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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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40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1주 연장근로 한도(12시간)를 계산하고 처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하루 근무시간에 상관없이 1주 총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기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다. 노동계는 즉각 1일 최대 21.5시간의 근로가 가능해졌다며 법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정부의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이 힘을 받게 됐다며 반색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양측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1주 48시간 근로시킨 사업주, 형사 처벌이 맞나...고민 묻어났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에서 주12시간의 '연장근로'를 지켰는지 여부를 따지는 산정 방식을 최초로 제시했다.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제1항),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제2항)고 규정했다. 또 제53조 제1항은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한 자는 형사처벌까지 하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근로기준법 56조는 "1일 8시간을 초과하거나 1주 40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한 임금을 지급하라"고 정했다.

고용부도 2018년 ‘개정 근로기준법 설명자료’를 통해 해석을 덧붙였다. '1일 8시간을 초과한…연장근로'라는 근로기준법 56조 등을 근거 삼아, 하루 8시간을 넘겨 일한 시간은 '연장근로'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즉 실제로 1주일간 근로시간이 총 52시간을 넘겼는지는 묻지 않고, 하루 8시간을 초과해 일한 '연장근로 시간' 일주일치를 합쳐서 '주 12시간'을 넘기면 근로기준법 53조 1항 위반으로 형사 처벌 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고용부의 해석에 대해 대법원은 주 52시간을 넘겨 일을 시키지도 않은 사업주를 형사 처벌하는 게 맞는지를 두고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하루 12시간(8시간+4시간)씩 주 4일만 근무시키는 경우, 1주 총근로시간은 48시간으로 5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연장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을 초과한 4시간씩 4일, 1주 총 16시간이다. 고용부의 기존 해석대로라면 이는 53조1항에서 정한 '연장근로 주12시간'을 넘겨 형사처벌 대상이다.

1주 48시간 일시켰는데 '주52시간제' 위반?…대법원의 고민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형사처벌 규정을 둔 입법자의 입법 의도와 법문의 구조를 두고 3년간 고민을 거듭한 끝에, 대법원은 결국 1주 총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기지 않았다면 '범죄'로는 규율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형사처벌 여부는 형법상 죄형법정주의와도 연결되므로, 그 구성요건 해석에 더욱 엄격해야 한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제53조 1항은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를 '1주'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을 뿐, '1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며 하루 8시간을 초과한 근로시간을 전부 더해 12시간의 제한을 거는 방식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1주 총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기지 않은 사업주는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대법원, 연장근로수당 계산 방식은 '그대로' 유지

대법원의 해석에 대해선 노동계가 "하루 21.5시간의 밤샘 근로나 몰아서 일시키기가 가능해진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근로기준법 56조에 따라 1일 8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해석을 그대로 유지한 점을 감안하면 다소 과한 우려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법원은 이번 연장근로 시간 산정 방식은 사업주의 '처벌'의 기준을 제시한 것뿐이며, 수당 산정 방식은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은…1주간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 그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며 "'가산임금 지급 대상인 연장 근로'와 '1주간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 근로'의 판단 기준이 동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이번 대법 판결에 따라도 하루 8시간을 넘긴 근로에 대해서는 당연히 연장근로 수당이 붙게 된다. 만약 하루 21.5시간의 근로를 몰아서 한다면, 8시간을 제외한 13.5시간에 대해선 '연장근로 수당'이 붙는 것은 물론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시간대 근로에 대해서는 야간근로수당까지 붙어 2배의 인건비 부담을 지게 된다.

교대제 등이 있는데 굳이 하루, 이틀 근로를 위해 높은 시급 부담을 지면서까지 밤샘 근로를 일부러 시킬 사업장이 얼마나 되겠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연장 근로는 근로자와 사측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밤샘근로가 속출할 것이라는 지적은 다소 과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고용부 행정해석이 바뀌면서 현장 혼란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길채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노사가 신뢰하고 당연하게 적용해 왔던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과 배치된 대법원 설시로 산업현장에 혼란 등이 예상된다"며 "근로기준법 개정 등 입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과거 정기상여금, 연차수당 등과 관련한 사례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지침 변경을 한 바 있다. 결국 추가적인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번 판결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 등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준다는 분석도 '견강부회'라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시간 개편안은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1개월 이상으로 설정하고, 특정 주에 52시간을 '넘겨' 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특정 주의 '통상 근로'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연장근로 수당이 깎이는 불이익도 발생할 수 있었다. 이번 대법 판결은 특정 주의 근로시간이 늘어나거나, 연장근로의 개념이 축소돼 수당이 줄어들어 근로자가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조상욱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1주 소정 근로시간이 40시간 미만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통상적인 주 40시간 소정 근로를 하는 근로자에게는 큰 영향이 없으며 1일 8시간 초과 근로에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되는 것도 여전하다"며 "죄형법정주의에 근거한 해석을 제시한 것일 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