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구체적인 방안이 확정됐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5개 분야 전략물자를 일본에서 생산·판매하는 기업은 내년부터 10년간 법인세를 최대 40% 줄일 수 있다.

일본판 IRA '시동'…법인세 최대 40% 감면
일본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은 2024년부터 세제를 개정해 전략 물자의 자국 내 생산량과 판매량에 비례해 기업의 법인세를 줄여주는 ‘전략 분야 국내 생산 촉진 세제’를 신설하기로 13일 확정했다. 자민당이 이번주 ‘2024년 세제개정대강’을 통해 최종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 제도는 전략물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일정 비율 이상의 자국 내 생산을 요구하는 미국 IRA를 참고한 제도여서 일본판 IRA로 불린다. 일본 정부는 일본판 IRA를 통해 경제 안전 보장을 강화하고 탈석탄 관련 제품의 생산과 연구개발(R&D)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기차 등 5대 분야 법인세 우대

방안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전기차와 배터리, 반도체, 재생항공연료(SAF), 그린 스틸, 그린 케미컬 등 5개 분야의 생산량에 비례해 반도체는 20%, 나머지 4개 분야는 40%까지 법인세를 10년간 감면해주기로 했다. 그린 스틸은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철강 제품, 그린 케미컬은 식물과 폐기물로 제조한 화학 제품을 말한다.

전기차는 대당 40만엔(약 362만원), SAF는 L당 30엔, 그린 스틸은 t당 2만엔을 지원한다. 법인세 우대를 받으려는 기업은 2026년까지 경제산업성에 사업계획을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연간 순이익이 적자여서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해는 그 기간만큼 적용 시기를 늦추는 이연 제도도 마련됐다. 반도체는 3년간, 나머지 4개 제품은 4년간 적자를 낸 해의 법인세 우대를 이연할 수 있다.

기업의 R&D 센터를 유치할 목적으로 지식재산권(IP) 사업의 세금 부담을 가볍게 하는 제도도 도입한다. 일본 정부는 2024년 4월 후 취득한 특허와 저작권으로 얻는 양도소득의 30%를 과세소득에서 공제하는 ‘이노베이션 박스 세제’를 신설할 방침이다. 2025년 4월부터 7년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사업승계 지원 2년 연장

중소기업의 사업승계를 세제 면에서 지원하는 정책도 유지했다. 일본 정부는 내년 3월 종료되는 사업승계 세제 특례 조치를 2026년 3월까지 2년 연장하기로 했다.

사업승계 세제 특례 조치는 후계자난을 겪는 중소기업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기업이나 개인의 증여세와 상속세 납부를 유예하는 제도다.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경영자의 고령화가 진행되는 중소기업의 세대교체를 계속 지원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외형을 중소기업으로 줄이는 대기업을 규제하는 세제도 마련했다. 현재 자본금 1억엔 초과 기업은 대기업에 부과하는 외형표준과세를 내야 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본에서는 자본금을 1억엔 이하로 감자해 외형표준과세를 피하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2025년부터 ‘자본금과 자본잉여금의 합이 10억엔을 넘는 기업’에도 외형표준과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자본금과 자본잉여금 합계액이 50억엔을 넘는 기업의 100% 자회사가 ‘자본금이 1억엔 이상이면서 자본잉여금의 합계액이 2억엔을 넘는 경우’에도 과세한다. 대기업의 대형 자회사가 감자로 세금을 피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