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소리도 느껴지는 소극장에서…은밀하게 들려오는 쇼팽의 사랑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폴란드 작곡가 쇼팽에겐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조르주 상드. 19세기 프랑스에서 이름을 날린 인기 작가다. 자유분방한 상드는 사교계의 유명 인사로 수많은 남성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음악극 ‘쇼팽, 블루노트’는 쇼팽과 상드가 맺은 내밀한 관계를 쇼팽의 피아노곡과 함께 담았다. 쇼팽(류영빈 분)과 상드(이다해 분)가 등장하는 2인극으로 진행된다. 상드는 쇼팽의 상대역을 맡으면서 동시에 해설자로 극에 참여한다.

연극에서는 쇼팽과 상드가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 등이 묘사된다. 작품의 제목에 쓰인 ‘블루노트’는 쇼팽과 상드의 이야기를 다룬 프랑스 영화 제목에서 가져왔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상드는 쇼팽의 음악을 색깔로 묘사할 때 푸른색을 강조했다고 한다. ‘블루’는 둘이 주고받은 일종의 암호였던 셈이다.

연극은 쇼팽의 전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폴란드에서 나고 자란 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등에서 거주하며 음악적으로 성장한 쇼팽의 삶과 사랑을 시간순으로 전달한다. 러시아에 침략당한 폴란드 국민으로서 쇼팽이 겪은 좌절감은 물론 폐결핵의 고통과 음악적 고뇌 등도 접할 수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해당 분위기와 어울리는 쇼팽의 음악 9곡이 라이브로 흐른다. ‘혁명’ ‘이별의 왈츠’ ‘녹턴’ 등이다. 가령 쇼팽이 마요르카섬에서 상드와 지내던 시절에 작곡한 ‘빗방울 전주곡’은 극 중 쇼팽이 마요르카섬에서 행복감과 죽음의 공포를 동시에 느끼는 장면 바로 뒤에 연주된다.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쿠프카 피오트르와 일본 출신 피아니스트 히로타 슌지가 번갈아 무대에 올라 피아노를 친다. 음악과 연극적 서사가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특히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쇼팽의 음악뿐 아니라 그의 일생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다.

공간이 주는 울림이 큰 공연이다. 소극장 산울림은 국내 연극계 거물 임영웅 연출가와 번역가 오증자 부부가 만든 공간이다. 1985년 개관했고 지금은 연로한 부모의 뒤를 이어 딸 임수진 씨가 극장장을, 아들 임수현 씨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100석 남짓한 지하의 아늑한 소극장이 피아노 선율과 정서적 울림으로 가득 찬다. 배우와 피아니스트의 작은 숨소리와 호흡까지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음악극이다.

이 공연은 2013년부터 시작한 ‘산울림 편지콘서트’ 레퍼토리 중 하나다. 10년 동안 베토벤, 모차르트, 슈만, 슈베르트, 브람스,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 등을 다룬 음악극을 올려왔다. 공연은 서울 서교동 소극장 산울림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