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 의지할 곳 필요해 서로를 찾는 범죄 피해자들
"피해자가 언론 앞에 나서지 않게 해달라" 절절한 호소

[※ 편집자주 = 올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판결이 났습니다.

지난해 5월 부산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가해자에게 대법원은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기까지 피해자는 범죄 피해를 회복하기도 전 스스로 사건을 파헤쳐야 했고, 언론의 앞에 서서 피해를 공개하는 또 다른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피해자는 자신이 이렇게밖에 할 수 없게 만든 기존의 수사와 재판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연합뉴스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두편에 걸쳐 전달합니다.

]
[미완의 돌려차기 사건](상) 송두리째 바뀐 피해자의 삶
박성제 차근호 = "다른 피해자들을 도우라고 하늘이 저를 이렇게 기적적으로 회복시켰나 봐요.

"
지난해 5월 부산에서 발생한 이른바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인 A씨는 현재 다른 범죄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공감하고 위로하는 일을 하고 있다.

A씨는 대표적으로 '부산 초량동 주점 여주인 폭행 사건', '인천 논현동 스토킹 살인 사건', '인천 강화도 유기 사건'의 피해자와 유족을 만났다.

A씨는 이들의 재판을 함께 방청하며 다른 피해자들에게 힘이 돼 준다.

[미완의 돌려차기 사건](상) 송두리째 바뀐 피해자의 삶
피해자로서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사건을 공론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한다.

범죄 피해자로서 끔찍했던 삶을 글로 적어 SNS(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최근에는 이를 엮어 출판도 준비하고 있다.

범행으로 영구 손상이 예상되던 다리가 완전히 회복한 것을 두고 '기적'이라고 표현한 의사의 말을 빌려 '기저귀'라는 필명도 지었다.

[미완의 돌려차기 사건](상) 송두리째 바뀐 피해자의 삶
피해자들은 대부분 A씨가 올린 글을 보고 먼저 연락해온다.

A씨는 "처음에는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척 연락해 오는 경우도 있다.

'응원합니다'로 이야기를 꺼냈다가 나중에는 '제가 범죄 피해자인데요'라며 말한다"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분도 있고 그냥 하염없이 털어놓고 싶어서 연락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미완의 돌려차기 사건](상) 송두리째 바뀐 피해자의 삶
피해자들은 위로받고 의지할 곳을 찾아 서로 뭉친다.

A씨는 "많은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며 무언가에 답답함을 느낀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증상도 잦다"며 "자신이 이러한 증상을 겪는 것에 비해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멀쩡하게 생활하는 것을 괴로워한다.

그럴 때마다 '당연하다'고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라고 밝혔다.

그동안 A씨가 직접 만난 피해자는 벌써 50명이 넘었다.

인터넷상에서 소통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미완의 돌려차기 사건](상) 송두리째 바뀐 피해자의 삶
다른 피해자들은 A씨가 사건을 어떻게 공론화했는지 궁금해한다.

여기에는 마케팅을 전공한 A씨의 배경과 사건 자료를 매일 들고 다니며 꼼꼼히 분석하고 기록한 A씨의 끈질김 등이 있다.

A씨는 이 중에서도 '운'의 요소가 가장 컸다고 이야기한다.

A씨는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는 재범률이 높은 범죄자였고, 그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 드러나는 반성문이 존재했다"며 "여기에 엽기적 범죄 형태를 담은 폐쇄회로(CC)TV가 남아 있었으며, 성범죄나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컸다.

이 모든 요소가 우연히 겹친 결과"라고 전했다.

[미완의 돌려차기 사건](상) 송두리째 바뀐 피해자의 삶
이러한 조건 속 공론화를 시작한 A씨였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어려웠다고 한다.

A씨는 "다들 '왜 하냐', '새 인생 살아라', '잊고 살아라'고 말했고, 처음에는 공론화를 지지하던 분들도 시간이 지나자 '집착 아니냐'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초반에는 기사에 악플만 달려 힘들기도 했는데, 공론화로 사건 내용 전반을 알게 된 이들이 응원 댓글을 많이 써줬다"며 "그때부터는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구나'라는 걸 느꼈고 사람들을 무서워하던 증상도 급속도로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미완의 돌려차기 사건](상) 송두리째 바뀐 피해자의 삶
그는 사건의 공론화로 혜택을 받기도 했지만 "더 이상 피해자가 언론을 찾지 않게 해달라"며 사법 당국에 지속해 호소하고 있다.

A씨는 "피해자들이 오죽하면 모르는 사람한테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겠나.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 '내가 이렇게 불쌍해요'라고 말하면 스스로가 매우 비참해진다"며 "사법 당국이 의문점을 남기지 않고 제대로 수사하며 피해자를 수사에 참여시키고, 범죄자에 적절한 형량을 선고한다면 피해자들이 왜 언론 앞에 나서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자신의 사건과 관련해 수사기관의 부실한 조사 매뉴얼 개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낼 계획이다.

A씨는 "돌려차기 사건의 CCTV 속 '사라진 7분'을 찾기 위해 2심 재판에 내가 적극 개입해서야 가해자의 성범죄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이 사건처럼 사건 조사에 공백이 생길 경우, 수사기관이 의문이 남지 않게 모든 부분을 조사하도록 하는 매뉴얼 개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