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즐기는 열대우림 남인도의 유물 전시회 '스투파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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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
국내 최초 남인도미술 소개
기획전시실서 4월 14일까지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
국내 최초 남인도미술 소개
기획전시실서 4월 14일까지
날씨가 다르면 미술도 달라진다. 해가 짧고 기온이 낮은 나라에서는 어두운 색조의 추상적인 미술이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 집안에서 생각할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따뜻하고 햇살 좋은 풍요로운 지역에서는 정교하고 화사한 미술이 탄생한다. 일년 내내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려 먹을 게 풍족하고 생명력이 가득한 땅, 남인도 지역의 미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는 국내에서 최초로 2000년 전 남인도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다. 세계 최고 박물관 중 하나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지난 11월 폐막한 전시를 바로 가져왔다. 인도 12개 기관과 영국·독일·미국 등 18개 기관의 ‘명품’ 97점이 나왔고, 이 중엔 발굴된 후 한 번도 인도 밖으로 나간 적 없던 유물도 많다. 전시관은 ‘명당’으로 이름난 기획전시실. 가장 최근에 열린 ‘합스부르크 600년전’과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두 전시만으로 도합 70만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을 끌어모은 곳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국내 관객들의 인지도가 낮은 데다, 북인도와 달리 한국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남인도 미술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렇게나 ‘밀어 준’ 이유가 뭘까.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국내 관람객들의 수준이 확 높아진 걸 감안했다”고 답했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이때까지 해외 미술품이나 유물을 소개하는 국내 전시 대부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명작’이거나 ‘한국 역사와 관련이 있는 유물’이었다. 그래야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국내 관객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류승진 학예연구사는 “전시에 나온 작품들이 낯설어도 새로운 문화와 예술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며 “국립중앙박물관도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아즈텍 전시, 메소포타미아 전시 등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를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인 ‘스투파’의 뜻은 불교에서 부처나 고승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절반 이상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무렵 남인도에 세워진 스투파 관련 조각이다. 전시장은 열대 기후를 상징하는 짙은 초록색으로 꾸며져 있고, 열대우림에서 들을 수 있는 새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남인도의 열대 우림 속을 거닐며 스투파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불교 신자라면 더욱 심도 깊게 즐길 수 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를 믿지 않아도 피라미드의 장엄함과 이집트 유물의 신비를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풍요로웠던 남인도의 사회상이 드러나는 유물들도 재미있다.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나무와 대지에 깃든 신)이 대표적이다. 류 학예연구사는 “자동현금입출기(ATM) 약샤라고 부르는 관객들도 있다”며 웃었다. 교역을 통해 로마에서 수입한 포세이돈 조각상, 정교한 금제 귀걸이, 불교 후원자의 초상을 돌에 새긴 작품 등을 주목할 만하다. 전시 후반부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나와 있다. 북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불교미술과 다른 활기찬 아름다움과 유쾌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추운 겨울, 열대우림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어 기분전환하기 좋은 ‘웰메이드 전시’다. 유료 전시지만, 2024학년도 대입학력고사 수험생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4월 14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는 국내에서 최초로 2000년 전 남인도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다. 세계 최고 박물관 중 하나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지난 11월 폐막한 전시를 바로 가져왔다. 인도 12개 기관과 영국·독일·미국 등 18개 기관의 ‘명품’ 97점이 나왔고, 이 중엔 발굴된 후 한 번도 인도 밖으로 나간 적 없던 유물도 많다. 전시관은 ‘명당’으로 이름난 기획전시실. 가장 최근에 열린 ‘합스부르크 600년전’과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두 전시만으로 도합 70만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을 끌어모은 곳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국내 관객들의 인지도가 낮은 데다, 북인도와 달리 한국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남인도 미술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렇게나 ‘밀어 준’ 이유가 뭘까.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국내 관람객들의 수준이 확 높아진 걸 감안했다”고 답했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이때까지 해외 미술품이나 유물을 소개하는 국내 전시 대부분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명작’이거나 ‘한국 역사와 관련이 있는 유물’이었다. 그래야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국내 관객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류승진 학예연구사는 “전시에 나온 작품들이 낯설어도 새로운 문화와 예술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며 “국립중앙박물관도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아즈텍 전시, 메소포타미아 전시 등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를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인 ‘스투파’의 뜻은 불교에서 부처나 고승의 사리를 안치하는 탑.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절반 이상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무렵 남인도에 세워진 스투파 관련 조각이다. 전시장은 열대 기후를 상징하는 짙은 초록색으로 꾸며져 있고, 열대우림에서 들을 수 있는 새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남인도의 열대 우림 속을 거닐며 스투파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불교 신자라면 더욱 심도 깊게 즐길 수 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를 믿지 않아도 피라미드의 장엄함과 이집트 유물의 신비를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풍요로웠던 남인도의 사회상이 드러나는 유물들도 재미있다. 동전을 쏟아내는 연꽃 모자를 쓴 ‘약샤’(나무와 대지에 깃든 신)이 대표적이다. 류 학예연구사는 “자동현금입출기(ATM) 약샤라고 부르는 관객들도 있다”며 웃었다. 교역을 통해 로마에서 수입한 포세이돈 조각상, 정교한 금제 귀걸이, 불교 후원자의 초상을 돌에 새긴 작품 등을 주목할 만하다. 전시 후반부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나와 있다. 북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불교미술과 다른 활기찬 아름다움과 유쾌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추운 겨울, 열대우림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어 기분전환하기 좋은 ‘웰메이드 전시’다. 유료 전시지만, 2024학년도 대입학력고사 수험생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4월 14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