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가 농축된 면역 항체를 몸속에 넣어주는 면역글로불린 주사제로 내년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 진출한다.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알리글로’ 시판 허가를 받으면서다. 현지 특성을 고려한 직접 판매 체제를 구축해 5년 안에 시장 점유율 3%를 넘어서는 게 목표다.

○FDA 통과한 여덟 번째 국산 신약

GC녹십자, 혈액제제 8년 집념…창사 첫 美 허가
GC녹십자는 지난 15일 FDA로부터 정맥투여용 면역글로불린 10% 제제인 알리글로 시판 허가를 받았다고 18일 발표했다. 1967년 수도미생물약품판매라는 사명으로 이 회사가 세워진 뒤 미국 허가 의약품이 나온 첫 사례다. 2003년 LG화학의 항생제 ‘팩티브’ 이후 국산 신약이 FDA 문턱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여덟 번째다. 혈액제제 허가는 알리글로가 처음이다.

알리글로는 건강한 기증자의 혈장에서 추출한 면역글로불린을 농축해 환자에게 투여하는 정맥 주사제다. 선천적 이유 탓에 면역력이 떨어진 1차 면역결핍증 환자 치료에 쓸 수 있다. 면역결핍증은 선천성 질환인 1차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으로 잘 알려진 2차로 나뉜다. 선천성 면역결핍증은 1만 명 중 1명꼴로 생긴다. 유전성 질환자가 많고 성염색체(X염색체) 유전 질환이기 때문에 환자 상당수가 남자아이다.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사진)는 “이번 승인으로 미국 내 면역결핍증 환자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CSL베링·다케다 등에 도전장

GC녹십자, 혈액제제 8년 집념…창사 첫 美 허가
면역력이 낮아 감염성 질환 위험이 높은 면역결핍증 환자들은 주기적으로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제품 개발을 위해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데다 기증자의 혈액을 정제하는 기술 장벽이 높아 출시된 신약은 많지 않다. 혈액 제제 강자인 미국 CSL베링, 스페인 그리폴스, 일본 다케다제약 등 10여 개 업체가 미국에 진출했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GC녹십자는 내년 하반기 현지 자회사인 GC바이오파마USA를 통해 미국에서 알리글로를 출시할 계획이다. 직판 체제를 활용해 수익성을 높이면서 코로나19 이후 의약품 유통 채널로 급성장한 전문약국(SP) 채널을 주로 공략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초기에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2029년께 시장 점유율 3%를 넘어서는 게 목표다.

지난해 기준 미국 정맥주사용 면역글로불린 시장 규모는 90억달러(약 11조7000억원)다. 2030년 131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란 평가다. 시장 성장 추이에 따라 단순 계산하면 5년 뒤 단일 제품군으로 40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8년 걸친 도전 끝에 시판 허가

이번 허가를 위해 GC녹십자는 8년간 도전을 이어왔다. 용량이 다른 면역글로불린 5% 제품으로 FDA에 처음 허가 서류를 제출한 것은 2015년이다. 당시 두 차례 제조 공정 보완 요청을 받은 뒤 결국 FDA 허가를 받는 데엔 실패했다.

GC녹십자는 올해 7월 FDA에 허가 서류를 다시 제출했다. FDA는 당초 허가 기일로 못 박았던 내년 1월 13일보다 한 달 빠르게 최종 통과 소식을 전했다.

허가 절차가 다소 늦어졌지만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는 등 제품 안전성을 높였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GC녹십자는 이달 초 국제학술지에 불순물 제거에 도움 되는 정제 공정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