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환율 잡으려 통화주권 포기…'양날의 검' 달러라이제이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유승호의 경제야 놀자
오죽하면 달러를 쓸까
아르헨, 현금 살포로 물가 폭등
밀레이 대통령 "페소는 쓰레기"
달러화 도입…현실화는 물음표
통화주권 포기의 대가
중앙銀, 위기대응 수단 사라지고
환율의 경기 조절기능도 없어져
오죽하면 달러를 쓸까
아르헨, 현금 살포로 물가 폭등
밀레이 대통령 "페소는 쓰레기"
달러화 도입…현실화는 물음표
통화주권 포기의 대가
중앙銀, 위기대응 수단 사라지고
환율의 경기 조절기능도 없어져
“페소는 배설물만 한 가치도 없다. 그런 쓰레기는 비료로도 못 쓴다.”
지난 10일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선거 운동 과정에서 한 말이다. 그는 자국 통화 페소를 배설물과 쓰레기에 비유하며 미국 달러를 아르헨티나 공식 통화로 채택하겠다고 공약했다. 자기 나랏돈을 없애고 남의 나랏돈을 쓰겠다니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나라가 미국 달러를 공식 통화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얻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에 공짜는 없다. 달러라이제이션 역시 효과만큼이나 치러야 할 대가가 따른다.
정부 정책과 상관없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달러라이제이션이 일어나기도 한다. 경제 주체들이 자국 통화를 믿지 못해 달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북한도 그런 사례다. 한국은행은 작년 8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탈북자 289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 주민의 23.7%가 달러를 사용해봤을 것으로 추정했다. 위안화를 써본 북한 주민 비율도 15.7%로 추산됐다. 북한에선 달러라이제이션과 위아나이제이션(중국 위안화를 공식 통화로 사용하는 현상)이 함께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아르헨티나 역시 이미 시장에서는 달러가 통용되고 있다. 무려 2300억달러가 아르헨티나 국민의 지갑과 금고, 이불 밑, 옷장 등에 보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1인당 5000달러가 넘는다. 미국을 제외하면 민간이 보유한 달러가 가장 많은 나라가 아르헨티나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화폐 증발의 결과로 나타난다. 아르헨티나도 그렇다. 각종 공공요금에 보조금을 지급하느라 정부 재정이 바닥났고 모자란 돈은 찍어서 썼다. 그렇게 풀린 돈이 물가를 끌어올려 11월 아르헨티나 물가는 1년 전보다 160.9% 상승했다. 이런 나라가 자국 통화를 없애고 달러를 쓰면 마구잡이로 돈을 풀어 물가가 뛰게 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달러는 미국 중앙은행(Fed)만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찍어서 쓸 수 없으니 현금 살포 등 무분별한 재정 지출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환율 변동 위험이 사라져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무역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환율의 경기 조절 기능도 사라진다. 예컨대 한국은 달러가 강세를 띠면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어나고 경기가 좋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달러를 쓰는 나라는 달러 강세가 곧 자국 통화의 강세를 의미해 수출에 오히려 불리해진다.
밀레이 대통령의 달러라이제이션 공약이 현실화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관측이 많이 나온다. 달러라이제이션을 하려면 아르헨티나 국민이 보유한 페소를 모두 달러로 바꿔줘야 하는데 아르헨티나 당국엔 그만한 달러가 없다. 더구나 밀레이 대통령의 자유전진당은 하원 257석 중 37석, 상원 72석 중 7석을 보유했다. 중남미 3위, 세계 23위 규모인 아르헨티나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지난 10일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선거 운동 과정에서 한 말이다. 그는 자국 통화 페소를 배설물과 쓰레기에 비유하며 미국 달러를 아르헨티나 공식 통화로 채택하겠다고 공약했다. 자기 나랏돈을 없애고 남의 나랏돈을 쓰겠다니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나라가 미국 달러를 공식 통화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얻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에 공짜는 없다. 달러라이제이션 역시 효과만큼이나 치러야 할 대가가 따른다.
○아르헨도 달러, 북한도 달러
달러라이제이션은 어느 나라가 자국 통화 대신 미국 달러를 공식 통화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파나마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국가 중 달러를 법정 통화로 채택한 나라가 많다. 달러가 공식 통화는 아니지만 자국 통화의 가치를 미국 달러에 일정 비율로 고정해 놓는 나라도 있다. 홍콩이 대표적이다. 현재 60여 개국이 달러를 법정 통화로 쓰거나 페그제(특정 국가의 통화에 자국 통화의 환율을 고정하는 제도)를 시행한다.정부 정책과 상관없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달러라이제이션이 일어나기도 한다. 경제 주체들이 자국 통화를 믿지 못해 달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북한도 그런 사례다. 한국은행은 작년 8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탈북자 289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 주민의 23.7%가 달러를 사용해봤을 것으로 추정했다. 위안화를 써본 북한 주민 비율도 15.7%로 추산됐다. 북한에선 달러라이제이션과 위아나이제이션(중국 위안화를 공식 통화로 사용하는 현상)이 함께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아르헨티나 역시 이미 시장에서는 달러가 통용되고 있다. 무려 2300억달러가 아르헨티나 국민의 지갑과 금고, 이불 밑, 옷장 등에 보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1인당 5000달러가 넘는다. 미국을 제외하면 민간이 보유한 달러가 가장 많은 나라가 아르헨티나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고육지책 달러라이제이션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나라라면 멀쩡한 자국 통화를 두고 남의 나라 화폐를 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달러를 공식 통화로 채택한 나라는 대부분 하이퍼인플레이션 등 극심한 경제 불안정을 경험한 곳이다. 밀레이 대통령의 표현대로 통화 가치가 쓰레기 수준으로 떨어져 화폐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물가를 잡고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달러라이제이션을 시도하는 것이다.하이퍼인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화폐 증발의 결과로 나타난다. 아르헨티나도 그렇다. 각종 공공요금에 보조금을 지급하느라 정부 재정이 바닥났고 모자란 돈은 찍어서 썼다. 그렇게 풀린 돈이 물가를 끌어올려 11월 아르헨티나 물가는 1년 전보다 160.9% 상승했다. 이런 나라가 자국 통화를 없애고 달러를 쓰면 마구잡이로 돈을 풀어 물가가 뛰게 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달러는 미국 중앙은행(Fed)만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찍어서 쓸 수 없으니 현금 살포 등 무분별한 재정 지출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환율 변동 위험이 사라져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무역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독자적인 통화가 없으면…
그러나 달러라이제이션을 하려면 통화 주권을 포기하는 데 따르는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 독자적인 통화가 없으니 중앙은행이 돈을 더 풀거나 덜 푸는 방식으로 경기 변동에 대응할 수단이 사라진다.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최종 대부자 기능도 할 수 없다.환율의 경기 조절 기능도 사라진다. 예컨대 한국은 달러가 강세를 띠면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어나고 경기가 좋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달러를 쓰는 나라는 달러 강세가 곧 자국 통화의 강세를 의미해 수출에 오히려 불리해진다.
밀레이 대통령의 달러라이제이션 공약이 현실화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관측이 많이 나온다. 달러라이제이션을 하려면 아르헨티나 국민이 보유한 페소를 모두 달러로 바꿔줘야 하는데 아르헨티나 당국엔 그만한 달러가 없다. 더구나 밀레이 대통령의 자유전진당은 하원 257석 중 37석, 상원 72석 중 7석을 보유했다. 중남미 3위, 세계 23위 규모인 아르헨티나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