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소주가 진열돼 있다. 뉴스1
지난 1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소주가 진열돼 있다. 뉴스1
내달 1일부터 국산 소주 출고가격이 지금보다 10.6% 인하된다. 예컨대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공장 출고가는 현재 1247원에서 1115원으로 낮아진다. 국산 소주와 위스키 등에 부과하는 세금의 과세기준이 낮아진 데 따른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 14일 기준판매비율심의회를 열고 국산 주류 세금부과 기준을 조정하는 기준판매비율을 확정했다고 17일 발표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일 기준판매비율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주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각각 입법예고한 데 따른 후속 대책이다.

기준판매비율은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을 정할 때 적용하는 비율을 뜻한다. 일종의 할인율로, 원가에서 기준판매비율분만큼 액수를 뺀 나머지가 과세표준이 된다. 기준판매비율이 커질수록 내야 하는 세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주류 출고가 인하 폭도 커진다.

이번에 처음 도입되는 기준판매비율은 현재 종가세로 부과되는 국산 증류주에 적용된다. 국산 증류주에 대한 기준판매비율은 내달 1일 출고분부터 적용된다. 현행 주세법은 국산 증류주를 소주와 위스키, 브랜디, 일반 증류주, 리큐르 등 5개로 구분한다. 종가세는 주류 가격이나 주류 수입업자가 신고한 수입 가격에 주세율을 곱해 과세하는 방식이다. 2020년부터 종량세를 적용하는 맥주는 기준판매비율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세청은 심의 결과 소주의 기준판매비율을 22.0%를 결정했다. 위스키는 23.9%, 브랜디는 8.0%, 일반 증류주는 19.7%, 일반 증류주는 19.7%, 리큐르는 20.9%가 적용된다. 주세법에서 명시된 첨가물이 들어간 증류주가 소주이며, 그 외 첨가물이 들어가면 일반 증류주와 리큐르다. 일반 증류주에서 당분 등 다양한 향신료나 감미료를 더한 술이 리큐르다.

국세청 관계자는 “심의회 위원 대부분 제도 도입 취지에 적극 공감하면서도 국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과 술의 외부불경제 효과 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비율을 확정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소주 등 국산 증류주에 기준판매비율을 도입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수입 주류에 비해 불리한 국산 주류의 과세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다. 소주·위스키 등 국내 증류주 세금을 매길 때는 ‘주류 제조장에서 출고하는 시점의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한다. 여기에 제조원가 외에 판매관리비나 판매 단계에서의 유통비용 등 마진이 포함돼 있다.

예컨대 하이트진로 제품인 참이슬(360mL) 한 병의 공장 원가는 586원으로, 이는 제조 비용과 판매관리비 및 이윤이 더해진 가격이다. 여기에 붙는 주세는 공장 원가의 72%인 422원이다. 주세의 30%인 교육세는 126원, 부가가치세는 113원이 추가돼 최종 출고가는 1247원이 된다. 소주 한 병에 부과하는 세금이 661원으로 공장 원가(586원)보다 많다.

반면 수입 주류는 수입 신고가를 과세표준으로 정해 주세를 부과한다. 수입 술의 경우 수입업자가 제출하는 유통 과정에서의 마진이 포함되지 않은 ‘수입 신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과세표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이 때문에 맥주는 2020년부터 과세 방식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었다. 주류가격에 주세율을 곱해 과세하는 종가세와 달리 종량세는 출고하는 주류의 양에 따라 주종별 세율을 곱해 주세를 부과한다.

다만 서민들이 즐겨 찾는 소주 세금을 기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하면 소주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나온 대안이 기준판매비율이다. 정부는 지난 7월 국산·수입 자동차 간 개별소비세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기준판매비율을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류에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내달부터 참이슬 출고가 132원 인하…'식당 술값'도 낮아질까
국세청 기준판매비율심의회(사진)의 이번 결정에 따라 내년 1월부터 22.0%의 기준판매비율이 적용되면 참이슬 한 병의 출고가는 현행 1247원에서 1115원으로 10.6% 인하된다. 23.9%의 기준판매비율이 적용되는 국산 위스키인 골든블루 더사피루스는 2만5905원에서 2만2912원으로, 11.6% 낮아진다.

주춤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지난 8월 이후부터 상승한 것도 정부는 당초 계획보다 기준판매비율 도입을 서두른 또 다른 이유다. 소비자물가가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서둘러 내놓은 물가관리 대책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식당 등 소매점에서 최종적으로 판매되는 가격이 낮아져 정부가 의도하는 물가 안정을 유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참이슬 360mL 기준으로 출고가는 1247.7원이지만, 식당이나 주점에서 판매하는 소주 가격은 통상 5000~6000원이다. 과거 기준으로 통상 출고가가 100원 가까이 오르면 식당이나 주점에선 열 배인 1000원 단위로 인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기준판매비율 도입에 따라 참이슬 360mL 기준으로 출고가는 132원 낮아진다. 하지만 현장에서 1000원 단위로 소매가를 내리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제조사가 공급한 소주는 주류 도매상들을 거쳐 음식점에 공급된다. 이 과정에서 출고가 인하 효과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선 식당이나 주점에서도 마진을 남기기 위해 소주 가격을 섣불리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