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눈매에 묻은 슬픔…피에로가 된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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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the Scenes
구본숙
사진 모델 된 김태형 피아니스트
사진 전시회 구상하던 중
슈만의 곡 '피에로' 듣게 돼
'광대를 찍어보자' 결심한 후
김태형에 연락하니 바로 "OK"
장난기 어린 얼굴, 왠지 쓸쓸해
누구보다 '피에로'와 잘 어울려
구본숙
사진 모델 된 김태형 피아니스트
사진 전시회 구상하던 중
슈만의 곡 '피에로' 듣게 돼
'광대를 찍어보자' 결심한 후
김태형에 연락하니 바로 "OK"
장난기 어린 얼굴, 왠지 쓸쓸해
누구보다 '피에로'와 잘 어울려
이 시대에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로 사진 전시회를 열어보겠다며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별생각 없이 틀어놓은 슈만의 피아노곡 ‘카니발’(Carnaval, Op. 9)을 듣는 순간 뭔가 머리를 스쳤다. 슈만의 ‘카니발’은 모두 20곡으로 이뤄진 소품집이다. 곡마다 각각 다른 제목도 있고 해서 사진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좋다. 그 가운데서도 두 번째 곡 ‘피에로’가 특히 마음을 끌었다.
카니발의 정신은 해학과 풍자다. 그렇다면 어릿광대 피에로만큼 카니발 정신을 잘 구현한 캐릭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의 작업에 반드시 등장시켜야 했다. 내가 잘 아는 누군가를 피에로로 분장시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니발’은 피아노 독주곡이고, 작곡자 슈만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피아니스트에게 맡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음악과 사진의 콜라보는 내가 평생 이어갈 작업 주제이기도 하니 무척이나 적절해 보였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무작정 전화기를 들고 김태형 피아니스트에게 전화했다.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했다. 구상뿐이었던 전시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흔쾌히 믿고 수락해 줘서 고마웠다.
지체 없이 만나 식사를 했다. 김태형은 내게 두 번째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아직 피에로를 누구한테 맡길지 얘기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하고 싶다고 자청했던 것이다. 이런 걸 두고 ‘불감청고소원’이라 하던가. 갑자기 눈앞이 탁 트이는 듯했다. 익살스럽지만 왠지 사색적이고 쓸쓸한 피에로의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듯한 섬세한 눈매도, 긴장감 있는 표정과 말투도 좋았다. 이렇게 가장 큰 고비를 무난히 넘기자 추가로 7명의 피아니스트도 일사천리로 섭외가 됐다. 급하게 적은 짧은 기획안을 보냈음에도 100% 참여하기로 결정이 나니 행복했다. 기대감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초기 구상은 서양 축제인 카니발이었지만 중간에 기획을 바꿔 한국식으로 번안해 보기로 했다. 모티브는 서양에서 따더라도 이걸 우리 식으로 소화해 보기로 했다.
이제 표현 방식이 문제였다. 이왕 우리 식으로 하기로 했으니 색동이 어떨까 싶었다. 명절이나 혼례 등 경사스러운 날에 착용하는 게 색동옷 아니었던가. 한복의 변천사를 간단하게나마 공부하고, 그림(풍속화) 속에서도 찾아보고, 한복 용어도 익혔다. 한복을 배우다 보니 이왕이면 조선 초기 악공이 착용한 복두를 머리에 씌우고 싶었다.
서울 종로의 광장시장 원단 가게에 가서 색동천이며 온갖 소품을 구입했다. 바느질도 하고 구슬도 꿰었다. 서툰 바느질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은 사극 의상 대여점에서 빌렸다. 소품 제작 및 대여 일정이 하나씩 조율됐다. 사진 콘셉트에 어울리게 가면과 부채도 만들어졌다. 생각보다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가 됐다. 마지막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정했다.
김태형 피아니스트를 새해의 시작인 2022년 1월 첫날(신정) 작업실에서 만났다. 전시회 ‘카니발’ 촬영의 시작이었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욕심이 생긴다. 떨리듯 입술은 살짝 웃음을 머금어야 하며, 점점 입술은 벌겋게 눈은 어둡게 변해가며 슬픔과 긴장감이 감도는 눈물도 좀 흘려줘야 한다. 김태형은 내가 원하는 피에로의 모습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눈물이 볼 위로 흐르는 이 순간 셔터를 누르며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대 위가 아닌 이 공간에서 이 피아니스트는 다른 역할로 해방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어떤 생각을 하며 감정을 잡고 있을까?
의상 표현을 위해서는 목 부분에 색동 러플(ruffle)을 둘렀다. 사진마다 색동 포인트가 하나씩 들어가야 했다. 색동천 위에 희고 투명한 레이스를 어설픈 손바느질로 덧대어 살짝 톤을 죽이고, 배경이 된 블랙 블라우스는 피에로의 지혜를 상징하는 의미로 선택했다. 이렇게 촬영하고 나니 세 신(scene)의 피에로가 탄생했다. 만족스러웠다. 촬영을 마치고 거울 앞에서 피에로로 변한 김태형은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컷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진짜 피에로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매혹적인 악동 피에로의 모습이랄까.
김태형 피아니스트는 전시회 오프닝 당일에 멋진 연주까지 해줬다. 난 속으로 감동이 벅차올랐다. 추위에 떨며 시장통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나중에 어떤 인터뷰에서 음악가로서 피아니스트 김태형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섬세하고 우아한 연주자, 또 명랑하면서도 깊은 철학과 슬픔도 살짝 보이는…. 피에로 역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그래서 맘에 쏙 드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고, 훌륭한 인성을 가진 연주자이다.” 이번 사진 작업이 없었다면 나는 그를 피에로에 빗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시회는 음악을 사진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의 시발점이 됐다. 감사한 사람이 많은데 모두 열거하진 못하지만 모델이 돼준 다른 아티스트들께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구본숙 사진작가
카니발의 정신은 해학과 풍자다. 그렇다면 어릿광대 피에로만큼 카니발 정신을 잘 구현한 캐릭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의 작업에 반드시 등장시켜야 했다. 내가 잘 아는 누군가를 피에로로 분장시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니발’은 피아노 독주곡이고, 작곡자 슈만은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피아니스트에게 맡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음악과 사진의 콜라보는 내가 평생 이어갈 작업 주제이기도 하니 무척이나 적절해 보였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무작정 전화기를 들고 김태형 피아니스트에게 전화했다.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했다. 구상뿐이었던 전시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흔쾌히 믿고 수락해 줘서 고마웠다.
지체 없이 만나 식사를 했다. 김태형은 내게 두 번째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아직 피에로를 누구한테 맡길지 얘기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하고 싶다고 자청했던 것이다. 이런 걸 두고 ‘불감청고소원’이라 하던가. 갑자기 눈앞이 탁 트이는 듯했다. 익살스럽지만 왠지 사색적이고 쓸쓸한 피에로의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듯한 섬세한 눈매도, 긴장감 있는 표정과 말투도 좋았다. 이렇게 가장 큰 고비를 무난히 넘기자 추가로 7명의 피아니스트도 일사천리로 섭외가 됐다. 급하게 적은 짧은 기획안을 보냈음에도 100% 참여하기로 결정이 나니 행복했다. 기대감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초기 구상은 서양 축제인 카니발이었지만 중간에 기획을 바꿔 한국식으로 번안해 보기로 했다. 모티브는 서양에서 따더라도 이걸 우리 식으로 소화해 보기로 했다.
이제 표현 방식이 문제였다. 이왕 우리 식으로 하기로 했으니 색동이 어떨까 싶었다. 명절이나 혼례 등 경사스러운 날에 착용하는 게 색동옷 아니었던가. 한복의 변천사를 간단하게나마 공부하고, 그림(풍속화) 속에서도 찾아보고, 한복 용어도 익혔다. 한복을 배우다 보니 이왕이면 조선 초기 악공이 착용한 복두를 머리에 씌우고 싶었다.
서울 종로의 광장시장 원단 가게에 가서 색동천이며 온갖 소품을 구입했다. 바느질도 하고 구슬도 꿰었다. 서툰 바느질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은 사극 의상 대여점에서 빌렸다. 소품 제작 및 대여 일정이 하나씩 조율됐다. 사진 콘셉트에 어울리게 가면과 부채도 만들어졌다. 생각보다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가 됐다. 마지막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정했다.
김태형 피아니스트를 새해의 시작인 2022년 1월 첫날(신정) 작업실에서 만났다. 전시회 ‘카니발’ 촬영의 시작이었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욕심이 생긴다. 떨리듯 입술은 살짝 웃음을 머금어야 하며, 점점 입술은 벌겋게 눈은 어둡게 변해가며 슬픔과 긴장감이 감도는 눈물도 좀 흘려줘야 한다. 김태형은 내가 원하는 피에로의 모습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눈물이 볼 위로 흐르는 이 순간 셔터를 누르며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대 위가 아닌 이 공간에서 이 피아니스트는 다른 역할로 해방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어떤 생각을 하며 감정을 잡고 있을까?
의상 표현을 위해서는 목 부분에 색동 러플(ruffle)을 둘렀다. 사진마다 색동 포인트가 하나씩 들어가야 했다. 색동천 위에 희고 투명한 레이스를 어설픈 손바느질로 덧대어 살짝 톤을 죽이고, 배경이 된 블랙 블라우스는 피에로의 지혜를 상징하는 의미로 선택했다. 이렇게 촬영하고 나니 세 신(scene)의 피에로가 탄생했다. 만족스러웠다. 촬영을 마치고 거울 앞에서 피에로로 변한 김태형은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컷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진짜 피에로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매혹적인 악동 피에로의 모습이랄까.
김태형 피아니스트는 전시회 오프닝 당일에 멋진 연주까지 해줬다. 난 속으로 감동이 벅차올랐다. 추위에 떨며 시장통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는 나중에 어떤 인터뷰에서 음악가로서 피아니스트 김태형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섬세하고 우아한 연주자, 또 명랑하면서도 깊은 철학과 슬픔도 살짝 보이는…. 피에로 역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그래서 맘에 쏙 드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고, 훌륭한 인성을 가진 연주자이다.” 이번 사진 작업이 없었다면 나는 그를 피에로에 빗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시회는 음악을 사진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의 시발점이 됐다. 감사한 사람이 많은데 모두 열거하진 못하지만 모델이 돼준 다른 아티스트들께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구본숙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