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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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이 한 달 새 14% 넘게 늘어나 1조2000억엔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000억엔에도 미치지 못하던 지난 4월과 비교해 두 배 넘게 불어났다. 기록적인 엔저(低) 현상에 투자자들은 물론 일본 여행을 준비 중인 사람들까지 매수 수요가 쏠린 결과로 풀이된다. 이달 들어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수정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엔화 가치가 뛰어올랐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엔화의 투자 매력도가 크다고 전망했다.

○투자·여행 수요에 엔화예금 급증

"일단 사 두자"…엔화예금 한달새 14% 급증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조1971억엔으로 집계됐다. 10월 말(1조488억엔)과 비교해 한 달 만에 14.1%(1483억엔) 증가했다.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4월 말까지만 해도 5979억엔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7개월 연속 증가세가 이어져 지난달 엔화예금 잔액은 4월의 두 배가 넘는 규모로 커졌다. 10월엔 중동 지역 정세 불안으로 엔화 대신 달러 수요가 늘어 엔화예금 잔액이 전달 대비 1.5%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11월 들어 증가 속도가 다시 가팔라졌다.

지난달 엔화예금 잔액이 급증한 가장 큰 원인은 원·엔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로 떨어져 투자 매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이 고시하는 원·엔 재정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지난달 16일 100엔당 856원80전으로 2008년 1월 10일(855원47전) 후 15년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원·엔 환율 하락을 계기로 한국인 관광객의 일본 여행 수요가 많이 늘어난 점도 엔화예금 급증을 이끈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10월 기준 63만1100명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인 2019년 10월과 비교해 3.2배 늘었다. 10월 일본 방문 외국인(251만6500명)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5.1%로 1위였다.

○원·엔 환율 900원대 올라서

이달 들어선 엔화예금 증가세가 꺾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5대 은행의 외화예금 잔액은 이달 11일 기준 1조1579억엔으로 전달 말에 비해 3.3%(392억엔) 감소했다. 원·엔 환율이 이달 들어 100엔당 900원을 넘어서며 지난달 저점에 비해 50원 가까이 올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엔화 가치가 오른 것은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7일 의회에서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 확실해진다면 마이너스 금리 해제 등을 시야에 넣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이 나온 당일 원·엔 환율은 전일 대비 7원 이상 오른 905원38전을 기록했다.

엔화 가치가 지난달에 비해 올랐지만 엔화의 투자 매력은 여전히 높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신정섭 신한은행 PWM 서울파이낸스센터 팀장은 “우에다 총재의 발언을 계기로 이제는 엔화 가치가 저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하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900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 엔화를 사면 ‘바닥’은 어렵더라도 ‘발목’에서 매수하는 정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 엔화를 쓸 일도 없는데 너무 큰 자금을 엔화예금에 넣는 건 손해라는 시각도 있다. 시중은행들이 달러화 예금(1년 만기)에 연 5%대 초반, 유로화 예금에 연 3%대 중반의 이자를 주는 것과 달리 엔화예금에는 0%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