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이 된 지하실, 자동차가 된 재봉틀
계단을 따라 내려간 지하실은 바닥에 물이 차 있다. 이곳에는 물고기들이 살고 아이 하나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듯 그물망을 어깨에 메고 서 있다. 상상 속에서 그려볼 만한 장면 같지만 사실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박기일 작가가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내 캔버스 위에 옮겼다. 어린 시절 겪은 홍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장소 없는 장소’ 전시회에서는 박기일 작가의 거짓말 같은 추억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그가 2018년 이후 5년 만에 선보인 개인전으로, 30여 점의 그림이 걸렸다.

‘장소 없는 장소’라는 전시 제목처럼 박 작가가 내놓은 작품 속의 배경은 이미 사라져버렸거나 기억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곳들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첫 작업으로 그린 ‘해바라기’도 옛날에 사라진 동네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그는 해바라기 옆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토끼 캐릭터와 비슷한 인물을 그려넣으며 마치 옛이야기로 관객을 안내하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작품 ‘미싱 라이더’(그림) 속 소년은 미싱기에 앉아 사막을 풍경으로 헬멧을 쓰고 질주하고 있다. 이 소년은 작가 박기일 자기 자신이다. 어린 시절 오래된 미싱기를 가지고 혼자 놀던 추억에 상상을 섞어 담아냈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