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연속 올랐지만…홍해 리스크 적응하며 상승폭 둔화 [오늘의 유가]
브렌트유 장중 배럴당 80달러 돌파
“실질 공급 감소 없어” 상승폭 1% 미만
美 원유 생산량 사상 최고치 기록


홍해발(發) 지정학 리스크에 국제유가가 사흘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다만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상승 폭은 다소 제한됐다.

내년 2월 인도 예정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전일보다 28센트(0.4%) 오른 배럴당 74.2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30일(배럴당 75.96달러) 이후 약 3주 만에 최고치다.

국제유가 벤치마크로 여겨지는 브렌트유 2월물은 전장보다 47센트(0.6%) 상승한 배럴당 79.70달러에 마감했다. 역시 11월 30일(배럴당 82.83달러)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예멘 후티 반군의 무력 공격으로 홍해 바닷길이 막힌 데 따른 수급 리스크가 유가를 계속해서 밀어 올리고 있다. 친이란 성향의 후티 반군은 지난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현재까지 홍해를 지나는 민간 선박을 15차례 공격하거나 위협했다. 화물선과 유조선 등이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홍해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둘러 가는 우회로를 택하면서 350억달러(약 46조원)어치의 물류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산됐다.
3일 연속 올랐지만…홍해 리스크 적응하며 상승폭 둔화 [오늘의 유가]
그리스는 이날 홍해와 아덴만을 지나는 상선들에 예멘 해역 통과를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그리스 선주들은 전 세계 선박 수송 능력의 약 20%를 장악하고 있다. 미 해군은 아덴만에 항공모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호를 진입시켰다.

프라이스퓨처스그룹의 필 플린 수석 애널리스트는 “후티 반군의 항로 교란은 전쟁 행위일 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대한 위협”이라며 “지난달까지만 해도 중동 전쟁에 따른 위험 프리미엄이 유가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으나, 원유 시장에 경종이 울린 셈”이라고 말했다.

플린 애널리스트는 “앞으로의 관건은 (다국적군을 꾸려 대응에 나선) 미국이 이란을 직접 겨냥할지 여부”라고 봤다. 로이터통신은 미 당국자를 인용해 “(다국적 함대의) 세부 내용과 직접적인 무력 개입 여부 등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고 전했다.

원유 시장이 서서히 홍해 리스크에 적응해 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덴마크 투자은행 삭소뱅크의 올레 한센 애널리스트는 “원유 공급은 단지 (수급선이) 재편됐을 뿐, 부족하진 않은 상황”이라며 “생산량에 타격이 없는 한 시장은 결국 여기에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3일 연속 올랐지만…홍해 리스크 적응하며 상승폭 둔화 [오늘의 유가]
홍해에서의 긴장이 걷히면 큰 폭의 국제유가 하락세가 나타날 거란 관측도 제기된다. 리터부시앤어소시에이츠의 존 리터부시 대표는 “홍해 뱃길을 통한 화물 운송이 안정화되는 즉시 유가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투자회사 XM의 마리오스 하지키리아코스 애널리스트도 “수요 둔화와 더불어 사상 최고 수준인 미국의 생산량 등 수급 요인을 고려할 때 무역 차질이 유가를 장기간 떠받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날 발표된 미 원유 생산량은 또 한 차례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 15일로 끝난 한 주 동안의 일평균 국내 원유 생산량이 전주 대비 20만배럴 증가한 1330만배럴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EIA 자료가 남아 있는 1984년 이래 최대치다.

상업용 원유 재고 증가분은 290만배럴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250만배럴)를 웃돌았다. 휘발유와 디젤 및 난방유 재고량도 각각 270만배럴, 150만배럴 늘어 시장 예상(각각 70만배럴)을 넘어섰다. 정제 설비 가동률 역시 92.4%로, 월가 예상치(90.4%)보다 높았다.

CIBC프라이빗웰스의 레베카 바빈 수석 에너지 트레이더는 “시황은 약하고 투자 심리가 좋지 않다”며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을 전망하는 약세론이 여전하다”고 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