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면 입으세요 '더플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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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한국신사 이헌의 스타일 인문학
뚝 떨어진 기온 탓에 웅크려지면서도 설레고, 귀찮은 줄 뻔히 알면서도 함박눈이 기다려지는 12월이다. 일년 열두 달 중 마지막 달, 12월의 절반쯤은 이렇게 효율보다는 낭만에 기대 조금 들뜬 채 설렘을 가득 품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필파워 만땅 올려둔 무조건 따듯하고 가볍고 편안한 거위털 패딩보다는 별로 따뜻하지도 않거니와 어쩌면 좀 무겁고 거추장스러우면서도 조금은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더플 코트가 이 비효율과 낭만의 계절에 안성 맞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혹독한 전장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는 생존을 위해 고안된 이 코트가 어쩌다 우리에게 낭만의 아이콘, 설렘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는지 그 과정을 알고 입는다면 더 즐겁고 보람된 멋 내기가 되지 않을까? 지금부터 더플코트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알아보자. 더플 코트(Duffle Coat)는 벨기에의 수도 엔트워프가 속한 넓은 지역의 작은 도시 더플(duffel)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도시는 15세기부터 주로 더플 백이라 불리는 커다란 가방을 만드는 거칠고 두꺼운 울 원단을 생산하던 도시로 이 원단이 유럽 전역에 널리 보급되었지만 이 원단이 코트 생산에 사용된 적도, 이 도시에서 더플 코트가 생산된 적도 없으므로 벨기에의 작은 도시 이름이 이 코트의 이름이 된 이유는 여전히 미궁이다. (물론 초기 더플 코트의 원단은 더플 타운이 생산하던 원단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오히려 지금의 더플 코트 형태에 영향을 미친 코트는 1820년에 개발돼 1850년 전후로 전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던 폴란드 군용 플록 코트의 디자인이다. 화려한 장식과 함께 로프와 토글(뿔 모양으로 뾰족하게 깍은 나무 단추) 잠금, 그리고 커다란 뒤집어 쓰는 모자가 달린 이 코트의 디자인을 기초로 단순하게 제작된 첫 더플 코트가 1850년 영국의 한 코트 업체를 통해 생산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1890년대 영국 해군에 대량 공급된다. 1차 대전 중에는 본격 군수품으로 황갈색 카멜 컬러로 제작 공급되었는데, 장갑을 끼고도 단추를 여밀 수 있고 각진 해군 모자를 쓰고도 훅 뒤집어 쓸 수 있던 큰 모자 덕분에 장병들의 인기를 얻어 2차 대전에는 전 해군에 공급되었고 양차 대전 내내 혁혁한 전공에 빛나는 더플 코트의 애용자, 장교 버나드 몽고메리의 이름을 따 몬티 코트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이렇게 군수품으로 개발된 싸고 튼튼한 코트는 전후에 민간인들 특히 학생들의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특히 영국군에 의한 승리로 자유를 얻은 나라에서는 더플 코트를 입는 일이 나치의 혹독한 박해로부터 자유의 획득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일로 받아들여지면서 더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전쟁의 잉여 군수품을 민간에 공급하던 글로브올이라는 한 영국 업체는 더 가벼운 소재와 몸에 더 잘 맞는 디자인 개발로 순수 민간 더플 코트를 생산 판매하면서 로프와 나무 단추를 가죽과 소뿔로 업그레이드했고 오늘날까지 더플 코트의 대표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더플코트가 절정의 인기를 얻은 것은 1950-60년 사이의 일이다.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프랑스 지성인 상징 장 콕토가 자신만의 하얀색 버전으로 대중을 이끄는 지식인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한편 파리 좌안의 자유주의자들이 부르주아와의 시각적 분리를 위해 싸고 튼튼한 더플 코트를 자주 활용하였다.
영국에선 핵 철폐를 주장하는 평화주의자들의 가두 행진 시위에 더플코트가 자주 목격되면서 자유와 평등 평화 같은 이미지를 가득 품게 된다. 또한 한없이 보듬어 주고 싶은 동화 캐릭터 곰돌이 패딩턴이 1958년 원작이 빛을 본 이래로 2014년 디지털 애니메이션 버전까지 일관되게 더플 코트를 입어왔다는 점은 특히 이 코트의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줬다. 패딩턴이 처음 대중에게 알려질 때 양차대전 후 어른이 된 전쟁고아들은 패딩턴에게 달려있던 가는 철사에 매달린 갈색 종이에 씌여진 ‘이 아이를 잘 돌봐주세요.’라는 인식표 같은 글귀를 보면서 양차 대전 후 전쟁의 상흔을 추억처럼 떠올렸고 이 파란색 더플 코트를 입은 갈 곳 없는 곰 한 마리는 큰 울림을 남기며 더플 코트의 포근하고 따사로운 이미지에 온기를 더했다. 성장한 전후 세대들에겐 전쟁에서 떠나 보낸 부모 대신 안아주던 더플코트의 포근함과 갈 곳없는 곰 패딩턴의 처지에 크게 감정이입을 했음이 분명하다.
한편, 대한민국을(아직도 개고기를 먹는) 미개국으로 지명한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연기력을 인정 받은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인 영화 ‘진실(1960)’에서 착용한 더플 코트는 이 코트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그 외에도 한국에선 '애정과 욕망 (Carnal Knowledge)'으로 알려진 영화 속에서 잭 니콜슨과 아트 가펑클이 비틀어진 애정과 욕망을 키우는 대학 시절 애용하던 코트로, 한 남자의 여성을 향한 우상화, 그리고 다른 남자의 여성 대상화를 대조적인 컬러의 두 개의 더플 코트로 표현하여 영화적 미장센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록음악 팬들에겐 1976년에 제작된 컬트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에서 데이비드 보위가 입고 나와 캐릭터의 표현에 활용한 변형된 더플 코트가 뇌리에 선명할 것이다. 하지만 이 숱한 서양의 더플 코트에 대한 기록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한층 더 따뜻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떡볶이 코트라는 별명과 함께 2002년 겨울연가에 등장한 배용준의 어린 시절, 준상이의 모습이 기억나시는지? 최대 28.8%라는 놀라운 시청율과 함께 대한민국에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새겨준 더플 코트, 욘사마와 지우히매라는 공전의 한류 현상을 유발한 최고의 작품에도 이렇게 더플 코트는 그 존재감을 아로새기고 있다.
승리와 평화, 그리고 위로와 추억의 더플 코트는 이렇게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안아주는 코트다. 앞으로 누구를 통해서 또 어떤 사회적 현상과 더불어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될까? 매서운 추위, 밖에는 함박눈이 내려도 더플 코트를 입을 용기를, 그리고 그 코트를 입고 누군가를 품어줄 위로의 마음도 함께 간직하면 좋겠다.
혹독한 전장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는 생존을 위해 고안된 이 코트가 어쩌다 우리에게 낭만의 아이콘, 설렘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는지 그 과정을 알고 입는다면 더 즐겁고 보람된 멋 내기가 되지 않을까? 지금부터 더플코트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알아보자. 더플 코트(Duffle Coat)는 벨기에의 수도 엔트워프가 속한 넓은 지역의 작은 도시 더플(duffel)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도시는 15세기부터 주로 더플 백이라 불리는 커다란 가방을 만드는 거칠고 두꺼운 울 원단을 생산하던 도시로 이 원단이 유럽 전역에 널리 보급되었지만 이 원단이 코트 생산에 사용된 적도, 이 도시에서 더플 코트가 생산된 적도 없으므로 벨기에의 작은 도시 이름이 이 코트의 이름이 된 이유는 여전히 미궁이다. (물론 초기 더플 코트의 원단은 더플 타운이 생산하던 원단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오히려 지금의 더플 코트 형태에 영향을 미친 코트는 1820년에 개발돼 1850년 전후로 전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던 폴란드 군용 플록 코트의 디자인이다. 화려한 장식과 함께 로프와 토글(뿔 모양으로 뾰족하게 깍은 나무 단추) 잠금, 그리고 커다란 뒤집어 쓰는 모자가 달린 이 코트의 디자인을 기초로 단순하게 제작된 첫 더플 코트가 1850년 영국의 한 코트 업체를 통해 생산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1890년대 영국 해군에 대량 공급된다. 1차 대전 중에는 본격 군수품으로 황갈색 카멜 컬러로 제작 공급되었는데, 장갑을 끼고도 단추를 여밀 수 있고 각진 해군 모자를 쓰고도 훅 뒤집어 쓸 수 있던 큰 모자 덕분에 장병들의 인기를 얻어 2차 대전에는 전 해군에 공급되었고 양차 대전 내내 혁혁한 전공에 빛나는 더플 코트의 애용자, 장교 버나드 몽고메리의 이름을 따 몬티 코트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이렇게 군수품으로 개발된 싸고 튼튼한 코트는 전후에 민간인들 특히 학생들의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특히 영국군에 의한 승리로 자유를 얻은 나라에서는 더플 코트를 입는 일이 나치의 혹독한 박해로부터 자유의 획득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일로 받아들여지면서 더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전쟁의 잉여 군수품을 민간에 공급하던 글로브올이라는 한 영국 업체는 더 가벼운 소재와 몸에 더 잘 맞는 디자인 개발로 순수 민간 더플 코트를 생산 판매하면서 로프와 나무 단추를 가죽과 소뿔로 업그레이드했고 오늘날까지 더플 코트의 대표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더플코트가 절정의 인기를 얻은 것은 1950-60년 사이의 일이다.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프랑스 지성인 상징 장 콕토가 자신만의 하얀색 버전으로 대중을 이끄는 지식인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한편 파리 좌안의 자유주의자들이 부르주아와의 시각적 분리를 위해 싸고 튼튼한 더플 코트를 자주 활용하였다.
영국에선 핵 철폐를 주장하는 평화주의자들의 가두 행진 시위에 더플코트가 자주 목격되면서 자유와 평등 평화 같은 이미지를 가득 품게 된다. 또한 한없이 보듬어 주고 싶은 동화 캐릭터 곰돌이 패딩턴이 1958년 원작이 빛을 본 이래로 2014년 디지털 애니메이션 버전까지 일관되게 더플 코트를 입어왔다는 점은 특히 이 코트의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줬다. 패딩턴이 처음 대중에게 알려질 때 양차대전 후 어른이 된 전쟁고아들은 패딩턴에게 달려있던 가는 철사에 매달린 갈색 종이에 씌여진 ‘이 아이를 잘 돌봐주세요.’라는 인식표 같은 글귀를 보면서 양차 대전 후 전쟁의 상흔을 추억처럼 떠올렸고 이 파란색 더플 코트를 입은 갈 곳 없는 곰 한 마리는 큰 울림을 남기며 더플 코트의 포근하고 따사로운 이미지에 온기를 더했다. 성장한 전후 세대들에겐 전쟁에서 떠나 보낸 부모 대신 안아주던 더플코트의 포근함과 갈 곳없는 곰 패딩턴의 처지에 크게 감정이입을 했음이 분명하다.
한편, 대한민국을(아직도 개고기를 먹는) 미개국으로 지명한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연기력을 인정 받은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인 영화 ‘진실(1960)’에서 착용한 더플 코트는 이 코트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그 외에도 한국에선 '애정과 욕망 (Carnal Knowledge)'으로 알려진 영화 속에서 잭 니콜슨과 아트 가펑클이 비틀어진 애정과 욕망을 키우는 대학 시절 애용하던 코트로, 한 남자의 여성을 향한 우상화, 그리고 다른 남자의 여성 대상화를 대조적인 컬러의 두 개의 더플 코트로 표현하여 영화적 미장센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록음악 팬들에겐 1976년에 제작된 컬트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에서 데이비드 보위가 입고 나와 캐릭터의 표현에 활용한 변형된 더플 코트가 뇌리에 선명할 것이다. 하지만 이 숱한 서양의 더플 코트에 대한 기록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한층 더 따뜻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떡볶이 코트라는 별명과 함께 2002년 겨울연가에 등장한 배용준의 어린 시절, 준상이의 모습이 기억나시는지? 최대 28.8%라는 놀라운 시청율과 함께 대한민국에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새겨준 더플 코트, 욘사마와 지우히매라는 공전의 한류 현상을 유발한 최고의 작품에도 이렇게 더플 코트는 그 존재감을 아로새기고 있다.
승리와 평화, 그리고 위로와 추억의 더플 코트는 이렇게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안아주는 코트다. 앞으로 누구를 통해서 또 어떤 사회적 현상과 더불어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될까? 매서운 추위, 밖에는 함박눈이 내려도 더플 코트를 입을 용기를, 그리고 그 코트를 입고 누군가를 품어줄 위로의 마음도 함께 간직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