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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태양광발전소 사업에 실패한 한국전력공사가 담당 직원들을 징계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한전이 이들을 징계하기 위해 '업무상 배임'을 적용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업무상 문제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고의로 이득을 취하려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한전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 감봉에 대한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달 9일 최근 원고 패소 판결(2021구합82762)을 내렸다. 이 재판부는 한전이 같은 쟁점으로 제기한 별도 소송에서도 올 10월 원고 패소 판결(2021구합79810)을 내렸다.
야심 찬 美 진출 … 실패하자 징계 나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열을 올리던 한전은 2015년 10월 북미 지역을 대상으로 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해외 진출에 나섰다. 한전은 북미 TF로 각종 풍력 사업과 영국 태양광 사업 등을 검토했지만 실제로 수주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2017년 4월 한전은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 그룹의 자회사 코젠트릭스솔라홀딩스로부터 콜로라도의 30MW 규모의 알라모사 태양광 발전소를 인수했다.
사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한전은 25년 동안 2억3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한 해 평균 120만 달러 배당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설비 결함 등 문제로 발전량은 당초 계획의 80~88%에 그쳤다. 2017년 4.7%에 달했던 수익률도 이듬해 0.7%로 급감했다. 결국 한전은 2020년 7월 발전소 사업을 청산했고, 투자금 200억여원을 날렸다. 한전은 사업 실패의 원인이 북미 TF가 사업성을 부실하게 검토한 탓이라고 봤다. 회사는 2020년 2월 TF의 차장급 직원 A씨 등 2명에게 회사 내규상 '업무상 배임'을 사유로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부품 불량·발전량 미달 등 주요 리스크를 알고도 의도적으로 보고하지 않거나 왜곡했다는 것이다. 업무상 배임이란 직원이 직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하고 회사에 재산상 이익을 손해를 입히는 것을 말한다.
A씨 등은 반발해 이듬해 2월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지만 기각당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중앙노동위원회가 "징계사유는 인정되지만 업무상 배임으로 볼 수는 없다"며 "징계 시효가 이미 지났으므로 징계할 수 없다"는 판정을 내리며 상황이 급변했다. 한전은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업무상 배임 아냐 … 징계 취소해야”
사건의 핵심 쟁점은 북미 TF가 한전이 주장하는 업무상 배임 행위를 저질렀는지였다. 한전 규정상 업무상 배임의 징계 시효는 5년이지만, 일반 징계 시효는 3년이다. 북미 TF가 한전 이사회에 사업에 대해 보고한 시점은 2016년 7월이었고, 한전이 징계를 내린 것은 2020년 2월이었다. 업무상 배임이 아니라면 한전이 이들을 징계할 권리는 사라진 셈이다. 법원은 중노위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법원도 북미 TF의 업무가 부실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북미 TF는 발전소의 운영 및 설비 현황, 발전량 분석, 리스크 등을 구체적으로 보고해 최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하도록 조력할 의무가 있다"며 "TF는 일사량 예측값을 허위로 기재하고, 현장 실사도 2시간 정도 발전소를 돌아보는 데 그치는 등 한전이 올바른 경영판단을 하는데 방해했다"고 했다. 징계사유로는 충분하다는 의미다. 다만 업무상 배임이 적용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법원은 직원들이 업무 과정에서 사적을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발전소 인수로 A씨 등이 유공포상을 받은 것 외에는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전의 징계는 발전소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성격도 있어 업무상 배임의 정의와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한전이 직원들을 배임으로 고소하지도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한전은 북미 TF의 팀장을 맡았던 B씨에 대해서도 A씨와 같은 사유로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렸지만 지난 10월 패소했다. 재판부는 B씨 역시 업무상 배임이 적용되지 않아 징계시효가 지났다고 봤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