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VIP 프리뷰에서 신미리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VIP 프리뷰에서 신미리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프랑스어로 ‘가장 아름다운 시기’란 뜻의 ‘벨 에포크’. 통상 문화·예술이 꽃피웠던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 사이의 파리를 이렇게 부르지만, 프랑스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90·사진)에게 벨 에포크는 1930년대 중후반의 파리다.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이 담긴 시기여서다.

그래서 그는 지난 50여 년간 자신만의 벨 에포크를 화폭에 담았다.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개선문 등 파리의 랜드마크부터 어릴 적 눈 속에서 강아지와 뛰놀던 기억, 그리고 엄마와 나비를 잡았던 추억까지. 아이가 그린 것처럼 소박한 ‘나이브 아트’ 기법으로 1930~1940년대 파리를 그린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따뜻함’ 그 자체다. 세계 곳곳에서 300번 넘게 개인전을 여는 등 ‘러브콜’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펠탑·개선문…파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서울서 펼쳐진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 들라크루아의 작품들이 한국에 상륙했다. 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를 통해서다. 한국경제신문사와 2448아트스페이스가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에선 그가 2008년부터 최근까지 그린 그림 200여 점이 걸린다.

전시는 파리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공간마다 ‘정거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총 8개의 정거장을 통해 파리의 명소와 들라크루아의 생애를 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첫 번째 정거장은 ‘미드나잇 인 파리’. 전시장에 들어서면 1930년대 파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옛 파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입구에서 들리는 마차 소리도 시간여행 느낌을 주는 데 힘을 보탠다. 당시 최고 사교장이었던 물랭루주부터 에펠탑까지 파리의 대표 명소를 들라크루아의 화풍으로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정거장은 파리지앵의 일상을 담았다. 노천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다정하게 걷는 커플들…. 들라크루아는 이렇게 소소하면서도 낭만적인 순간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의 그림을 제대로 맛보려면 꼭 제목과 함께 봐야 한다. 비 내리는 날 택시를 발견한 사람을 그린 작품 제목은 ‘살았다!’다. 세찬 비바람이 부는 풍경이 담긴 그림에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이란 팻말이 붙었다.

다음 4~5번 정거장은 한겨울의 파리 도심을, 6~7번 정거장은 들라크루아가 어린 시절 자주 놀러간 이보르에서의 추억을 다뤘다.

특유의 화사한 색채와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그의 그림은 풍경화, 그 이상이다. 그는 “내 그림은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새긴 사진이 아니다”며 “모네 같은 인상파처럼 파리에 대한 인상을 내 방식으로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전시회를 열 때마다 “작가가 어린 시절 경험한 설렘과 따뜻함이 그대로 느껴진다”는 평가가 따라붙는 이유다. 파리에 가본 적 있는 사람들에겐 추억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로망을 선사한다.

올해 만 90세가 된 그는 여전히 붓을 놓지 않고 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정거장은 그가 올해 그린 신작들로 채워졌다. 그는 지금도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그림 그리는 데 쏟는다. 최근엔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집 뒷마당에 새로운 스튜디오까지 지었다. 열정이 식지 않은 노(老)화백의 전시는 그가 남긴 말로 끝을 맺는다.

“저는 긴 삶의 끝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 저도 많은 사람처럼 큰 만족, 몇몇 기쁨,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슬픔, 때론 짊어지기 무거운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림만큼은 언제나 저를 놓지 않았어요. 그림은 제게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전시는 내년 3월 31일까지. 입장료는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5000원, 어린이 1만2000원.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