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당초 예상보다 한두 달 이른 내년 2월께 확장현실(XR: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을 아우르는 개념) 헤드셋 ‘비전 프로’를 출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애플의 혁신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신제품을 앞세워 분위기 반전에 나서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또 다른 XR기기 개발 기업인 삼성전자에선 애플과 달리 제품 출시를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XR기기 시장의 성장성이 예상보다 더딘 상황에서 무리해 출시하기보단 제품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XR헤드셋 출시 앞당긴 애플…삼성은 '신중'

미국에서 2월 출시 전망

28일 블룸버그 등 외신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내년 1월 말까지 비전 프로 출시 준비를 마치고 2월께 정식으로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비전 프로는 지난해 6월 애플이 개발자대회 ‘WWDC23’을 통해 공개한 XR기기다. 애플이 9년 만에 선보인 신제품으로 가격은 3499달러(약 450만원)다. 전용 디스플레이 올레도스(OLEDoS)와 최신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M2, 전용 센서 등을 통해 고화질(4K) 혼합현실(MR) 영상을 제공한다.

미국에 우선 판매될 예정이다. 애플은 비전 프로 공개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 XR기기 시장 위축

시장에선 애플의 승부수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애플 전문가로 꼽히는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는 비전 프로의 초기 출하량을 50만 대 안팎으로 예측했다. 매출로 환산하면 약 2조3000억원으로 애플 연 매출의 0.3% 수준이다. 궈 애널리스트는 비전 프로에 대해 “초기 반응이 괜찮을 경우 애플 제품 중 ‘차세대 스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XR 시장이 침체된 것은 흥행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메타플랫폼스(옛 페이스북)가 가상현실(VR) 기기 ‘메타 퀘스트 3’를 판매 중이고 일본 소니도 ‘플레이스테이션 VR2 헤드셋’을 밀고 있다. 최근 판매량은 감소세다. 시장조사업체 서카나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25일까지 올해 미국 내 증강현실(AR)·VR 기기 매출은 6억6400만달러다. 2022년(11억달러) 연간 전체 판매량 대비 40% 가까이 적은 수치다.

XR기기 판매량 전망치도 하향 조정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SCC는 4000만 대 수준으로 제시했던 2024년 XR기기용 디스플레이 출하량 전망치를 최근 1900만 대로 낮춰 잡았다. 기욤 찬신 DSCC 디스플레이 담당 연구원은 “메타, 소니 제품은 성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수요를 키우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부족한 콘텐츠, 비싼 가격 부담

산업계에선 XR 헤드셋 등이 글로벌 IT기업들의 차세대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킬러 콘텐츠’가 부족한 점과 부담스러운 가격대, 두통을 유발하는 기기 무게 등이 흥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2월 구글, 퀄컴과 손잡고 XR기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발표한 삼성전자는 신중 모드다. 제품을 서둘러 출시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제품을 내놓는 것보다 기능·성능 등의 완성도를 높여 최고의 제품을 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