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美 고위급으로 확산하는 전관예우
역대 주한 미국대사 중 가장 친근한 인물로 마크 리퍼트 삼성전자 북미법인 대외협력팀장(부사장)을 꼽는 사람이 많다. 두산 베어스 ‘찐팬’인 그는 재임 시절(2014~2017년)은 물론 지난 봄·가을에도 잠실야구장을 찾았고, 두 자녀에게 ‘세준’ ‘세희’라는 한국 이름까지 붙인 친한파다.

리퍼트 전 대사는 201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가 괴한의 흉기에 얼굴 부위를 습격당하는 아픔을 겪어 우리에겐 더 각별하다. 수술 뒤 퇴원 기자회견에서 한국말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같이 갑시다’라고 해 감동을 줬다.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대사직에서 물러난 뒤 보잉, 구글 등에서 일하다가 작년 3월 삼성전자에 합류해 미국 행정부와 의회 등을 대상으로 대외협력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하면서 경제계의 미국 고위 관료 출신 영입이 잇따르고 있다. 조 헤이긴 전 백악관 부실장이 LG그룹 워싱턴 공동 사무소장으로,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포스코 미국법인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한화솔루션 북미법인 대관담당 총괄로 영입된 대니 오브라이언 전 폭스코퍼레이션 수석부사장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상원의원을 지낼 때 비서실장을 맡아 보좌한 측근이다.

내년 1월 중순부터는 한국계로는 미국 최고위급 외교관인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가 대형 로펌 태평양 본사로 출근할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부터 근무한 국무부에서 은퇴한 뒤 태평양이 신설하는 ‘글로벌 미래전략센터’의 센터장을 맡을 예정이다. 이 센터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규제 이슈에 대응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성 김 전 대사는 태평양 재직과 별도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자문역으로도 위촉됐다.

바야흐로 미국 고위 관료를 ‘전관’으로 영입하는 흐름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실제 이들의 네트워크는 웬만한 국내 마당발 뺨치는 수준이다. 성 김 전 대사만 해도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과는 서울 성북동에서 함께 자란 죽마고우 사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정 의원 소개로 그와 비공개 만찬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류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