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탄소배출 측정 ‘발등의 불’…부족한 LCI DB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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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탄소발자국이 환경 규제 대응을 위한 핵심 정보로 부상하고 있다. 탄소발자국 정보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품질의 전과정 목록 데이터베이스(LCI DB)를 확보해야 한다. 탄소발자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지만 한국은 LCI DB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제품 탄소발자국 산정의 필수 요소인 전과정 목록(Life Cycle Inventory, LCI) 데이터베이스 관련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기업이 활용할 만한 LCI DB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품 탄소발자국은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배터리 여권 등 녹색 규제 대응을 위한 필수 정보로 LCI DB를 통해 산정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제품별 탄소발자국은 원료의 가공, 생산, 사용, 재활용, 폐기 등 모든 단계에 대한 조사 및 분석을 통해 산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텔레비전 1대를 생산하고 판매하며 사용과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전부 계산하는 것이다.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진 제품의 전과정을 직접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물질의 사용, 공정 등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주로 LCI DB를 통해 산출한다. LCI DB는 제품 전과정평가(LCA)에 대한 2차 데이터로 원시 데이터 없이도 환경성 평가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일반적 공정에서 탄소배출을 포함한 대부분 환경영향 정보는 LCI DB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제품 탄소발자국 산정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선 다수의 고품질 LCI DB를 확보해야 한다. 산업별로 스페라(Sphera), 에코인벤트(Ecoinvent), 세계철강협회(WSA), 지속가능한 의류연합(SAC) 등 다양한 컨설팅 기관과 산업협회 등이 LCI DB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민간 부문에서 LCI DB를 만들어 기업과 산업의 필요를 충족하고 있다.
확충·갱신 필요한 한국 LCI DB
미국 정부도 LCI 데이터 저장소를 만들어 국립 재생에너지 연구소, 환경보호국, 국립에너지기술연구소, 개별 대학 등이 제공하는 LCI 정보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한곳에 모아 민간에 제공하고 있다. 제품 탄소발자국 산정의 품질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국제 LCI DB와 호환성을 높여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측면이 크다. 영국과 일본 등 다수 국가가 LCI DB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LCA를 위한 정보를 국제 LCI DB 플랫폼인 GLAD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90년대 국가 주도로 LCI DB를 구축한 이후 적절한 관리를 못 하고 있다. 사실상 환경부에서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며, 이렇다 할 갱신이 없어 10년 전에 만든 자료가 DB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마저도 기본 자료에 그쳐 급변하는 산업계의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GLAD에 등록된 한국의 LCI DB 개수는 주요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환경 컨설팅업계에 따르면 DB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상 기업의 자료 협조가 녹록지 않으며, 무엇보다 LCI DB 관련 전문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DB 부족과 부재에 따른 문제점은 고스란히 기업에 전가되고 있다. LCA 산정 결과에 대한 대외적 불신과 함께 DB가 부재한 경우 높은 배출계수가 적용된다. 우수한 기술 및 공정이 LCA에 반영되지 않으며, 이는 상대적으로 높은 배출량으로 표현되어 제품 경쟁력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힌다.
이에 환경부는 2021년부터 LCI DB 구축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 단계적으로 DB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대학 운영, 일관된 분석을 위한 제품 범주 규격(PCR) 작업, 환경성적표지 상호 인증 체계 구축 등이 주요 사업 내용이다. 환경부는 수출 산업 중심으로 기초 DB를 확보해 2024년까지 주요 규제에 대응하고, 나아가 2030년까지 1900여 개 DB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은 과제가 많다. DB 구축은 정부 주도에서 협회, 기업 등 민간 주도로 확대되어야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실무 인력이 배출되어야 한다. 또 개별 기업 단위가 아닌 산업 공동 단위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단순 탄소발자국 산정이 아닌 제품과 시스템 전과정의 탄소저감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키워드, 탄소발자국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8년 지구온난화 1.5℃ 특별 보고서를 발간하며 제품 탄소발자국 산정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배출 가능한 탄소 예산이 줄어 사업장 중심의 직접적 탄소배출량 관리에서 제품 중심의 간접적 탄소배출량 관리 방식으로 모든 계획과 전략이 수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공적이라고 여기던 글로벌 공급망 시스템이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리스크가 되고 있다. 이에 주요 선진국은 흩어진 공급망을 모으기 위해 리쇼어링 정책(제조업의 본국 회귀)을 펼치고 있다.
제품 탄소발자국은 국제무역에서 공정과 생산방식(PPMs) 같은 제한적 영역에서 벗어나 제품에 시스템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글로벌 후방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도록 해준다. 대표적으로 CBAM은 유럽이 수입하는 철강, 시멘트 등 생산과정에서 배출된 탄소에 간접세를 부과해 환경규제에 의한 차등적 기업 부담을 해소하고, 역외 기업에 탄소배출 저감 활동을 강제한다.
이는 수입국 산업의 일부를 좌초자산(자산가치 하락으로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되는 자산)으로 전락시키거나 운용 비용을 가중해 자국의 원자재 및 부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또 제품과 탄소에 초점을 둔 규제는 배터리, 자동차 등 일반 소비재 제품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순환경제라는 정책 패러다임은 노골적으로 이러한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제품 중심의 탄소배출량 산정은 제품 단위 정보의 생성 및 운영체계로 경영 환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품 단위 정보 체계는 배터리나 에코디자인 규정에서 디지털 제품 여권(DPP)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급망 탄소 경쟁이 자동차, 전기·전자, 섬유산업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선진화된 제조 시설과 관리 체계를 갖춘 만큼 탄소 규제를 기회로 만들 잠재력이 충분하다.
홍석진 트레스웍스 대표
구체적으로 제품별 탄소발자국은 원료의 가공, 생산, 사용, 재활용, 폐기 등 모든 단계에 대한 조사 및 분석을 통해 산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텔레비전 1대를 생산하고 판매하며 사용과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전부 계산하는 것이다.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진 제품의 전과정을 직접 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물질의 사용, 공정 등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주로 LCI DB를 통해 산출한다. LCI DB는 제품 전과정평가(LCA)에 대한 2차 데이터로 원시 데이터 없이도 환경성 평가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일반적 공정에서 탄소배출을 포함한 대부분 환경영향 정보는 LCI DB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제품 탄소발자국 산정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선 다수의 고품질 LCI DB를 확보해야 한다. 산업별로 스페라(Sphera), 에코인벤트(Ecoinvent), 세계철강협회(WSA), 지속가능한 의류연합(SAC) 등 다양한 컨설팅 기관과 산업협회 등이 LCI DB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민간 부문에서 LCI DB를 만들어 기업과 산업의 필요를 충족하고 있다.
확충·갱신 필요한 한국 LCI DB
미국 정부도 LCI 데이터 저장소를 만들어 국립 재생에너지 연구소, 환경보호국, 국립에너지기술연구소, 개별 대학 등이 제공하는 LCI 정보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한곳에 모아 민간에 제공하고 있다. 제품 탄소발자국 산정의 품질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국제 LCI DB와 호환성을 높여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측면이 크다. 영국과 일본 등 다수 국가가 LCI DB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LCA를 위한 정보를 국제 LCI DB 플랫폼인 GLAD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90년대 국가 주도로 LCI DB를 구축한 이후 적절한 관리를 못 하고 있다. 사실상 환경부에서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며, 이렇다 할 갱신이 없어 10년 전에 만든 자료가 DB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마저도 기본 자료에 그쳐 급변하는 산업계의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GLAD에 등록된 한국의 LCI DB 개수는 주요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환경 컨설팅업계에 따르면 DB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상 기업의 자료 협조가 녹록지 않으며, 무엇보다 LCI DB 관련 전문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DB 부족과 부재에 따른 문제점은 고스란히 기업에 전가되고 있다. LCA 산정 결과에 대한 대외적 불신과 함께 DB가 부재한 경우 높은 배출계수가 적용된다. 우수한 기술 및 공정이 LCA에 반영되지 않으며, 이는 상대적으로 높은 배출량으로 표현되어 제품 경쟁력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힌다.
이에 환경부는 2021년부터 LCI DB 구축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 단계적으로 DB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대학 운영, 일관된 분석을 위한 제품 범주 규격(PCR) 작업, 환경성적표지 상호 인증 체계 구축 등이 주요 사업 내용이다. 환경부는 수출 산업 중심으로 기초 DB를 확보해 2024년까지 주요 규제에 대응하고, 나아가 2030년까지 1900여 개 DB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은 과제가 많다. DB 구축은 정부 주도에서 협회, 기업 등 민간 주도로 확대되어야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실무 인력이 배출되어야 한다. 또 개별 기업 단위가 아닌 산업 공동 단위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단순 탄소발자국 산정이 아닌 제품과 시스템 전과정의 탄소저감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키워드, 탄소발자국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8년 지구온난화 1.5℃ 특별 보고서를 발간하며 제품 탄소발자국 산정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배출 가능한 탄소 예산이 줄어 사업장 중심의 직접적 탄소배출량 관리에서 제품 중심의 간접적 탄소배출량 관리 방식으로 모든 계획과 전략이 수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공적이라고 여기던 글로벌 공급망 시스템이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리스크가 되고 있다. 이에 주요 선진국은 흩어진 공급망을 모으기 위해 리쇼어링 정책(제조업의 본국 회귀)을 펼치고 있다.
제품 탄소발자국은 국제무역에서 공정과 생산방식(PPMs) 같은 제한적 영역에서 벗어나 제품에 시스템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글로벌 후방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도록 해준다. 대표적으로 CBAM은 유럽이 수입하는 철강, 시멘트 등 생산과정에서 배출된 탄소에 간접세를 부과해 환경규제에 의한 차등적 기업 부담을 해소하고, 역외 기업에 탄소배출 저감 활동을 강제한다.
이는 수입국 산업의 일부를 좌초자산(자산가치 하락으로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되는 자산)으로 전락시키거나 운용 비용을 가중해 자국의 원자재 및 부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또 제품과 탄소에 초점을 둔 규제는 배터리, 자동차 등 일반 소비재 제품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순환경제라는 정책 패러다임은 노골적으로 이러한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제품 중심의 탄소배출량 산정은 제품 단위 정보의 생성 및 운영체계로 경영 환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품 단위 정보 체계는 배터리나 에코디자인 규정에서 디지털 제품 여권(DPP)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급망 탄소 경쟁이 자동차, 전기·전자, 섬유산업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선진화된 제조 시설과 관리 체계를 갖춘 만큼 탄소 규제를 기회로 만들 잠재력이 충분하다.
홍석진 트레스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