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 박신양과 철학자 김동훈의 그림 이야기

화가로 변신한 배우 박신양, 제4의 벽을 그리다!

화가로 변신한 한국 대표 배우 박신양과 예술에서 철학적 가치를 읽어내는 인문학자 김동훈의 그림 이야기를 담은 『제4의 벽』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파리의 연인」의 로맨틱한 왕자님에서 「싸인」의 냉철한 법의학자까지 철저한 캐릭터 분석으로 유명한 배우 박신양이 러시아 유학 시절부터 화가가 되기까지 고통스럽고 솔직한 고백이 펼쳐진다.

“연기할 때 나는 내가 느끼는 만큼만 표현했다. 올곧고 정확하게. 그림을 그리는 마음도 그렇다. 나의 진심만큼만 전달되리라는 심정으로. 연기든 그림이든,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던져 넣었을 때 비로소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가닿는다고 믿는다.” ― 박신양

10여 년 동안 그려 온 그림 가운데 131점이 수록됐고, 예술과 박신양의 그림에 대한 인문학자 김동훈의 해설이 이어진다. 예술가는 누구인가?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림은 어떤 감동을 주는가? 우리는 왜 표현하고자 하는가?

“그림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그림이 주는 감동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 박신양

“그런 감동을 지닌다면 열등감에 시달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 김동훈
연극에서 무대와 관객석을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제4의 벽’이라고 한다. 벽이라는 ‘실재’가 ‘현실’에는 없고 ‘상상’ 속에만 있는데도 배우와 관객 모두가 마치 현실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벽이다. 그런데 박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제4의 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넘나들 때 또 다른 창조성이 나온다고 여긴다. 『제4의 벽』은 박신양 화가 개인의 예술철학에서 예술 일반을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까지 독특한 독서 경험을 체험하게 해 준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제4의 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상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 박신양

“박 작가에게 제4의 벽은 ‘실재의 벽’이다. 상상과 현실의 내용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도록 실재의 벽을 이동시킨다. 마치 이분화된 세상이 아닌, 다차원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 김동훈

화가의 진솔한 고백에 담긴 우리 모두의 여정 배우‐화가 박신양은 스크린 속의 캐릭터로 인식되는 연예인의 운명과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인간적인 본능 사이에서 결국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나간다. 예술가들은 무너져 가는 세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 실상을 목격하고자 유학을 핑계로 소련 붕괴 직후 혼란한 러시아로 떠났던 학창 시절, 수술을 받은 직후에도 진통제를 맞아 가며 촬영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힘겨운 배우 생활, 그리고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결국 예술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찾아 나가는 여정이 고통스러우리만치 솔직하고 담백하게 펼쳐진다.

“표현의 순간에는 매일 매 순간이 두렵고 막막하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단서가 아닐까? 아픔이라는 칼날은 우리의 무뎠던 인식을 예리하게 벼려 주기도 한다. 모든 시도에 주춤거리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자유를 허용하자.” ― 박신양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이게 그림이냐는 꾸중을 들은 후로 그림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트라우마, 어릴 적에 본 한 편의 영화에 감동을 받아 배우가 되기로 한 결심, 오고가는 대화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한동안 침묵하며 지냈던 학창 시절, 예술 작품에 대해 특별한 감동을 받지 못했을 때 느끼는 열등감 등은 모두 박신양 개인이 겪은 특별하고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누구나 한 번쯤 통과했던 보편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나 겪는 고통과 좌절, 모두가 느끼는 감동과 환희도 특별한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된다. 『제4의 벽』은 그 여정을 들여다보는 구체적인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작가는 언어와 표현이 궁핍한 이 시대에 저승을 향해 나아가는 제사장이다. 저승을 향한다는 것은 기존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저 세계를 표현한다는 의미일 것이며, 또한 미지의 운명으로 나아가는 희생양일 것이다.” ― 김동훈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 박신양과 철학자 김동훈의 그림 이야기

“통념의 역습!” 철학자가 읽어주는 박신양의 예술 세계

박신양은 화가의 자세 또한 배우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길뿐이다.” 박 작가는 누구나 작품을 보면 직감적으로 표현한 사람의 의도를 감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그림에는 당나귀가 자주 보인다. 그는 당나귀를 통해 “내 짐이 특별히 무겁거나 대단하다기보다는 세상의 모든 짐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가가 그 사람이다. 그 노력을 왜 하는가에 대해 어떤 생각과 관심을 가지는가가 그 사람이다. 그 관심에 대한 애정의 지속과 근거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진심을 쏟고 있는가가 그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가 품은 열정이 곧 그 사람이다.”
― 박신양

“온통 자기 치장과 허위와 거짓 마케팅이 판을 치는 시대에 작가의 이런 고집은 힘겨울 수 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도 막상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은 더 힘들 것이다. 이미 작가의 마음에는 자신의 숙명을 들쳐 메고 제 길을 가는 당나귀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 김동훈

인문학자 김동훈은 박신양의 작품에 대해, 구상과 추상의 융합으로 일반 회화의 규칙을 변형한 화가이자 연극 공연의 실재성을 회화에 도입한 도전적인 예술가로 평가한다. “형태의 재현에서 실재의 표현으로!” 화가 박신양에게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감각으로 포착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닌, 다른 새로운 방식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매번 나의 관습의 찌꺼기와 선입견과 나의 죽은 이미지를 해체하고 파괴한다.”고 말한다.

“생명력의 본질은 움직임에 있다. 형태든 선이든 색이든 면이든 모두 움직이고 생명에 가득 찬 춤을 춰야 한다. 나에게 정확성이란 오히려 눈의 현혹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더 뚜렷해진다.”
― 박신양

“그림 속 박 작가의 대상들은 한결같이 형태가 일그러졌다. 그런데 신기하다. 캔버스를 뚫고 나올 것 같은 어떤 박진감이 도사리고 있다.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 김동훈

저자 소개

박신양
배우이자 화가. 한 편의 영화에서 받은 감동에 이끌려 배우가 되었다. 동국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예술가들의 세계를 목격하고자 러시아로 떠났다. 고전적인 쉐프킨 연극대학교에 입학했다가 현대적인 슈킨 연극대학교로 옮겨서 연기를 연구했다. 러시아에서 또 한 편의 그림에 사로잡혀 감동의 힘을 깨달았다.

TV드라마 「파리의 연인」, 「쩐의 전쟁」, 「바람의 화원」, 「싸인」, 「동네 변호사 조들호」, 영화 「편지」, 「약속」, 「범죄의 재구성」, 「박수건달」 등에서 주인공을 맡으면서 한국 대표 배우가 되었다. 예술에 대한 갈망으로 미술과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2009년부터 ‘박신양FUN장학회’를 시작해서 예비 예술가들을 응원하고 있다. 한중 교류전 「평화의 섬 제주, 아트의 섬이 되다」(2017년), 서울아트쇼(2021년), 스타트아트페어(2022년), mM아트센터 「제4의 벽」(2023년) 등에서 전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의 진심에 가닿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기에 몰두했듯이, 그렇게 같은 바람으로 그림을 그린다. 사람들의 눈에 닿고 영혼에 가닿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연결되기를 바라면서.”

김동훈
서양고전학자이자 철학자,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humanity value.com) 대표. 특히 일상과 예술에서 인문적 가치를 읽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경제신문 아르떼》(arte.co.kr)에서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을 연재한다. 서울대학교 서양고전학과에서 희랍과 로마 문학 및 수사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고대철학을 연구했다. 대학에서 희랍어와 라틴어를 가르쳤고,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서양고전 원강을, EBS ‘클래스e’에서 「고전 어휘 사전」을 강의했다. 《경향신문》에 「물질인문학」, 《중앙SUNDAY》에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를 연재했다. 『리더의 언어사전: 인문학이 경영에 대해 가르쳐주는 25가지 키워드』, 『인공지능과 흙: 상상을 현실화하는 인문적 감각을 키우기 위하여』, 『브랜드 인문학: 잠재된 표현 욕망을 깨우는 감각 수업』, 『별별명언: 서양 고전을 관통하는 21개 핵심 사유』, 『키워드 필로소피: 크네에서 에로스까지, 오늘을 읽는 고전 철학 뿌리어』 등을 썼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철학자가 번역한 고대 희랍어 원전 완역본』, 『욥의 노래: 「욥기」 원전 번역』 등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