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CERIK) 원장이 2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대내외 경기·금융시장 대예측 세미나에서 강연하고 있다. 선한결 기자
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CERIK) 원장이 2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대내외 경기·금융시장 대예측 세미나에서 강연하고 있다. 선한결 기자
“내년 건설·부동산 경기는 둔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단기 수익형 투자나 레버리지(빚)에 의존하는 투자엔 신중을 기해야 할 때입니다.”

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CERIK) 원장(사진)은 2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대내외 경기·금융시장 대예측 세미나’에서 "내년 주택 매매가는 하향 안정화에 들어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내년 집값은 한동안 내림세를 탈 것이란 얘기다.

“건설 수주, 주택 인허가·착공·분양 모두 줄어”

이 원장은 이날 국내 건설·부동산 시장이 ‘3고(高) 현상과 저성장의 덫’에 걸려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고물가(인플레이션)·고금리·고환율이 겹쳐 국내 기업들의 비용부담이 증가했고, 소비·투자도 위축되면서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건설·부동산 시장은 위기의 악순환이 가동되고 있다”며 “거시경제 어려움이 커진데다가 그간 부동산 정책이 수요 억제 정책에 치중한 영향”이라고 말했다.

요즘 국내 건설시장은 민간의 비중이 높아져 거시경제 변수에 더욱 민감해졌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2018년 이래 민간부문의 건설수주 비중이 확연히 증가하면서 최근엔 공공대 민간 비중이 25%대 75%가량이 됐다”며 “이같은 환경에선 경기침체시 시장의 위험이 가중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건설·부동산 시장은 선행지표가 대부분 좋지 않은 분위기”라며 “이는 내년 경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3분기까지 국내 누주 건설수주는 전년동기대비 26% 감소했다. 올들어선 갈수록 분기 수주 하락세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작년에 이어 건축 착공 면적도 줄고 있다. 이 원장은 “올들어 지난 10월까지 기준으로 비주거 착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2%, 주거 착공은 42.2%나 줄었다”며 “같은 기간 주택 인허가·착공·분양 물량은 전년대비 각각 36%, 59.1%, 35.2%씩 감소했다”고 했다.

그는 “경기가 악화하면서 사업성이 떨어지니 착공이 지연되고 있는 곳들이 많다”며 “이는 2~3년 후에는 주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요 선행지수도 소폭 증가세지만 여전히 활발하진 않은 분위기다. 올들어 한동안 다소 늘었던 주택 매매거래량은 9월 이후 둔화하는 분위기다.

이 원장은 “올해 청약률 경쟁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지만 실제 계약률은 다른 해에 비해 낮은 편”이라며 “여전히 소비자가 시장을 보는 눈이 차갑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미분양 물량도 올 상반기 정점을 찍고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제주 등 일부 지역에선 미분양 물량이 증가세”라고 덧붙였다.

“내년 집값, 하향 안정화 추세 예상”

이 원장은 내년에도 건설·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선행지표가 감소하는 와중 고물가와 경제 저성장, 금융 여건 어려움 등이 겹칠 것”이라며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건설수주와 건설 투자 등이 모두 감소할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엔 전국에 걸쳐 주택 매매가가 하락할 것으로 본다”며 “수도권은 1%대, 지방 3%대 하락세를 보이는 등 지역과 주택별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주택 매수세가 위축되면서 전세 수요는 추가 유입이 예상된다”며 “이때문에 전세가는 전국 2.0%가량 오를 전망”이라고 했다.

내년 건설·부동산 시장 주요 변수로는 금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안전성, 건설 공사비 추이 등을 꼽았다. 이 원장은 “건설업 차입금 평균 이자율이 2020년부터 꾸준히 늘고 있고, 고금리로 인한 자금 조달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며 “PF 대출 부실화 위험도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021년 1월부터 지난 9월까지 소비자물가지수가 11.8% 오르는 동안 건설공사비지수는 23.9% 올랐다”며 “수입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공사비 등 건설물가가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각종 변수 불확실성을 볼 때 내년엔 신중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게 이 원장의 조언이다. 그는 “시장 불확실성과 금융 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 시차 등을 충분히 따져야 한다”며 “단기 수익형 투자와 레버리지 의존형 투자는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건설·부동산,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만들어야”

이 원장은 이날 건설·부동산 시장의 체질 개선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건설·부동산 시장은 으레 경제 침체기에 ‘제 1선’에서 영향을 받는다”며 “이같은 일을 피하려면 산업 전반의 생태계 전환을 통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건설·부동산 산업에선 그간 품질과 안전 등 기본적 측면에서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등 변화에 둔감하다는 게 고질적인 문제”라며 “앞으로는 디지털전환에 힘쓰고 로보틱스, 사물인터넷(IoT) 등 스마트·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지속가능 경영에도 힘써 ‘21세기 건설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한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