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실거주 하라면서…안 지켜도 LH가 분양가에 사준다고?
'72개 단지, 4만7595가구.'
현재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단지다. 이 중 1만5000여 가구는 새해 입주 예정이다. 실거주 의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얘기다. 대출받을 여력이 없어 전세를 내줘야 하는 분양계약자에게 비상이 걸린 이유다. 지난해 '1·3 부동산 대책'에서 정부가 분양권 전매제한 해제와 함께 실거주 의무 폐지를 공언했다는 점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도 초래하게 됐다. 대출받아 부담할 여유가 있어도 지금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에서 다음 세입자를 구하려면 수백만원의 중개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실거주 의무가 부과되는 기준은 2021년 2월19일 이후 분양된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아파트다. 이 아파트에 당첨된 분양계약자는 최초 입주일로부터 2~5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분양가상한제 아파트만이 아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에 참여하는 공공재개발로 공급된 주택도 적용된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이 아니어도 공공재개발로 공급되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 실거주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아직 공공재개발을 통해 공급된 아파트는 없다.

실거주 방문 확인 … 적발 땐 분양가에 되팔고 벌금형

실거주 의무를 어긴 게 적발되면 분양가 그대로 LH에 되팔아야 한다. 분양가에다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이자율을 더한 정도로 되산다. 그것뿐이면 괜찮은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처해 전과자가 된다. '로또 청약'에 당첨되면서 얻은 이익을 고스란히 토해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분양권을 전매하면 1년 미만은 70%, 1년 이상 60%의 양도소득세율이 부과된다. 그래도 분양권을 전매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분석이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실제로 집에 거주하는지는 다 확인할까. 공무원들이 주민등록번호와 외국인 등록번호 등 주민등록 전산 정보와 가족관계증명서 등 실제 거주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돼 있다. 여기에 거주 의무자에게 증명에 필요한 서류를 요구할 권한도 주어져 있다. 주택에 들어가서 필요한 질문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원래는 LH 직원이 확인하게 돼 있었지만, 법 개정으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체크할 수 있게 됐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실거주 의무가 부과된 2021년 2월 이후 실거주 의무를 위반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LH가 사들인 집, 최초 분양가로 청약

그럼 LH가 사들인 집은 어떻게 될까. LH가 공공분양으로 공급하게 된다. 마치 계약 포기분에 대해 잔여 가구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고 추가 분양을 진행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재공급가는 최초 분양가에 예금금리, LH가 가져가는 수수료 정도가 더해진 금액이다. 수수료는 LH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정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LH가 별도의 수익도 내지 않고 다시 공급하는 것"이라며 "LH 입장에서도 주택 관리나 수수료 부담을 덜기 위해 최대한 물량을 털어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의 모습.  /뉴스1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의 모습. /뉴스1
LH가 매입한 주택을 다시 분양받은 사람은 '잔여기간' 동안 실거주 의무가 주어진다. 가령 입주한 지 1년 지난 시점에 실거주 의무 위반으로 LH에 넘어간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은 그로부터 남은 1~4년간 의무를 지켜야 한다.

떨어지는 시세 … 일부러 위반하는 '역선택' 있을수도

LH 의무 매입이 꼭 불리하기만 한 건 아닐 수도 있다. 특히 요즘같이 분양가는 고공행진하는 반면 거래량은 마르고 가격이 내려갈 땐 '시세보다 분양가가 높은' 현상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LH에 파는 게 실거주 의무 지켜가며 중개사를 통해 파는 것보다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부러 실거주 의무를 위반해 하락 리스크를 헤지하는 '역선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2021년 분양한 경기 안양 동안구 평촌 트리지아(2417가구) 전용 59㎡는 지난달 26일 6억5777만원에 손바뀜했다. 분양가(6억2350만원)에 근접한 수준까지 떨어진 셈이다. 이같은 사례는 공급이 많았던 인천·경기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거주 의무 폐지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추후 LH와 함께 관련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면 이같은 '역선택'도 생길 일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실거주 의무 폐지가 성사될 가능성은 없을까. 오는 9일 국회 본회의가 예정돼 있다. 국토부는 최대한 빨리 국토소위를 열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9일 전에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이 국토소위와 국토위, 법사위를 통과하면 9일 본회의에서 의결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총선을 앞둔 탓에 논의가 급진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임시 국회에서도 법안 통과가 안 되면 관련 법안은 폐지된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