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가 스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모든 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돼 관객은 그의 공연장에 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카모토가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인 지난해 9월 8∼15일 촬영한 영상이다.
당시 암 투병 중이던 그는 전 세계인에게 작별을 고하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곡이 '오퍼스'다.
이 곡이 연주되는 동안 갑자기 사카모토는 온데간데없고 음악만 남는 장면이 나온다.
죽음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한 이 장면을 본 사카모토의 반응은 어땠을까.
"(사카모토는) 영화를 보고 나서 기뻐 보였어요.
엔딩을 봤을 땐 '나 아직 안 죽었어'라며 쓴웃음을 지었지만요.
"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연출한 소라 네오 감독은 최근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사카모토가 연주한 장소는 그가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는 공영방송 NHK 509 스튜디오다.
제작진은 카메라 3대와 다양한 조명으로 빛과 어둠을 만들어내고, 이를 흑백 화면에 담았다.
소라 감독은 흑백으로 연출한 데 대해 "(컬러에 비해) 시각 정보를 줄임으로써 (관객들이) 음악과 소리에 보다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아노의 색이 흑과 백이므로 영상을 모노크롬(단색)으로 만들어 피아노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일체화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카메라는 고정된 채 사카모토와 피아노를 비추거나 천천히 이동하면서 그의 얼굴과 손을 보여준다.
조명이 빚어낸 음영으로 사카모토의 잔주름과 손의 혈관까지 관객의 눈에 들어온다.
소라 감독은 "연주자의 신체와 물질성에 초점을 맞췄다"며 "카메라 기법과 조명, 모노크롬 촬영의 대부분은 그걸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영화 속 사카모토는 백발에 마른 몸, 뿔테 안경을 낀 모습이다.
일흔의 나이지만, 연주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청년 같은 느낌을 준다.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에서도 힘이 느껴진다.
사카모토는 "다시 합시다" 등 짤막한 몇 마디 외엔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음악과 영상으로 모든 걸 보여주려는 소라 감독의 연출 의도가 느껴진다.
관객은 사카모토의 생전 마지막 연주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지금 하늘나라에서 연주하는 걸 보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사카모토의 연주를 들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소라 감독은 2020년 단편영화 '더 치킨'으로 로카르노영화제와 뉴욕영화제에 초청돼 주목받았고, 지난해엔 단편 '슈가 글래스 보틀'로 인디 멤피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지금은 장편 '대지진'을 준비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베니스국제영화제, 뉴욕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