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용재 오닐 "새로운 음악적 영감 찾으려 요즘도 밤잠 설쳐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인터뷰
비올리스트로 그래미상 수상
세계가 인정하는 실력파 연주자
"반복된 실패가 나를 키웠다
나아지기 위해 쉼 없이 연습"
24, 29일 임동혁 등과 연주회
비올리스트로 그래미상 수상
세계가 인정하는 실력파 연주자
"반복된 실패가 나를 키웠다
나아지기 위해 쉼 없이 연습"
24, 29일 임동혁 등과 연주회
비올라. 이 악기의 소리와 모양새, 쓰임새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저 크기만 보고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 어딘가의 음역을 내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유명한 솔로곡도 잘 안 떠오르고,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튀는 악기도 아니니 잘해봤자 ‘명품 조연’이다.
한국계 미국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5·사진)은 이런 ‘조연’ 악기로 클래식 무대의 ‘주인공’이 된 연주자다. 2021년 미국 그래미 시상식에서 다닐 트리포노프, 이고르 레비트 등 쟁쟁한 피아니스트들을 제치고 ‘베스트 클래식 기악 독주’상을 거머쥐었다. 독주만 잘하는 게 아니다. 그가 이 시대 최고 실내악단 중 하나로 꼽히는 타카치콰르텟에서 다른 연주자들과 빚어내는 화음을 들어보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1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용재 오닐에게 연주자로 성공한 비결부터 물었다. 그의 답변은 다소 뜻밖이었다. “저는 탄탄대로를 걸은 연주자가 아닙니다. 2005년 타카치콰르텟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그래미 수상도 두 번이나 불발되는 등 여러 번 고배를 마셨죠. 사실 제 인생은 실패의 반복이었어요. 이게 저를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제대로 경험한 덕분에 부족함을 알고, 끊임없이 공부했거든요.”
용재 오닐에게 한국은 떼낼 수 없는 나라다. 6·25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한국인 어머니 아래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한국 이름 ‘용재’도 줄리아드음대 재학 시절 그의 한국인 스승 강효 교수가 지어줬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바빠도 매년 한국을 찾는다. 오는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듀오 콘서트를 하고, 29일 같은 곳에서 테너 존노, 기타리스트 박종호 등과 송년 음악회를 선물한다.
용재 오닐은 “오랜 친구 임동혁과는 슈베르트, 라흐마니노프 등 낭만주의 작품을 선택했고 존노, 박종호와의 공연은 연말 분위기가 나는 바로크 곡으로 채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도 음악적 고뇌로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고 했다. 단순히 연주 기교를 더 끌어올리고, 더 예쁜 소리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음악을 더 깊고 다채롭게 해석하고, 이를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음악인으로서의 목표를 “(나의 연주를 들은) 누군가의 삶을 두 시간이라도 풍요롭게 해주는 연주자가 되는 것”이라고 정했다. 용재 오닐은 “나이가 들면서 ‘정말 많은 사람이 상처받고 힘들어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주를 선사한다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비올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다. “음악은 신비로운 예술이에요. 똑같은 악보라도 연주자가 어떤 감성으로 풀어내느냐, 어떤 상상을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음악가는 하나의 물음에 여러 개의 답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속 바뀌려고 노력해야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용재 오닐은 이번 공연에서 비올라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무겁고 짙은 음색으로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도, 한순간 얼굴을 바꿔 따뜻한 울림을 만들어내죠. 이런 비올라의 매력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기 힘들 겁니다.”
글=김수현/사진=이솔 기자 ksoohyun@hankyung.com
한국계 미국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5·사진)은 이런 ‘조연’ 악기로 클래식 무대의 ‘주인공’이 된 연주자다. 2021년 미국 그래미 시상식에서 다닐 트리포노프, 이고르 레비트 등 쟁쟁한 피아니스트들을 제치고 ‘베스트 클래식 기악 독주’상을 거머쥐었다. 독주만 잘하는 게 아니다. 그가 이 시대 최고 실내악단 중 하나로 꼽히는 타카치콰르텟에서 다른 연주자들과 빚어내는 화음을 들어보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1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용재 오닐에게 연주자로 성공한 비결부터 물었다. 그의 답변은 다소 뜻밖이었다. “저는 탄탄대로를 걸은 연주자가 아닙니다. 2005년 타카치콰르텟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그래미 수상도 두 번이나 불발되는 등 여러 번 고배를 마셨죠. 사실 제 인생은 실패의 반복이었어요. 이게 저를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제대로 경험한 덕분에 부족함을 알고, 끊임없이 공부했거든요.”
용재 오닐에게 한국은 떼낼 수 없는 나라다. 6·25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한국인 어머니 아래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한국 이름 ‘용재’도 줄리아드음대 재학 시절 그의 한국인 스승 강효 교수가 지어줬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바빠도 매년 한국을 찾는다. 오는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듀오 콘서트를 하고, 29일 같은 곳에서 테너 존노, 기타리스트 박종호 등과 송년 음악회를 선물한다.
용재 오닐은 “오랜 친구 임동혁과는 슈베르트, 라흐마니노프 등 낭만주의 작품을 선택했고 존노, 박종호와의 공연은 연말 분위기가 나는 바로크 곡으로 채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도 음악적 고뇌로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고 했다. 단순히 연주 기교를 더 끌어올리고, 더 예쁜 소리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음악을 더 깊고 다채롭게 해석하고, 이를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음악인으로서의 목표를 “(나의 연주를 들은) 누군가의 삶을 두 시간이라도 풍요롭게 해주는 연주자가 되는 것”이라고 정했다. 용재 오닐은 “나이가 들면서 ‘정말 많은 사람이 상처받고 힘들어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주를 선사한다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비올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다. “음악은 신비로운 예술이에요. 똑같은 악보라도 연주자가 어떤 감성으로 풀어내느냐, 어떤 상상을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음악가는 하나의 물음에 여러 개의 답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속 바뀌려고 노력해야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용재 오닐은 이번 공연에서 비올라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무겁고 짙은 음색으로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도, 한순간 얼굴을 바꿔 따뜻한 울림을 만들어내죠. 이런 비올라의 매력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기 힘들 겁니다.”
글=김수현/사진=이솔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