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의 아름다움을 완성시키는 느림의 미학, '아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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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단비의 발레의 열두 달
전보(電報, telegraphy)가 사라졌다. 태어난 지 138년 만이다.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도, 자녀를 낳았다는 소식도, 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도, 사람들은 전보의 몇 자를 놓고 울고 웃었다.
한때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했던 전보가 세월의 흐름에 속도를 잃어버리고, 5세대 이동통신 5G가 땅을 접고 시간을 접는 축지법의 마술을 부리는 시대. 빠른 것은 아름다운가. 느린 것은 시대의 뒷전인가.
돌아보면 발레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데는 빠르고 강렬한 움직임 못지 않게 느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아다주'(adage) 또는 '아다지오'(adagio)가 중요하다. 프랑스어로는 아다주, 이탈리아어로는 아다지오라고 부르는데 음악에서도 느린 템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발레는 다른 어떤 춤보다 몸의 가용범위를 극한으로 확장시켜 사용하기 때문에 곡예에 가까운 기술들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발레의 기술과 필요한 근육, 유연성의 정점이 빛을 발하는 건 빠르게 돌고 뛰고 나는 동작이 아니라 느리게 움직이는 아다지오에서다.
천천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나의 힘으로 몸과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지, 음악의 박자와 흐름과도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있는지. 아다지오를 출 때 훈련의 세월은 물론 이런 뮤지컬러티(musicality), 즉 음악성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점 때문에 발레 클래스 중 바 훈련 이후 진행하는 센터 클래스에서는 아다지오를 제일 먼저 한다. 다리를 데벨로페해서 들 때도 높이보다는 얼마나 천천히 들어 올리고 얼마나 그 상태로 잘 버티느냐는 중요하다. 아라베스크나 에티튜드 상태로 돌 때도 얼마나 천천히 흔들림 없이 돌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음악 안에서 내 뜻대로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 나의 움직임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악보에 적힌 음표의 물리적 길이가 아니라 나만의 음악적 길이를 만드는 것이다. 즉, 음악과 대화해야 한다. 아다지오는 ‘높게’보다 ‘오래’, '빠르게'보다 '정확하게'가 더 중요하고, 이런 부분이 움직임의 근원적인 힘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발레가 갖고 있는 낭만과 신비로운 이미지는 아다지오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다지오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자태 덕분이다. 남녀 주역 무용수가 선보이는 2인무 그랑 파드되에서 아다지오가 반드시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다지오의 느린 선율과 움직임 안에는 비애, 행복, 낭만, 행복, 외로움, 다양한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아다지오를 추는 모습을 통해 무용수의 기량과 음악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콩쿠르에도 종종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레이몬다(Raymonda, 1898)'의 아다지오이다. 발레 '레이몬다'는 십자군 전쟁에 나간 기사 장 드 브리앙과 약혼녀 레이몬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이 꿈속에서 만나는 1막의 장면이 유명한데 둘이 함께 춤을 추다가 이어서 레이몬다가 솔로 춤을 선보인다. 이 독무는 레이몬다 아다지오 혹은 드림 바리에이션(dream variation)이라고도 불린다.
전쟁에 나가 있는 연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일상에서 연인을 떠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불안감과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함께 스며있는 그리움이다. 이 꿈속 장면에는 그리움과 외로움, 연인이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기도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고 이 아다지오를 바라본다면 그 서정적인 매력에 더욱 휩싸이게 된다. 작품에 예술적인 미를 한층 높인 유명한 아다지오로 발레 '스파르타쿠스(Spartacus, 1956) ' 중 스파르타쿠스와 아내 프리기아가 추는 아다지오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로마군의 노예로 잡혀 검투사가 된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꿈꾸고 끝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이라 전반적으로 사실적이고, 거칠고, 저항정신이 강렬하게 표출된다.
아다지오는 로마군과 투쟁을 앞둔 스파르타쿠스가 아내와 마지막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에서 음악적 구성으로도 뛰어날 뿐 아니라 무용수들의 비장하지만 애절한 감정 표현력과 원 핸드 리프트와 같은 고난도 발레 테크닉이 정점을 이루기 때문에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작품이 초연될 당시 러시아에서는 음악과 발레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강조했던 터라 '스파르타쿠스'도 그 색채를 띠고 탄생됐지만, 남성 무용수들의 기술적 향연과 군무의 화려함, 전투적인 장면들 사이에 이 아다지오가 들어감으로써 예술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갖출 수 있었다. 속도가 가져다 준 경제적, 산업적 효율은 기적에 가까웠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느린 것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을 다시 기억해 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무려 7박 8일이 걸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기꺼이 몸을 싣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때로는 ‘느린 우체통’에 우리는 편지를 넣어 꼬박 1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세월이 나이테처럼 그 편지에 쌓여 내게 도착할 때 그 편지를 쓰던 때와는 다른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 15일 전보 서비스가 종료되던 날, 사랑하는 이들에게 인생의 마지막 전보를 부친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적은 몇 마디 말과 함께.
가장 빠른 것이 느린 것이 된 시대에도 그 안에 쓰인 말들이 갖는 의미는 퇴색되지 않았고, 속도를 넘어서서 여전히 아름다운 것으로 남았다. 느리고 조용한 것도 빠르고 힘찬 것 못지않게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 글은 느린 것에 대한 예찬이라기보다는 빠르고 느린 것을 넘어서서 나의 속도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는지 돌아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새해 첫 달, 나를 가장 아름답게 빛낼 속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때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했던 전보가 세월의 흐름에 속도를 잃어버리고, 5세대 이동통신 5G가 땅을 접고 시간을 접는 축지법의 마술을 부리는 시대. 빠른 것은 아름다운가. 느린 것은 시대의 뒷전인가.
돌아보면 발레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데는 빠르고 강렬한 움직임 못지 않게 느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아다주'(adage) 또는 '아다지오'(adagio)가 중요하다. 프랑스어로는 아다주, 이탈리아어로는 아다지오라고 부르는데 음악에서도 느린 템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발레는 다른 어떤 춤보다 몸의 가용범위를 극한으로 확장시켜 사용하기 때문에 곡예에 가까운 기술들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발레의 기술과 필요한 근육, 유연성의 정점이 빛을 발하는 건 빠르게 돌고 뛰고 나는 동작이 아니라 느리게 움직이는 아다지오에서다.
천천히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나의 힘으로 몸과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지, 음악의 박자와 흐름과도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있는지. 아다지오를 출 때 훈련의 세월은 물론 이런 뮤지컬러티(musicality), 즉 음악성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점 때문에 발레 클래스 중 바 훈련 이후 진행하는 센터 클래스에서는 아다지오를 제일 먼저 한다. 다리를 데벨로페해서 들 때도 높이보다는 얼마나 천천히 들어 올리고 얼마나 그 상태로 잘 버티느냐는 중요하다. 아라베스크나 에티튜드 상태로 돌 때도 얼마나 천천히 흔들림 없이 돌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음악 안에서 내 뜻대로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 나의 움직임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악보에 적힌 음표의 물리적 길이가 아니라 나만의 음악적 길이를 만드는 것이다. 즉, 음악과 대화해야 한다. 아다지오는 ‘높게’보다 ‘오래’, '빠르게'보다 '정확하게'가 더 중요하고, 이런 부분이 움직임의 근원적인 힘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발레가 갖고 있는 낭만과 신비로운 이미지는 아다지오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다지오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자태 덕분이다. 남녀 주역 무용수가 선보이는 2인무 그랑 파드되에서 아다지오가 반드시 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다지오의 느린 선율과 움직임 안에는 비애, 행복, 낭만, 행복, 외로움, 다양한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아다지오를 추는 모습을 통해 무용수의 기량과 음악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콩쿠르에도 종종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레이몬다(Raymonda, 1898)'의 아다지오이다. 발레 '레이몬다'는 십자군 전쟁에 나간 기사 장 드 브리앙과 약혼녀 레이몬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이 꿈속에서 만나는 1막의 장면이 유명한데 둘이 함께 춤을 추다가 이어서 레이몬다가 솔로 춤을 선보인다. 이 독무는 레이몬다 아다지오 혹은 드림 바리에이션(dream variation)이라고도 불린다.
전쟁에 나가 있는 연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일상에서 연인을 떠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불안감과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함께 스며있는 그리움이다. 이 꿈속 장면에는 그리움과 외로움, 연인이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기도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고 이 아다지오를 바라본다면 그 서정적인 매력에 더욱 휩싸이게 된다. 작품에 예술적인 미를 한층 높인 유명한 아다지오로 발레 '스파르타쿠스(Spartacus, 1956) ' 중 스파르타쿠스와 아내 프리기아가 추는 아다지오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로마군의 노예로 잡혀 검투사가 된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꿈꾸고 끝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이라 전반적으로 사실적이고, 거칠고, 저항정신이 강렬하게 표출된다.
아다지오는 로마군과 투쟁을 앞둔 스파르타쿠스가 아내와 마지막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에서 음악적 구성으로도 뛰어날 뿐 아니라 무용수들의 비장하지만 애절한 감정 표현력과 원 핸드 리프트와 같은 고난도 발레 테크닉이 정점을 이루기 때문에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작품이 초연될 당시 러시아에서는 음악과 발레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강조했던 터라 '스파르타쿠스'도 그 색채를 띠고 탄생됐지만, 남성 무용수들의 기술적 향연과 군무의 화려함, 전투적인 장면들 사이에 이 아다지오가 들어감으로써 예술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갖출 수 있었다. 속도가 가져다 준 경제적, 산업적 효율은 기적에 가까웠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느린 것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을 다시 기억해 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무려 7박 8일이 걸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기꺼이 몸을 싣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때로는 ‘느린 우체통’에 우리는 편지를 넣어 꼬박 1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세월이 나이테처럼 그 편지에 쌓여 내게 도착할 때 그 편지를 쓰던 때와는 다른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 15일 전보 서비스가 종료되던 날, 사랑하는 이들에게 인생의 마지막 전보를 부친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적은 몇 마디 말과 함께.
가장 빠른 것이 느린 것이 된 시대에도 그 안에 쓰인 말들이 갖는 의미는 퇴색되지 않았고, 속도를 넘어서서 여전히 아름다운 것으로 남았다. 느리고 조용한 것도 빠르고 힘찬 것 못지않게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 글은 느린 것에 대한 예찬이라기보다는 빠르고 느린 것을 넘어서서 나의 속도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는지 돌아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새해 첫 달, 나를 가장 아름답게 빛낼 속도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