 경쟁 체제를 도입하고, 설계·시공·감리 업체를 선정하는 권한을 외부로 돌려 LH가 스스로 혁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이번 LH 개혁방안의 핵심이다.

분할을 하려면 LH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국회의원 상당수가 반대하고 있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분할 관련 의사 타진했지만 지역구를 막론하고 적지 않은 의원들이 분할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놨다"고 말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