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K 시험은 어불성설"…'블루칼라' 외국인 근로자들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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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KIIP나 TOPIK 급수 요구
KIIP는 빈 자리 없고
TOPIK은 금전적 부담
"제 3의 평가잣대 만들어야" 의견도
KIIP는 빈 자리 없고
TOPIK은 금전적 부담
"제 3의 평가잣대 만들어야" 의견도
지난 8일 경기 수원 영통동의 샤인한국어학교. 34개국 90여명의 학생이 8개 교실에서 한국어 문법과 말하기를 배우고 있었다. 학교는 2010년부터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에게 매주 토요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학생 대다수는 원어민 강사나 유학생, 회사원. 무료로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 등 이른바 ‘블루칼라’ 들은 볼 수 없었다. 한승훈 원장은 “한국어에 관심 있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면서도 “생산직에 종사하는 외국인의 발길은 뜸하다”고 했다.
외국인 근로자 규모가 해마다 늘고 있지만 이들이 여전히 한국어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에게 사회통합프로그램(KIIP)이나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 아닌 제3의 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국내 외국인들을 △유학생 △결혼이민자 △원어민 강사 △외국인 근로자(화이트칼라) △외국인 근로자(블루칼라) 등 크게 다섯 종류로 구분한다. 이들 가운데 유학생과 결혼이민자는 각각 대학교 어학당이나 전담 복지센터가 갖춰져 있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비교적 쉽다. 학교나 가정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히는 부분도 크다.
삼성·LG 등 대기업에 다니는 ‘화이트칼라’ 외국인 근로자들은 사내 한국어 강의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비교적 연봉이 높다 보니 사설학원에 갈 수도 있다. 원어민으로 한국을 찾은 이들은 생활의 편의를 위해 한국어 수업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들과 사정이 다르다. 한국어 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한 달에 50만원 수준의 강의료를 감당하기 벅차다. 근무 특성상 평일에 고강도 노동을 하고 주말이나 야간에 공부할 여력이 없다. 교육 현장에선 “외국인 근로자에게 ‘주경야독’은 꿈같은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학습 능력도 현실적인 한계로 지적된다. 근로자 대다수가 언어는 물론 기본적인 학습을 멀리했던 이들인 터라 배움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일주일에 3~4시간으로는 제대로 된 공부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장기체류를 할 수 있는 숙련기능인력 제도(E-7-4) 쿼터를 3만5000명으로 확대했다. 그러면서 KIIP를 2단계 이상 이수하거나 한국어능력시험(TOPIK) 2급 이상 획득할 것을 요건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둘 다 자격요건을 채우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외국인 근로자 입장에서 KIIP는 교육을 이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예산과 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KIIP 0~5단계 가운데 학기당 한두 단계만 열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업 참여 신청을 모두 받지 못해 대기자까지 생기는 실정이다. KIIP 운영 기관들은 “강의를 더 열어줄 수 있느냐”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기도 한다.
TOPIK 시험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근로 현장에서 구어체로 습득한 한국어와 시험 문제로 맞닥뜨리는 문어체는 격차가 커서다. 성평등 같은 사회적 이슈를 지문으로 출제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육체노동의 일선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알기에 거리가 있는 지적도 있다.
KIIP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 김모 씨는 “TOPIK은 문법이나 지문 해석 위주로 한국어 능력을 평가하는 반면 KIIP에선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수업한다”며 “비용 차이뿐 아니라 학습 내용의 차이도 있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선 TOPIK을 어려워 한다”고 설명했다.
한 원장은 “한국어교육학과나 국어국문학과의 교수 또는 석박사들이 출제하는 TOPIK 시험 문제는 현장과의 괴리가 크다”며 “마치 체육대학 입시생에게 수학 미적분 실력으로 입학 여부를 가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왕 한국 사회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차라리 근로 능력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다. 샤인한국어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토모에다 사토시 씨(48)는 2018년 삼성디스플레이로 이직한 뒤 최근 TOPIK 시험에서 가장 높은 6급을 취득했다. 그는 “근무하면서 가장 필요한 역량이 ‘말하기’다”며 “한국엔 이를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기관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원어민 선생님으로 2013년에 한국에 처음 들어온 조셉 반 돈 씨(34)도 “사설학원은 강의료가 지나치게 비싸고, KIIP같은 다른 교육프로그램은 수강생 수도 많다 보니 한국어를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고 아쉬워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2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국내 외국인들을 △유학생 △결혼이민자 △원어민 강사 △외국인 근로자(화이트칼라) △외국인 근로자(블루칼라) 등 크게 다섯 종류로 구분한다. 이들 가운데 유학생과 결혼이민자는 각각 대학교 어학당이나 전담 복지센터가 갖춰져 있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비교적 쉽다. 학교나 가정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히는 부분도 크다.
삼성·LG 등 대기업에 다니는 ‘화이트칼라’ 외국인 근로자들은 사내 한국어 강의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비교적 연봉이 높다 보니 사설학원에 갈 수도 있다. 원어민으로 한국을 찾은 이들은 생활의 편의를 위해 한국어 수업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들과 사정이 다르다. 한국어 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한 달에 50만원 수준의 강의료를 감당하기 벅차다. 근무 특성상 평일에 고강도 노동을 하고 주말이나 야간에 공부할 여력이 없다. 교육 현장에선 “외국인 근로자에게 ‘주경야독’은 꿈같은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학습 능력도 현실적인 한계로 지적된다. 근로자 대다수가 언어는 물론 기본적인 학습을 멀리했던 이들인 터라 배움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일주일에 3~4시간으로는 제대로 된 공부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장기체류를 할 수 있는 숙련기능인력 제도(E-7-4) 쿼터를 3만5000명으로 확대했다. 그러면서 KIIP를 2단계 이상 이수하거나 한국어능력시험(TOPIK) 2급 이상 획득할 것을 요건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둘 다 자격요건을 채우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외국인 근로자 입장에서 KIIP는 교육을 이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예산과 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KIIP 0~5단계 가운데 학기당 한두 단계만 열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업 참여 신청을 모두 받지 못해 대기자까지 생기는 실정이다. KIIP 운영 기관들은 “강의를 더 열어줄 수 있느냐”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기도 한다.
TOPIK 시험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근로 현장에서 구어체로 습득한 한국어와 시험 문제로 맞닥뜨리는 문어체는 격차가 커서다. 성평등 같은 사회적 이슈를 지문으로 출제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육체노동의 일선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알기에 거리가 있는 지적도 있다.
KIIP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 김모 씨는 “TOPIK은 문법이나 지문 해석 위주로 한국어 능력을 평가하는 반면 KIIP에선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수업한다”며 “비용 차이뿐 아니라 학습 내용의 차이도 있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선 TOPIK을 어려워 한다”고 설명했다.
한 원장은 “한국어교육학과나 국어국문학과의 교수 또는 석박사들이 출제하는 TOPIK 시험 문제는 현장과의 괴리가 크다”며 “마치 체육대학 입시생에게 수학 미적분 실력으로 입학 여부를 가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왕 한국 사회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차라리 근로 능력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다. 샤인한국어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토모에다 사토시 씨(48)는 2018년 삼성디스플레이로 이직한 뒤 최근 TOPIK 시험에서 가장 높은 6급을 취득했다. 그는 “근무하면서 가장 필요한 역량이 ‘말하기’다”며 “한국엔 이를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기관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원어민 선생님으로 2013년에 한국에 처음 들어온 조셉 반 돈 씨(34)도 “사설학원은 강의료가 지나치게 비싸고, KIIP같은 다른 교육프로그램은 수강생 수도 많다 보니 한국어를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고 아쉬워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